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보도] 시진핑 종교자유 추진, 하늘의 뜻 따르고 민심 얻는다

The Epoch Times
2016년 4월 29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23일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수련자 1만여 명이 중난하이에서 평화롭게 청원한 이래 이들은 오늘날까지 줄곧 고난 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쟁취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시진핑이 올해 이 날을 앞두고 취한 몇몇 행보가 의미심장하다. 바로, 전국종교공작회의를 소집하고 장쩌민의 종교 탄압 정책을 바꾼 것이다. 시진핑은 정법(政法)공작회의에서 법치와 반부패를 추진하고 정법계통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 청원활동을 언급하면서 “군중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권익 요구를 잘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진보적 조치는 하늘의 뜻을 따르고 민심을 얻는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세기 전 미국은 종교 자유의 토대에서 건국한 이래 세계 제1강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워싱턴과 제퍼슨 등 선현들이 폐허 속에서 미국을 세울 때, 종교의 자유를 헌법 제1개정안에 써넣었다. 70여 년 전, 독일과 일본 파시스트들이 유럽과 아시아 전장에서 거듭 승리를 거둘 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세계를 감동시키는 연설로 미래 사회는 4대 자유를 보장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 하나가 ‘신앙의 자유’다. 이에 따라 신앙의 자유는 《인권 선언》에 쓰여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천부권이 됐다.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이처럼 중요한 것은 사람이 신을 믿건 믿지 않건 세상에 살면서 두 가지 큰 문제, 즉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정교(正敎) 교리인 도가의 ‘원한을 은혜로 갚아라’, 불가의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유가의 ‘어진 자는 타인을 사랑한다’, 기독교의 ‘남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 등은 모두 사회의 안정과 조화를 유지하는 지혜였다. 중국인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 유지되게 했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본다면, 사회도덕이 높고 발달한 문명에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시대는 모두 종교의 흥성과 관련 있었다. 반면 한 문명이 멸망할 때는 늘 인류 도덕이 땅에 떨어졌을 때였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민심을 얻을 때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독재 기간, 큰 재난은 모두 종교 파괴와 함께 발생했다. 일례로 1950년대에 종교를 단속한 후 몇 천만 명이 아사한 대기근이 발생했다. ‘구(舊)교육, 구(舊)문예, 구(舊)도덕, 구(舊)전통’을 반대한다던 ‘파사구(破四舊)’ 운동, 그리고 종교를 짓밟은 문화대혁명은 ‘10년 대재난’이다. 개혁개방 시기 종교 자유가 다소 회복됐다. 선종(禪宗)의 6조가 당나라 때 광둥(廣東)에서 원적한 후 지금까지 육신이 썩지 않고 여전히 사오관(韶關) 난화사(南华寺)에 단정히 앉아있다. 혜능의 육신이 여전히 보존될 수 있는 것은 당시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이 광둥에서 정무를 주관하던 기간 보호한 것과 관련 있다.

시진핑, 장쩌민 종교정책 바로잡아

그러나 장쩌민 집권 시기에 와서, 특히 1999년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후 종교 자유는 전대미문의 파괴를 당했다. 1억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자들은 신앙의 권리를 박탈당했을 뿐더러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자행된 비방 선전, 생계활동 파괴, 감금, 강간, 혹형, 고문치사, 심지어 생체장기적출의 만행에 직면했다. 장쩌민은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자행한 이후 2001년 12월 역대 최대 규모로 종교공작회의를 열고 파룬궁 탄압을 더욱 선동하고 강화했다. 당시 회의 중 파룬궁에 대한 ‘투쟁’ 구호가 빗발쳤다.

15년 뒤, 시진핑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99년 중난하이에서 평화 청원한 ‘4.25 평화 청원’ 기념일을 앞두고 다시 전국종교공작회의를 열었다. 그는 “법에 근거해 종교업무를 관리해야 한다”, “법률로 정부의 종교업무 관리 행위를 규범화하고, 법률로 종교와 관련된 각종 사회관계를 조율한다”고 강조했다. 또, 종교 신앙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중화민족의 훌륭한 전통을 발양해 단결진보, 평화관용 등의 관념으로 종교를 믿는 광범위한 군중을 인도하고, 각 종교가 기본신앙, 핵심교의, 예의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동시에 교의교규 중에 사회통합, 시대진보, 건강문명에 유리한 내용을 발굴, 교규교의에 대해 당대 중국 발전 진보의 요구에 부합되고 중화의 우수한 전통문화에 부합되는 해석을 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중국 매체의 해석에 따르면, 이 같은 초대형 전국공작회의는 통상 중대한 정책방향의 변화를 뜻한다.

시진핑의 연설은 장쩌민의 종교 탄압 정책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시진핑의 전면적인 의법치국 관련 발언, 민원 중시, 군중 문제 해결 등 지시는 모두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수련자들의 평화 청원 때부터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 과정에서 파괴해버렸던 법제를 전면 바로잡는 것이다. 시점도 공교롭게 ‘4.25’ 17주년 전후로 선택했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도 깊이 음미할 만하다.

