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장벽에 막힌 중공…멀어져 가는 반도체 자급률 70%의 꿈

린잔신, 이윤정
2020년 9월 22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22일

중국의 집적회로(IC·칩)는 수입량이 5년 연속 원유 수입량을 앞질러 최대 수입 품목이 됐다.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고 기술 자립도가 낮다는 의미다.

지난 15일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정식 발효되면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인 대만 TSMC는 화웨이에 공급하던 기린 칩 위탁생산을 중단했다.

기린 칩은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하이실리콘이 개발한 모바일용 반도체다. 그동안 화웨이는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기린 칩을 대만 TSMC에 위탁 생산해왔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가 발효되기 전 반도체를 대량으로 사재기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6개월~1년 정도는 버틸 것으로 추정한다.

반도체 재고가 소진되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 군용이나 차량용 제품 위주로 사업구조 변경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제재에 화웨이가 흔들리면서, 중국 관영매체는 “반도체 칩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며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4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설립하고 1390억 위안(약 23조 원)을 모금해 반도체 산업에 쏟아부었다.

지난해 2기 투자금액은 2040억 달러(약 234조 원)에 달했고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달 4일 ‘반도체·SW 산업 발전정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세제 혜택, 금융지원 등 8대 부문에서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정부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당국은 기업에 칩 제조 분야 투자를 지속적으로 장려해왔다.

지난해 화하행복산업연구원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칩 제조에 총 3200억 위안(약 54조400억 원)을 쏟아부어 12인치 생산라인 10개를 완공했다.

현재 5100억 위안을 투자해 14개 생산라인을 건설 중이며 23개 라인에 5000억 위안을 투자할 계획이다.

경제평론가 왕젠(王劍)은 “정부가 출자한 국가집적회로기금은 각 지방정부로부터 3~5배의 투자를 끌어냈다”며 “이 기금으로 2014년부터 반도체 산업에 수조 위안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2025년 70% 자급률 목표치 달성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IC 인사이츠는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을 15.7%로 보도했다. 2014년(15.1%)보다 약간 오른 수준이다. 오는 2024년에도 20.7%(43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에 대한 족집게 예언으로 유명한 대만 경제학자 우자륭(吳嘉隆)은 “중국의 자금이 많아 보이지만 코로나 이후 미국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일부 중국 고위층과 국영기업의 해외자산이 압류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자산은 현재 매각 중이며 홍콩, 중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반도체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반도체는 설계, 제조, 기술, 설비 각 분야의 진전이 필요한 고도의 혁신산업이다. 대만 TSMC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갖춘 것도 제조과정에서 많은 혁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우자륭은 “정부 지원금이 거품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은 인재영입, 자금 살포로 따라잡을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중국은) 설비 구매, 인재 스카우트, 덤핑, 국가보조금 지급 등의 방식으로 일부 산업을 일으켰지만, 하이테크산업인 반도체 산업은 그런 식으로 구축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이 불투명한 반도체 산업에 리스크가 큰 베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 화웨이 다음 표적으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중신궈지(SMIC)가 지목된다. 미국은 이미 SMIC도 거래 제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SMIC가 14나노(㎚) 칩 양산에 성공했지만, 시장점유율은 대만 TSMC의 10분의 1수준이고 기술 수준은 TSMC, 인텔보다 2~3세대 뒤떨어졌다.

대만 TSMC는 지난해부터 7나노를 양산했고 내년에 5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현재 3나노 생산 공정도 준비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제재를 결정하면 SMIC는 자체 기술 혁신에 성공하더라도 3년 뒤에 10~12나노 공정 수준에 머물게 된다. 기술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 기업을 제대하는 최대 이유는 국가 안보다. 민간기업에 제공한 기술이 중국 공산당 산하 인민해방군(중공군)에 흘러 들어가 국방력 강화에 이용된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SMIC도 아슬아슬하다. 재미 중국 경제학자 청샤오눙(程曉農) 박사는 “SMIC의 고객인 다탕전신(大唐電信)은 중공군에 광섬유 통신장비 등을 제공하는데 이 설비에는 군사공업 2급 기밀 인증이 필요하다. 바꿔 말해 SMIC가 중공군을 지원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청샤오눙은 “SMIC가 미국의 제재로 기술지원이 중단되면 SMIC를 필두로 하는 중국의 칩 기술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기술낙후로 인한 군사 장비노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취안신집적회로(QXIC)와 우한훙신반도체(HSMC)가 지난해 고액 연봉을 내세워 대만 TSMC의 상위급 경력 엔지니어와 매니저를 100명 이상 빼갔다.

이와 관련 대만 애널리스트 우자륭은 “TSMC는 개인보다 팀워크가 강점이다. 수백 명을 데려간다고 해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우자륭은 “중국이 대만 인재를 팀 단위로 영입한 것이 아니다. 팀으로 간다고 해도 제도, 기업문화, 전략이 달라서 중국이 서두르는 반도체 자립 전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TSMC는 대만 남부에 공장을 추가 건설 중이다.

생산을 앞둔 5나노 공장은 EUV(극자외선) 노광기 18대를 도입했다. 노광은 반도체 웨이퍼에 극자외선을 쏘아서 회로를 그리는 방식이다.

TSMC는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을 비롯해 세계 3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 램 리서치와 일본기업 등을 유치하고 글로벌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산업생태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자륭은 “중국이 인재 영입, 인수합병(M&A) 등 각종 수단을 총동원해서 대항하더라도 반도체 분야 핵심기술 대부분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며 “미국과 싸우려 드는 것은 외교와 산업정책에서 논리성이 결여됐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 맞서다가 결국 칩 공급이 끊기게 됐다. 앞으로 미사일, 로켓 시험 발사에도 영향받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제재하면 중국이 목표한 2025년 70% 자급률 달성은 꿈도 못 꾼다”고 단언했다.

한편,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려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대만, 한국, 일본은 인재 빼가기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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