한국 정부, 대만 디지털 장관 강연 초청 일방 취소 물의

최창근
2021년 12월 21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21일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委, 대만 정부관리 초청…행사 당일 취소 통보
대만 외교부는 주대만 한국대표부 부대표 초치, 韓 “양안 관계 고려” 해명

한국 정부가 대만 ‘장관급’ 인사를 화상 회의에 초청했다가 일방적으로 참석 취소를 통보하여 대만 외교 당국의 엄중 항의를 받았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12월 16일 개최한 ‘2021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콘퍼런스’에 ‘오드리 탕’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탕펑(唐鳳)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을 화상 회의 연사로 초청했다.

이 행사는 세계 각국 정부 관계자, 전문가, 학자, 기업인 등이 참석하여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인공지능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강연·토론을 하는 국제 콘퍼런스였다.

4차 산업혁명위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정부 측 공동위원장을,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민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대만 측 인사인 탕 위원은 마지막 세션인 사회혁신 부문 발표자로 참석해 ‘대만의 디지털 사회 혁신’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었다.

이 세션은 ‘지구를 구하는 미래기술 2050: 기후 위기와 감염병에 대한 인류 대처방안’을 주제로 김현곤 국회미래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아 데이비드 롤릭 캐나다 맥길대 교수, 캄란 칸 블루닷 대표, 룩 소테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명예교수 등이 탕 위원과 함께 발표자로 나설 예정이었다.

‘천재 해커’ 출신 탕 위원은 35세이던 2016년 차이잉원 정부 출범 후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으로 발탁돼 대만 정부 혁신, 전자정부, 행정 디지털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성소수자로 대만 사회의 개방성을 나타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탕 위원은 준비했던 연설을 발표할 수 없었다. 행사 당일 오전, 연설이 갑작스럽게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20일 어우장안(歐江安) 대만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12월 16일, 4차 산업혁명위 회의 당일인 타이베이 시간 7시 50분 전자우편으로 탕 위원실에 강연 일방 취소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어우 대변인은 취소된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면서 다른 루트를 통해 ‘양안 관계의 각 측면 고려’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양안관계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주고 마주한 중국과 대만 관계를 지칭한다. 즉 중국 측의 압력이 있었거나 한국 정부가 대(對) 중국 관계를 고려하여 취소 통보를 했음을 시사한다. 실제 대만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어느 쪽이든 외국 정부 관리를 초청한 뒤 당일 취소통보를 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피해 가기 어렵다.

대만은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대만 외교부는 한국 측의 외교 결례에 대하여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의 홍순창 부대표(대리 대표)를 초치(招致)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였으며, 탕뎬원(唐殿文)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대표도 한국 정부에 엄중 항의를 표명했다.

초치당한 홍 부대표는 대만 외교부에 “문제 원인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한국 외교부에 대만 외교부의 입장을 사실대로 전달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연합보는 이번 사건을 전한 기사에서 대만 외교부가 주재국 대사를 ‘초치’한 전례는 2018년 부르키나파소와 엘살바도르의 단교, 필리핀 대만 어민 피살 사건 등이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외교부가 이번 사안을 알지 못했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사 등 현지 매체들은 홍 부대표가 “제4차 산업혁명위가 ‘포괄적 검토’에 근거해 탕 위원 초청을 취소했다는 기초적인 사안만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한국 연합뉴스 역시 한국 외교부가 탕 위원 초청 건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21일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초청 취소가 외교부와 무관하게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 혹은 그 윗선에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당초 행사 주최 측이 자체 판단으로 초청한 인사를 부랴부랴 문전박대한 점은 찜찜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중화민국(대만)은 독립국이며 세계 각국과 교류와 왕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 정부는 국가 주권과 존엄을 지킬 것이며 모든 민주국가와 협력을 심화해 자유, 민주, 인권 등 보편적 가치관을 함께 수호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담겨 있지 않지만, 공산주의 진영으로부터 민주 체제를 지켜낸 주권 국가로서 한국 정부의 행보에 대한 아쉬움과 의문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탕 위원은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국제해킹방어대회 ‘코드게이트’ 참석차 방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였지만, 그의 방한은 전혀 외교적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다만 당시와 비교하면 대만 문제가 미중 간 한층 첨예한 갈등 사안으로 부각된 상황이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전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 합법 정부는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이며, 대만(중화민국)은 중국의 나눌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 관계자들이 다른 나라와 공식·비공식 교류를 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이번에 초청이 무산된 대만 측 인사가 탕 위원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탕 위원은 지난 10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연사로 초대됐다. 세계 100개국이 초청된 이 행사에 중국은 초대받지 못했다.

중국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미국은 대만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자 대만을 공식 초청했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대신해 정부 대표 자격으로 탕 위원과 샤오메이친(蕭美琴) 주미국 대만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처럼 미국이 대만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천명하는 가운데 한국은 미중 간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갈등이 깊어진 호주가 한국의 지지를 호소하고, 중국-대만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변수가 늘고 있다. 불필요한 반감 유발을 피하면서 내딛는 신중한 한 걸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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