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보도] 감정은 이성을 대체할 수 없다

The Epoch Times
2015년 11월 5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23일

역사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았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라는 열차는 지금 한창 낭떠러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중공 늑대 굴의 영예에 대한 미련으로 위험을 망각하고 있다.

1921년 서쪽에서 온 ‘공산주의 유령’이 중국에 침입했고, 공명심에 사로잡힌 일부 지식인이 공산당을 설립해 늑대를 스스로 제집에 끌어들였다. 공산당은 중국에서 각종 투쟁운동을 일으켜 문화계 인재를 살육했다. 문화대혁명 때는 중국의 문물과 역사를 말살하고 중화민족의 선조·성현·영웅·왕후장상·재자가인(才子佳人)을 비판했다. 5천 년 문명은 짓밟혀 망가졌고 그 자리에는 중국 공산당 특유의 변질된 문화, 이른바 ‘당(黨) 문화’가 들어섰다.

오늘날 중국인은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대다수가 옳고 그름과 선·악을 완전히 혼동한다. 사악한 환경에서 일시적인 명예와 작은 이익을 최고의 영예이자 일생 중에 마음을 다해 추구해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됐다. 감정(感情)으로 이성(理性)을 대체해, 현 세대가 겪은 치욕을 잊어버리고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 자유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삶이 진정한 영예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중화민족의 후손이라면 더는 감정에 사로잡혀 늑대 굴의 영예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할 일이다. 중공이라는 폭력 범죄 집단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중국인이 이행해야 할 마땅한 역사적 책임이다.

투쟁운동으로 문화계 인재 말살

중공은 문화의 전승자인 지식인의 전통적 가치관, 독립적 사고능력, 사회적 영향력을 최대의 장애이자 위협으로 간주한다. 중공이 일으킨 갖가지 투쟁운동은 모두 각계각층의 지식인을 제거하고 문화계 인재를 말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30년대 중공은 ‘반(反)볼셰비키파’(AB단) 숙청운동을 일으켜 전국 소비에트 구역에서 있지도 않은 ‘반공 AB단’을 허위로 만들어내 그 구성원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적어도 7만여 명이 사망했는데 대다수가 지식인이었다. 이는 중공이 일으킨 지식인에 대한 첫 번째 대규모 ‘육체 소멸’이었다.

1940년대 중공은 3년간 ‘옌안(延安) 정풍운동’을 벌여 지식인 당원에 대한 잔혹한 사상개조를 실시했다. 인성(人性)을 당성(黨性)으로 바꾸고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대표적 사건이 작가 왕스웨이(王實味)에 대한 비판투쟁이었다. 왕스웨이는 전향을 거부했다가 결국 살해당했다. 옌안 정풍운동은 이후 지식인에 대한 체계적인 한 세트의 사상개조 방법으로 발전됐다.

1949년 중공은 정권 수립 후 지식인을 ‘변절자’, ‘내부 첩자’, ‘간첩’ 등 의심의 대상에서 ‘사상오염자’, ‘의견이 다른 자’, ‘정권 전복자’ 등 위험분자로 간주했다. 중공은 국가와 사회자원을 장악하고 교육·문화기구를 직접 관리하면서 지식인의 생계를 쥐락펴락하여 절대복종과 무한충성을 강요했다. 중공은 지식인을 당의 종복으로 개조하기 위해 다른 어떤 계급보다 더 심하게 통제하고 모욕하고 살해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57년 ‘반우파 투쟁’과 1966년 시작된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었다.

중공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반우파 투쟁으로 중국 지식인의 절반이 우파(右派)분자로 몰려 최하층 천민 계급으로 떨어져 박해받았다.

문화대혁명 때 문화계 인재가 받은 박해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욕·고문·위협에 시달리다 못 견뎌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유명 작가 라오서(老舍)는 베이징 태평호에 투신자살했고, 저명 번역가 푸레이(傅雷)는 음독자살하고 그의 아내도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학가 슝스리(熊十力)는 단식 끝에 사망했고 황매희(黃梅戲) 배우로 이름난 옌펑잉(嚴鳳英)은 수면제를 먹고 병원에서 숨졌다. 여배우 상관윈주(上官雲珠)는 건물에서 투신자살했고 베이징대학 부학장이었던 역사학자 젠보짠(翦伯贊) 부부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인민일보 총편집장 덩타(鄧拓)도 음독자살했다.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박해는 지식인 학살이자 전통문화에 대한 유례없는 파괴였으며, 중국인의 정신을 짓밟고 윤리도덕을 망가뜨리는 행위였다. 대다수 지식인은 잔혹한 박해에 ‘허리’가 부러져 침묵하고 무릎을 꿇었다. 민족정신도 이내 시들어버렸다.

