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총리 암살로 보는 일본 정치 테러사

전현직 일본 총리 암살 연이어
최창근
2022년 07월 9일 오전 10:45 업데이트: 2022년 07월 9일 오후 2:19

7월 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전직 일본 해상자위대원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전후(戰後) 총리 가운데 처음으로 암살됐다.

1885년 내각총리대신 제도 도입 후 101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까지 총 64명의 총리가 있다. 그중 임기 중이나 퇴임 후 암살된 사람은 아베 신조 신조 총리를 포함해서 7명에 이른다. 총리 외에도 암살된 각료, 정치인은 더 존재한다. 일본 정치 테러사는 어떠할까.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 당하는 이토 히로부미.

일본제국(日本帝國) 성립 후 초대·5대·7대·10대 등 총 4차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총리 퇴임 후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조선 강제 합병을 주도했다. 이후 한일 강제병합 한 해 전인 1909년 추밀원(樞密院) 의장으로서 블라디미르 코콥초프(Vladimir Kokovtsov) 러시아제국 재무대신과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안중근 의사의 저격에 절명했다.

제19대 총리대신 하라 다카시(原敬)는 입헌정우회 출신으로 정계 입문했고, 이토 히로부미 내각에서 체신성 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내무성 대신 등을 거쳐 1914년 입헌정우회 총재가 됐고, 1918년 총리가 됐다. 총리 임기 중인 1921년, 교토(京都)에서 열리는 입헌정우회 교토지부 대회 참석차 도쿄(東京)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나카오카 곤이치(中岡良)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나카오차 곤이치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지만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기에 징역 15년으로 감형됐고 1934년 사면됐다. 사건은 현직 일본 총리가 암살된 첫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하라 다카시.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임기 중 암살 당했다.

1929~1931년 제27대 총리대신이었던 하마구치 오사치(濱口雄幸)는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법학부 졸업 후 대장성(大蔵省·현 재무성) 관료가 됐다. 전매국(專賣局) 장관, 대장성 정무차관을 거쳐 1916년 입헌동지회에 입당하고 중의원(衆議院·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대장성 대신, 내무성 대신 등 요직을 역임한 후 총리대신이 됐다. 근엄한 풍채로 인하여 ‘사자 재상’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그의 총리 재임기는 미국발 세계 대공황 시기였다. 일본도 경기침체, 인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난이 가중됐고 자연 사회 불만이 고조됐다. 그러던 중 1930년 11월 도쿄역에서 우익 청년 사고야 도메오(佐郷屋留雄)에게 저격당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현직 일본 총리 중 두 번째 암살 이었다.

하마구치 오사치 사망 후 제25대 총리대신이던 와카쓰키 레이지로(若槻禮次郎)가 제28대 총리대신이 되었지만 244일 재임한 단명 총리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이어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가 1931년 12월 제19대 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 그는 대표적인 호헌 운동(護憲運動·입헌 정치 옹호 운동) 옹호자였다. 아울러 군비 축소를 주장했다. 이는 일본 해군 장교들의 불만을 샀고 1932년 미카미 다카시(三上卓) 해군 중위 등이 주축이 되어 총리관저에 난입해 이누카이 쓰요시를 암살했다. 5·15 사건이다. 이는 일본 첫 군사 쿠데타였다.

이누카이 쓰요시 암살 후 대장성 대신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가 제20대 총리대신이 됐다. 이후 뒤를 이은 사이토 마코토(齋藤実)내각,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 내각에서 다시 대장성 대신으로 일했다.

2.26 쿠데타 발발 후 도쿄 시내를 행군하는 장교와 병사들.

제31대 총리대신이 된 오카다 게이스케는 1889년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졸업·임관 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참전했다. 1923년 해군성 차관이 됐으며 1924년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거쳐 1932년 해군성 대신이 됐다. 그러다 1934년 총리대신으로 영전했다. 총리 재임 중이던1936년 2월 26일, 군국주의 성향의 청년 육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들은 총리를 비롯한 각료 암살을 목표로 했다. 장교들에 의해 총리를 지낸 사이토 마코토(斎藤実) 내대신(內大臣), 역시 전직 총리인 다카하시 대장성 대신, 와타나베 조타로(渡辺錠太郎) 육군교육총감 등이 살해당했다. 목표였던 오카다 게이스케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일왕의 원대 복귀 명령에 의하여 쿠데타는 이틀 만에 막을 내렸고 오카다 게이스케는 책임을 지고 총리직을 사임했다. 2·26 쿠데타는 비록 이틀 만에 진압됐지만 일본 헌정 정치에 치명상을 입혔고 1930년대 군국주의로 가는 시발점이 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 총리 암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주요 정치 지도자·각료 피습 사건은 이어졌다.

전후(戰後) 첫 정치인 피습 사건은 1960년 발생했다. 그해 10월, 도쿄 히비야(日比谷)공립회관에서 개최된 자유민주당·민주사회당·일본사회당 3당 당수 방송 공청회에서 사회당 위원장(대표)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가 우익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山口二矢)의 칼에 흉부를 찔려 숨졌다. 당시 17세로 미성년자였던 야마구치 오토야는 도쿄 소년감별소 수감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은 종전 후 첫 발생한 정치인 암살 사건으로 기록됐다.

아사누마 이네지로 일본 사회당 당수 피습 장면.

30년 후인 1990년 1월,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나카사키(長崎)시 시장이 우익단체 회원에게 총격당했다. 1979~95년 총 네 차례 나가사키 시장을 지낸 지역 정계 거물이던 그는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론을 주장했고 이로 인하여 우익 단체의 표적이 됐다. 모토시마 히토시는 저격으로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은 건졌다.

1990년 10월, 국토청(國土廳) 장관(청장), 노동성(현 후생노동성) 대신 등을 역임한 니와 효스케(丹羽兵助) 중의원 의원이 나고야(名古屋)시 일본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우익단체 회원의 칼에 중상을 입었고 후유증으로 곧 사망했다.

1992년 3월,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유민주당 부총재가 아시카가(足利) 시민회관에서 열린 정치 집회 중 극우단체 회원 와타나베 히로시(渡辺浩)에게 저격당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 10월, 이시이 고키(石井紘基) 민주당 중의원이 자택 앞에서 회칼에 피습당해 목숨을 잃었다. 범행 후 자수한 살해범은 일본 폭력 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소속 야쿠자였다.

가장 최근의 정치인 대상 테러는 2007년 4월 발생한 이토 잇초(伊藤一長) 나가사키 시장 살해 사건이다. 나가사키시 시내 JR 나가사키역 근처에서 야마구치구미 소속 야쿠자에게 총격을 당했고 병원 치료 중 세상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