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공연을 위해 처음 방한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불릴 만큼 현존하는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지만,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콘서트홀 소음과 피아노 음향에 극도로 예민해 자신의 피아노를 분해해 전 세계 공연장으로 직접 실어 나른다.
첫 내한 공연 당시, 그의 피아노를 조율한 이가 예술의 전당 전속 조율사 이종율 선생이었다.
이 선생은 조율을 하고 나서도 제발 아무 일 없이 공연이 끝나기만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마지막 곡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려 안심하려던 차에 누군가 뛰어왔다.

“이 선생님 빨리 오세요. 연주자가 찾아요.”
이 선생은 ‘조율을 잘 못 해서 뭐가 불편했을까’라는 염려를 안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공연장 밖에 서 있던 지메르만은 이 선생을 보자 덥석 손을 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지메르만은 박수가 끊이지 않는 무대로 돌아가 객석의 박수를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미스터 리에게 감사한다.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를 만들었다.”
항상 무대 뒤에 있던 이 선생이 처음으로 관중에게 주목받은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인 이종열 선생(83)은 지난 1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당시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 선생은 무대에서 주목받는 연주자의 연주를 위해 조율사도 무대 뒤에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고 땀방울을 흘린다고 말했다.

그걸 알아주는 이가 많지는 않다. 이 선생은 “그걸 자꾸 바라면 슬퍼서 못한다. 안 바란다. 나는 어디까지나 서비스맨이니까”라며 “내가 조율한 피아노가 곡을 열심히 잘 연주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라며 웃었다.
그런데, 유일한 예외가 지메르만이었다고. 그때 이 선생은 “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날 방송을 통해 이 선생은 일의 어려움과 다른 거장과 있었던 일화도 털어놨다.

피아노에 있는 줄은 대략 220~230개. 줄 하나를 조율하면 사격선수가 과녁을 조준할 때 숨을 참는 것처럼 온 신경이 곤두선단다.
또 까다로운 연주자들을 많이 상대하는 어려움 때문에 사무실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글귀를 많이 걸어놓는다고 털어놨다.
미국 뉴에이지의 거장 조지 윈스턴의 일화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90년대 첫 내한공연 당시 조지 윈스턴은 조율사 앞으로 4장의 팩스를 보냈다. 그곳에는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마다 조율할 때의 조건이 적혀 있었다.
이 선생은 읽다 보니 머리가 아파서 덮어버리고 본인의 방식대로 조율했다.
그런데도 피아노 상태를 점검해 본 조지 윈스턴은 이 선생의 손을 잡고서 “원더풀 피아노”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예술의 전당 영재 아카데미 출신인 조성진은 한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조율해주시면 피아노 음에서 나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65년 동안 조율 일을 하며 세계 거장들에게 인정받는 위치에 있지만, 이 선생은 본인의 실력이 작년보다 올해에 더 발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냐는 질문에도 “이제 겨우 쓸 만한데 80이네”라며 재치있게 답했다.

이 선생이 생각하는 조율이란 이랬다.
“조율은 타협이다. 도 음 하나를 결정하려면 위쪽 4도에 물어보고 5도에도 물어보고, 옥타브에도 물어봐야 한다. 내가 여기에 서도 되는가. 다 오케이 그러면 그 음이 그 자리에 서는 거다. 이게 조금만 어긋나면 화음이 안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