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통일부를 ‘남북협력부’로 개칭해야 하는 이유

2021년 8월 3일
업데이트: 2021년 8월 3일

최근 야당인 국힘당의 이준석 대표의 ‘통일부 폐지’ 발언이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통일부가 통일부답지 못하니 차라리 없애라는 취지의 비판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부질없는 말싸움으로 들릴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 ‘통일부(Department of National Unification)’는 폐지되기보다는 ‘남북협력부(Department of Inter-Korean Cooperation)’로 개칭되어야 한다.

통일부 개칭 문제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도 거론되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통일’이라는 표현이 프레이밍 전쟁의 도구로 전락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통일부 홈페이지에는 통일부 업무를 통일정책, 남북회담, 남북 교류 협력, 인도적 문제 해결, 북한 이탈주민 정착 지원, 북한 정보 수집·분석, 남북 간 출입 관리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통일정책을 제외한 나머지는 남북협력과 관련한 정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한국의 통일부는 통일정책과 남북협력 정책을 관장하는 주무 부서인 셈이다.

문제는 통일과 남북협력이 한 부처에서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성격의 정책 분야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일부는 통일보다는 남북협력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간주해왔으며, 개방적인 대북 자세를 가진 정부일수록 더욱 그랬다. 김대중 정부 동안 통일부는 ‘햇볕정책’의 창구였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평화번영정책’의 주무 부처였으며, 평양과의 관계증진에 명운을 걸다시피 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부처를 ‘통일부’로 칭하는 것 때문에 북한 정부와의 화해 협력을 통일과 동일시하는 왜곡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예컨대, 통일부 산하 통일연수원은 ‘통일’을 내걸고 실제로는 남북 교류 협력의 현황과 중요성을 가르친다. 이 과정을 거친 공무원들이 상생을 곧 통일로 가는 길인 양 오해하게 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상생과 통일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상생이란 남북이 무력충돌을 피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거 정부들은 대화·교류·협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통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남과 북의 체제가 제로섬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이란 체제경쟁과 국력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상대편 체제를 흡수할 때에만 가능하다.

한국의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는 북한 체제가 붕괴할 때에만 가능하다.

북한의 적화통일 목표도 불변이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 체제를 붕괴시키고 한국을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 흡수할 때에만 가능하다. 1950년 북한의 전쟁 도발은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을 위한 시도였으며, 지금도 노동당 규약에 ‘한반도 전체의 사회주의 완성’이라는 목표가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자본주의적 오염’을 극히 우려하여 남북교류의 방식과 내용에 일일이 제약을 가한다.

이런 방식, 즉 북한 정권이 허락하는 방법과 내용으로 교류 협력을 제공하는 것은 남북 정부 간 관계를 개선하여 상생을 도모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통일과 관련해서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즉, 북한 내부에서 평양 정권의 권위를 높이고 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때문에 통일보다는 분단의 고착에 기여한다.

굳이 통일과의 연관성을 말한다면, 한국이 스스로를 위험하고 비굴하게 만들면서 평양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의 교류 협력은 체제 승리를 통한 ‘자유민주 통일’보다는 반대 방향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더 크다. 실례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이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을 알현하였다”라고 방송했다.

‘남북협력=통일’이라는 잘못된 등식은 이미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이 등식 하에서 친북좌파들은 ‘퍼주기’식 대북지원을 주장하면서 스스로를 ‘통일일꾼’으로 칭한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은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 “통일 역꾼인 나를 가두려 한다”고 항의했고, 재미 친북 활동가 신은미 씨도 자신의 활동을 ‘통일 콘서트’라고 불렀다. 통진당이 해산 명령을 받았을 때 당시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의 뿌리를 잘라낸다”고 항변했었다.

같은 논리로 좌파들은 무분별한 대북지원보다는 확고한 안보 국방 태세 하에서 원칙 있는 대북교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통일 인사’로 내몰고 있다. 즉, 대북지원을 반대하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식으로 멀쩡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반통일 세력’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요컨대, 한국은 평화적 상생을 위해 북한과 교류 협력도 해야 하고 체제경쟁 승리와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상충하는 두 명제를 동시에 안고 가는 데에는 당연히 애로가 따른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앞세우면 북의 반발로 상생이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앞세우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안했을 때 북한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반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일대박론이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통일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생 정책은 내놓고 추진할 수 있지만, 통일은 입으로 거론하기보다는 ‘전략’ 차원에서 깊숙이 다루어야 한다. 과거 서독도 동서독 간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를 ‘내독부’로 불렀고, ‘통일부’라는 표현은 사용한 적이 없다.

상생이 대북정책의 중요한 당면목표이기 때문에 교류 협력을 추구하는 부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명칭은 ‘통일부’가 아닌 ‘남북협력부’가 되어야 한다. 무분별하게 ‘통일’을 떠들수록 자유민주주의 통일은 멀어지는 것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다.

/김태우·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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