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와 중국 공산당의 오랜 악연

1991년 중국 방문시 톈안먼 희생자 추모 시위
최창근
2022년 08월 2일 오후 2:05 업데이트: 2022년 08월 2일 오후 2:05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의 ‘대만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8월 1일부터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순방 중인 펠로시 의장은 첫 방문지로 싱가포르를 찾았다. 이후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이다. 대만은 8월 2~3일 방문할 것으로 예측된다. 둥썬신문(東森新聞) 등 대만 언론들은 펠로시 의장이 8월 2일 밤 1030분(한국시각 오후 11시 30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해 다음 날 오전 10시 떠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언론들은 또,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해 숙박 후 8월 3일 오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하고 입법원(의회)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월 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미국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엄중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에 재차 경고한다. 중국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으며 ‘엄진이대(嚴陣以待·진을 짜고 적을 기다림)’하고 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이 펠로시의 대만행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통령-부통령(상원의장)에 이은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고위직 인사여서만은 아니다. 펠로시와 중국은 구원(舊怨)이 있고, 그 뿌리가 깊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1년 미국 민주·공화 양당 의원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방문단에는 1987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첫 당선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원도 있었다. 방문 일정 중 펠로시와 일부 의원, 미국 기자들은 숙소를 몰래 빠져 나와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쳤다. 6·4 톈안먼 사건 희생자 추모 행사였다. 공안(公安·경찰)들이 펠로시 일행을 둘러쌌고 추격전이 벌어졌다. 펠로시는 택시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지만 동료 의원은 폭행을 당했고 일부 기자들은 구금됐다.

1991년 베이징 방문시 동료 의원들과 함께 톈안먼 사건 희생자 추모 시위를 하는 낸시 펠로시(가운데). | 미국 연방 하원의장실.

펠로시는 중국 내 인권 문제, 민주화 문제를 무기로 중국 공산당을 지속 비판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맞은 올해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국 공산당을 ‘억압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톈안먼 시위는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연히 펠로시는 베이징 당국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적 기피 인물)’로 분류됐다.

펠로시가 중국 공산당을 불편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티베트 정교(政敎) 일치 지도자 달라이 라마 문제이다. 펠로시는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와 교류를 지속하면서 티베트 인권 문제 개선을 촉구해 오고 있다. 펠로시는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2015년 중국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구도(區都) 라싸를 방문하기도 했다.

펠로시는 아시아·태평양 순방 직전 미국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Politico)’ 인터뷰에서 미국 외교정책에서 자신의 목표는 ▲안보 ▲경제적 이익 ▲우리 가치관 존중 등 3가지라고 밝혔다. 대(對)중국 문제에 있어서는 “상업적 이익 때문에 중국의 인권을 옹호할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를 대변할 수 있는 모든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된다.”고 했다. 자신과 중국의 구원(舊怨)의 씨앗이 된 톈안먼 사건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의 악의적 행동은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징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약속했다. 홍콩에서 베이징 당국이 벌인 일을 보아야 한다. 대만 문제도 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이다. 홍콩에 약속한 일국양제 약속이 지켜졌다면 대만에도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티베트 정교일치 지도자 달라이 라마(좌)와 함께한 낸시 펠로시(우). | 연합뉴스.

펠로시 의장은 “그들은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그런데 홍콩에서 한 일을 봐라. 대만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냈다. 만약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러한 펠로시는 중국 고위층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1997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D.C를 방문했다. 같은 캘리포니아주를 지역구로 둔 다이앤 파인스타인 (Dianne Feinstein)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이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환영 만찬을 주최했다. 펠로시는 만찬에 참석하지 않고 블레어 하우스 밖에서 “장쩌민은 폭군이다.” 소리치며 항의 시위를 했다.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에게, 구금된 중국·티베트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 4통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상대방의 거부로 실패했다. 그러다 7년 후 국가 주석이 된 후진타오에게 류샤오보(劉曉波)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직접 전달했다. 류샤오보는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수감 생활을 계속했으며 2017년 암으로 사망했다.

펠로시는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의 올림픽 유치도 꾸준히 반대해왔다. 그는 지난 2008년 중국이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개최했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촉구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 등을 이유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주도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에도 펠로시는 중국 공산당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대만은 펠로시 의장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펠로시 의장도 대만을 지지하고 있다. 이 속에서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펠로시의 대만행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