시진핑은 재임 기간 반부패 명의로 왕리쥔, 보시라이, 쑤룽, 리둥성, 쉬차이허우, 저우융캉, 궈보슝, 장웨(張越) 등 파룬궁 탄압을 주도한 이들을 처리했고, 이번에는 장쩌민의 종교 탄압 정책을 조정했다. 시진핑의 이 같은 정의로운 행보와 명쾌한 주장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정법 계열 소속 파룬궁 탄압 주범 체포

4월 25일, 전국정법대오건설공작회의(全國政法隊伍建設工作會議)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시진핑이 제기한 국민을 위한 집권, 청렴결백한 정법대오 건설 등 요구가 전달됐다. 또 검찰 및 사법부의 부패를 단호히 처벌할 것을 강조했다.

17년 전의 전국정법공작회의, 즉 1999년 12월 파룬궁 탄압 초기 회의에서는 장쩌민의 수하인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 뤄간(羅幹)이 파룬궁을 “엄하게 타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파룬궁을 ‘엄하게 타격’한 이들 정법관원이 오늘날 이미 대부분 시진핑에 의해 체포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중국에서는 이미 2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실명(實名)으로 혹형죄, 반인류죄, 법률파괴죄 등으로 장쩌민을 고소했다. 이런 고소가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시진핑 집권 이후 가져온 변화다.

중국 변호사들에 따르면, 시진핑이 노동교양을 폐지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사법계통이 파룬궁에 대해 예전처럼 함부로 박해하지 못한다.

이전에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세뇌반, 수감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구타로 장애자가 되거나 죽는 사례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파룬궁 수련자에게 형을 가하는 경우가 줄고 있다. 이러한 진보적 변화는 격려할 만하다. 당국은 마땅히 장쩌민을 공개적으로 체포하고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

매년 4월 25일 전후, 세계 각지 파룬궁 수련자들이 1999년의 ‘4·25’ 평화 청원을 기념하는 모습.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붕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대중에 알리면서, 파룬궁을 박해한 주도자들을 처벌하고 박해를 종식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 다이빙/에포크타임스

공산당 없는 중국을 호소한다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정신과 전통문화의 부활을 전제로 한다고 언급했다. 2014년 연설에서는 “중화문화의 흥성이 없으면 중화민족의 대부흥이 있을 수 없다”며 “한 민족의 부흥은 강한 물질적인 힘도 필요하지만 강한 정신적인 힘도 필요하다. 선진적 문화가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인민의 정신세계가 풍부할 수 없고, 민족정신의 힘이 끊임없이 커질 수 없으며, 한 나라, 한 민족이 세계 민족 중에 우뚝 설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도덕을 되찾고 전통문화를 부흥하는 것은 중화민족 부흥의 전제다. 1억 명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은 박해 중에서 ‘진(真)·선(善)·인(忍)’의 신앙을 견지함으로써 중화민족 전통문화의 가장 훌륭한 품성, 즉 성실하고 선량하며, 관대하고 참고 양보하며, 강인 불굴한 품성을 펼쳐 보였고, 세계인들이 중국의 희망을 보게 했다. “파룬궁은 나라와 민중에게 백 가지 이로움은 있지만 한 가지 해도 없다”. 탄압을 당할 때건 당하지 않던 때건 그들은 모두 사회 안정에 있어 탄탄한 힘이다.

주지할 것은 전통문화와 종교가 모두 ‘유신론(有神論)’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산당이 주장하는 ‘무신론(無神論)’과 근본적인 충돌이 있다. 양자는 병치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정권 수립 후 줄곧 종교를 압박, 왜곡하는 근본 이유다. 파룬궁을 둘러싼 신앙의 자유 문제를 어떻게 대할지, 특히 중공이 파룬궁 탄압 과정에서 범한 끔찍한, 천인공노할 반인류 범죄 등 문제를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 하는 것은 미래 중국의 발전과 관계되며, 역사에서 시진핑 개인이 자리잡을 위치와도 연관된다.

역사적으로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이 있었다. 멸불(滅佛) 칙서를 발표한 황제는 척살당하거나, 급병으로 죽거나, 멸족당하거나,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하는 재앙이 따랐다.

일단 신앙의 자유와 문화부흥이 시작되면 중국인은 만악을 모두 갖춘 중공의 실체를 똑똑히 볼 수 있다. 중국인은 공산당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공산당을 포기할 것이다. 공산당이 없는 중국, 그것은 본지의 요구이자 중국 민중의 진심이며 역사 발전의 필연이다.

천 년 왕조도 없고 천 년 정당도 없다. 하지만 천 년 종교와 신앙은 있다. 중공은 결국 역사의 뒤켠으로 전락할 것이다. 중공의 죄악으로 얼룩진 통치와 민족 고난의 역사를 종결짓는 사람, 그는 바로 중화민족의 공신이요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에포크타임스 편집부
2016년 4월 28일

위 기사 내용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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