시대가 변하면서 중공은 어쩔 수 없이 개혁개방을 진행했지만, 문화계 인재를 제거하고 살해하는 습성은 버리지 못했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에서 대학생과 지식인이 민주화 요구시위를 벌이자 중공은 탱크와 기관총으로 진압했다. 이 진압으로 최소 3천여 명이 사망하고 다수 지식인이 해외로 망명했다.

1999년 7월에는 중공과 장쩌민(江澤民)이 수천만 명의 파룬궁(法輪功·중국 심신수련법) 수련자를 탄압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사회 각 분야 인재와 지식인이 직장과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차별을 받고 있으며 감금·폭행·세뇌·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파룬궁 정보사이트 명혜망(明慧網)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만 3천906명이며 실제 사망한 수련자 수는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믿기 힘든 것은 중공이 살아있는 수련자의 장기를 적출해 이식수술용으로 판매해왔다는 사실이다.

1949년 중공의 정권 수립 이후 중국에서 굶주림·박해·총살로 사망한 숫자는 8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자국민을 이처럼 잔혹하게 대량 학살하는 정권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휘황했던 문명을 철저하게 파괴

문화는 한 민족이 존재하고 지속할 수 있는 기초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뿌리를 잃은 나무처럼 곧 쇠망하기 마련이다. 문화의 전승은 중화민족의 혈맥을 이어줬고 왕조의 흥망은 문화의 혁신과 함께 이뤄졌으며 문화적 동질감은 민족정신을 응집시켰다. 그러나 중공은 전력을 다해 중국문화를 파괴한 후 당(黨) 문화로 이를 대체해왔다. 문화대혁명이 그중에서도 가장 발악적인 사건이었다.

중공은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문물과 역사를 말살했다. 중국 전역에서 1천만 가구가 압수수색으로 재산을 몰수당했다. 민간에 전해지던 엄청난 규모의 진귀한 서화·서적·골동품·도자기 등이 불태워지고 수많은 사찰·궁궐·불상·명승고적이 파괴됐다. 수천 년에 걸쳐 중국 곳곳에 만들어진 역사적 문화적 고적과 유산이 대부분 소실됐다.

중화문명을 대표하는 유가·석가·도가의 성현과 영웅, 왕후장상, 재자가인은 모두 문화대혁명 때 타도대상이 됐다. 이들의 조각상과 사찰은 부서졌고 무덤을 파헤쳐 시신 모독하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능은 영구적으로 훼손됐다. 염제(炎帝)릉은 본당이 불태워졌고 능묘가 파헤쳐졌다. 한자(漢字)를 만든 창힐의 공원묘지와 산시성 순제(舜帝)릉도 훼손됐다. 저장성 사오싱 후이지산의 대우(大禹) 묘도 파헤쳐지고 커다란 대우 조각상도 박살났다. 두상을 잘라내 삼륜차에 싣고 사람들 앞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유가의 시조 공자(孔子)는 중공에 의해 수없이 많은 비판과 모욕을 당했다. 무덤이 평평하게 깎이고 파헤쳐졌으며 공자묘의 조각상이 파괴됐다. 불교의 으뜸가는 보물로서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친히 개광한 삼성상(三聖像) 중 하나인 ‘8세 등신상’은 얼굴부위가 부서졌다. 중국 최대의 도교 성지인 노자의 강경대(講經台)와 주변 도관 100여 곳이 훼손됐다.

민족영웅 악비(岳飛)는 항저우 묘가 부서지고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은 화장돼 뿌려졌다. 명나라의 충신 하이루이(海瑞)는 무덤이 파괴되고 유골은 파헤쳐져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저자 푸숭링(蒲松齡)은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짓이겨졌다. 청나라 ‘천고의개’(千古義丐)로 불리는 우쉰(武訓)도 묘가 파헤쳐져 유골이 구경거리가 됐다가 불태워져 재가 됐다. 청나라말 충신 장즈둥(張之洞) 역시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황야에서 효시됐다. 문무변법 지도자인 캉유웨이(康有爲)도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끈에 묶여 거리에 끌려다니며 모욕을 당했다.

전 세계에서 이처럼 자기 선조에게 악담을 퍼붓고 민족영웅과 재자가인을 모욕하며 자신의 문물과 역사를 훼손하는 정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5천 년 문명은 철저하게 짓밟히고 으스러져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했고 중공의 당 문화로 대체됐다. 모두가 침묵했고, 늑대무리가 미친 듯 날뛰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중국인이 바로 이러한 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옳고 그름, 선과 악이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늑대 굴의 영예, 미련 가질 필요 없다

공산주의가 중국에 들어온 후 중공은 “나라와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 생존을 도모한다”, “인간천당을 건립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인을 기만했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은 일생동안 당 문화 속에서 성장하면서 재산과 지위, 성과를 얻은 것에 대해 스스로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영예가 미련을 둘 가치가 있는가?

