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닮은꼴’ 역사 ‘쇼팽의 나라’ 폴란드…한국 무기 도입 등 군비 증강 이유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으로 주권 잃는 역사 반복
최창근
2022년 09월 5일 오전 11:42 업데이트: 2022년 09월 6일 오전 8:07

코페르니쿠스, 쇼팽, 퀴리 부인, 요한 바오로 2세… 폴란드 출신
독일, 러시아 등 강대국의 침략
나라가 통째로 사라졌다 부활하는 역사 반복
군비 증강 통해 아픈 역사 반복하지 않으려

최근 대규모 한국산 무기 도입 계약을 발표한 동유럽 폴란드 역사는 한국과 ‘닮은꼴’이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이 이어지고 나라가 통째로 사라졌다 부활했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대 들어서 나치 독일에 강점당하여 주권을 빼앗긴 적도 있다. ‘평행이론’처럼 닮은 폴란드 역사는 어떠할까. 폴란드는 왜 국방력 증대에 심혈을 기울일까.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apa Giovanni Paolo II)는 폴란드 태생이다. 본명은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이며 1978년 58세 나이로 교황에 선출됐다. 455년 만의 비(非)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자 공산권 국가 출신 교황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 중 전세계를 순방하며 종교 간 화해에 힘썼다. 자신의 모국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공산주의를 무너트리는 것에도 일조했다.

교황은 1984년,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하며 폴란드와 닮은 꼴인 한국에 관심과 연민을 표하기도 했다. 교황이 언급했듯 폴란드는 한국과 비슷하게 이웃 강국들로부터 오랫동안 시달림을 당한 나라이다. 그들을 괴롭힌 나라는 서쪽 독일과 동쪽 러시아이다. 서쪽 중국과 동쪽 일본으로부터 시달려 온 한국과 묘하게 닮았다.

폴란드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으로 분할과 점령, 학살로 얼룩진 오랜 고통의 역사를 안고 있다. 한때 중부유럽 패권국이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주변 강대국에 의하여 분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폴란드 분할을 묘사한 삽화. 러시아, 프로이센(독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 황제들이 폴란드 지도를 놓고 분할 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1772년 러시아 제국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는 폴란드 내정에 간섭하여 폴란드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다. 이에 프로이센 카이저(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러시아의 강대화를 경계하여 오스트리아제국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에게 함께 제1차 폴란드 분할을 제의했다. 1772년 8월 5일 실시된 제1차 폴란드 분할에 따라 러시아는 폴란드의 벨라루스 지방을 차지했다. 프로이센은 폴란드 북부 지방을 얻었으며, 오스트리아는 서부 포돌리아, 갈리치아를 얻었다. 폴란드는 제1차 분할로 인하여 국토와 인구를 1/3가량을 상실했다.

강대국의 폴란드 분할 획책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791년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폴란드 국왕은 1791년 5월 3일, 헌법을 제정하여 내정을 정비했다. 이에 반대하는 국내 보수파들은 타르고비차연맹을 결성하여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군대를 파병하여 제2차 폴란드 분할을 강행했다. 1793년 1월 23일 실시된 제2차 폴란드 분할에 따라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벨로루시 지방, 서부 우크라이나 지방을 얻었으며, 프로이센은 단치히, 토룬, 마조비아 일부 지방을 얻었다.

폴란드는 애국자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등의 주도로 저항운동을 벌였다. 이에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제3차 폴란드 분할에 나섰다. 1795년 10월 24일 실시된 제3차 폴란드 분할에 따라 러시아는 쿠를란트와 리만 강 동부의 리투아니아 영토를 얻었으며, 프로이센은 바르샤바를 포함한 마조비아 전역과 리만강 서부의 리투아니아 영토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는 크라쿠프와 소(小)폴란드 지방 전역을 합병하였다. 이로써 폴란드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 3국에 의해 영토가 완전히 분할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유럽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폴란드는 1795년 국가가 소멸해 1918년까지 3국의 지배를 받았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1830년 11월 30일 러시아의 압제에 항거하여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켰으나 무력 진압을 당했다.