오늘날 중국은 환경이 악화되고 도덕이 타락했으며 믿음과 신뢰가 없어졌다.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이 유부녀를 강간하고, 학생이 은사를 살해하며 노인이 넘어져도 일으켜주는 사람이 없으며, 부정부패한 관리는 첩을 두서너 명씩 두고 있다. 그 속에 몸담고 있는 것은 늑대 굴에 들어앉은 것과 같은 꼴이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던 옛 중국의 태평성세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중공은 1949년 정권을 수립하며 톈안먼에서 거짓된 구호로 중국인을 현혹해 스스로 멋진 것처럼 느끼게 했다. 어떤 이는 천하를 제패한 것처럼 으스댔고 어떤 이는 권력과 지위에 중독됐다. 어떤 이는 겉으로는 중공과 같은 무리로 취급받길 거부하지만 속으로는 중공이 제공한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중공이 무너지고 나면 그 모든 것이 지푸라기만 한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암흑기에 불과하다.

중공은 계획경제가 무너진 후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중국이 세계에 진출한 후 경제발전은 가속화했고 생활 수준이 제고됐다. 그러나 떠들썩하게 칭송할만한 일은 아니다. 중공 아닌 어떠한 정당이 집권했더라도 정상적인 정당이기만 했다면 중국인의 근면성과 지혜,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고 더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중공 정권 치하에서 문화대혁명, 톈안먼 탄압, 파룬궁 박해 등을 겪으며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중국인은 8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중공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즐겁게 일하고 더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지금보다 훨씬 부유해졌을 것이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굴원(屈原)의 ‘상하구색’(上下求索), 악비(岳飛)의 ‘정충보국’(精忠報國), 제갈량의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하다’, 범중엄(範仲淹)의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가 즐거워진 다음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같은 시대정신을 전해 내려왔다.

‘금전이나 권력에 미혹되지 않고, 가난이나 비천함으로 인해 기개가 꺾이지 않으며, 무력이나 권세의 위협 앞에도 굴복하지 않는다’(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는 대장부 정신도 있다.

자유사회에도 자유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인의지사가 있으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나치 조직에서의 지위와 명성을 긍지로 느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독재자 스탈린과 함께 한 일을 영예로 느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괴벨스, 힘러, 야고다, 예조프의 말로를 봐도 그러하다.

일부 중국인은 중공 사악의 환경에서 일시적인 명예와 작은 이익을 영광으로 여기며 그것을 사람 일생 중에 미련을 두고 추구해야 할 것으로 삼고 있다. 사실 이런 것은 중국의 진정한 전통문화와 역대 왕조가 이룩한 번영, 자유사회의 정상적인 이념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영광스러운 것이 결코 아니다.

늑대 굴에서 얻은 영예에 미련을 두지 마라! 그것은 이번 세대 중국인의 치욕으로 늑대를 집에 끌어들여 늑대와 함께 날뛰며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중국은 새로 들어선 왕조가 이전의 역사를 기록하여 이어간다는 ‘역대수사’(易代修史)의 전통이 있다. 중화문명의 영욕과 성쇠를 기재한 24권의 사기(史記)는 맑은 거울처럼 역대 왕조와 시대의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추고 있어 선량함과 간사함은 분별케 한다. 붉은 왕조인 중공이 멸망할 때 그 한 페이지의 역사책을 펼쳐본다면 늑대 굴에서 얻은 부귀영화와 명예는 오히려 죄악의 증명이 될 것이다.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무너진 레닌 상(像)은 그것의 사악함을 증명했고, 공산주의의 시커먼 이론서는 그것의 치욕을 기록했으며, 공산주의 수난자 기념비는 그들의 고난을 호소했다. 늑대 굴의 영예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천고에 남기는 것일 뿐이다.

중국 공산당 악당 제거는 중화 자손의 책임

중화민족이 현 세대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라면, 중공은 어머니를 능욕하는 악당이다. 오늘날 중국인은 감정에 사로잡혀 늑대 굴의 영예에 미련을 둬서는 안 된다. 중화민족의 자손으로서 폭력범죄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적인 선택이다. 중공이 없다면 중국은 진정으로 부강해질 것이고 자유롭고 번영할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는 중공 없이도 모두 세계 강국이었다.

먹구름은 결국에는 걷히기 마련이다. 이미 거대한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중공의 멸망은 낭떠러지로 향하는 열차와 같아 피할 수 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 위에 올라탄 개인의 운명과 국가와 민족의 미래다. 이성으로 감정을 대체해 냉정하게 중국을 위기로 몰아넣은 근본원인을 생각해야 한다.

중공의 해악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늑대 굴의 영예에 대한 미련을 버려 하루빨리 중공의 ‘죽음의 열차’에서 뛰어내리자. 뛰어내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기원 탈당사이트에서 중국 공산당과 산하조직인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는 삼퇴(三退) 성명을 하면 된다. 진심으로 삼퇴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가명으로도 충분하다.

중국인은 중화민족의 자손이다. 공산당을 버리고 중화민족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모든 중화의 아들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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