쇼팽. 폴란드가 배출한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 조국이 강대국에 의하여 분할 되어 사라진 후 평생 프랑스 등 외국을 떠돌며 살았다.

폴란드가 배출한 음악가 쇼팽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수도 빈에서 봉기 소식을 접했다. 쇼팽은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평생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1848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나의 심장만큼은 조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쇼팽의 심장은 바르샤바 성 요한 대성당에 안치됐다.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위대한 음악가이다. 파데레프스키의 대표작은 ‘교향곡 폴로니아’이다. 파데레프스키는 1903년부터 1908년에 걸쳐 곡을 썼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제국 지배하에 있었다. 3악장으로 이뤄진 교향곡의 각 악장에 붙은 표제는 폴란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준다. 제1악장 ‘과거 폴란드의 영광스런 날들’, 제2악장 ‘외세의 지배 밑에서 국운이 나락으로 떨어진 현재(1907년)의 폴란드’, 제3악장 ‘더 행복한 미래의 폴란드로 향하여’이다.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누리던 파데레프스키는 1913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파리 주재 ‘폴란드재건위원회’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고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폴란드 독립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폴란드를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파데레프스키. 폴란드 출신 음악가로서 1918년 폴란드 독립 후 총리 겸 외무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폴란드는 1918년 독립했으나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러시아는 비밀 약정을 맺어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1940년 소련 비밀경찰(NKVD)은 폴란드 장교·경찰·교사 등 지식인 포로 20000여 명을 총살해 매장하는 ‘카틴 숲 학살’이란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 나치 강점 기간 동안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비롯한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폴란드에 세워졌고 이 곳에서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이 독일을 향해 진격하기 위해 폴란드로 다가왔다. 폴란드 지하저항군은 소련군이 오기 전에 폴란드인의 손으로 독일군을 내쫓고 바르샤바를 해방하려 했다.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입성하기 전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의 독립을 찾고자 했다.

1944년 8월 1일 오후 5시, 지하저항군과 시민군은 바르샤바에서 일제히 독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선을 잡았다. 전열을 가다듬은 독일군의 무자비한 반격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비스와강 건너편까지 왔지만 불구경만하고 있었고 연합군의 지원은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바르샤바 봉기는 실패했다. 독일군은 바르샤바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인 1945년 폴란드는 다시 독립했다. 주권은 찾았으나 외세의 간섭은 피할 수 없었다. 다른 동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소련 주도의 공산당 정부하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고통을 받았다. 소련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응하는 공산권 군사동맹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출범시켰다.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이다. 폴란드의 민주화 운동은 소련의 입김으로 탄압당했고, 결국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폴란드는 남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500㎞,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역외 고립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23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오늘날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로 가는 미국과 유럽의 무기 전달 통로이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온 수백만 난민의 탈출로이자 수용지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주권을 다시 빼앗길 수도 있다.

2022년 체결된 한국-폴란드 무기 수출 계약식.

이 속에서 폴란드는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하고 있다. 오늘날 폴란드군은 유럽의 대표적인 육군 강국이다. 나토 지상군의 핵심 전력이기도 하다. 동유럽과 중에서는 러시아 다음가는 육군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기갑(전차)부대는 양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부-동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폴란드 국회는 ‘군비 증강안’을 통과시켜 기존 4개 사단을 6개 사단으로 늘리고 최신 무기 도입을 결정했다. 2035년까지 한화 약 151조 4720억 원을 투입해 군대를 현대화할 것임을 밝혔다. 15만 명이었던 정규군은 25만 명으로, 2만 명 수준인 향토방위군은 5만 명으로 확대해 폴란드군을 현재의 2배 정도로 늘릴 예정이다. 국방비도 GDP의 5% 선까지 증액하기로 했다.

2022년 7월 한국과 폴란드가 체결한 한화 약 20조 원 규모의 무기 도입 계획은 폴란드군 현대화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이다. 폴란드는 한국산 자주포, 전차, 경공격기를 통해 증대되는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자 한다. 모두 지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한국과 폴란드 ‘닮은 꼴’ 역사도 주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