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산 대지진 45주년…中공산당이 밝힐 수 없는 진실

2021년 7월 31일
업데이트: 2021년 8월 1일

28일은 탕산(唐山) 대지진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재앙의 교훈을 되새기며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일부 국내외 학자들은 이 지진은 천재이기도 하지만 인재 요소가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 정부는 지금까지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있다.

1976년 7월 28일 오전 3시 42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14개 성·자치구·직할시에서 지진이 감지됐고, 이 가운데 베이징시와 톈진(天津)시가 큰 영향을 받았다. 단 10초 만에 중국 북부에 위치한 이 150만 인구의 공업 도시는 지옥으로 변했다. 시 전역에 교통‧통신‧급수‧전기 공급이 끊겼고, 시민 80% 이상이 잠든 채 건물 더미에 깔렸다.

당시 중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4만여 명이 사망하고 16만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민간에서 추정하는 사망자 수는 최소 60만 명이다. 전 허난(河南)의과대학 의사이자 전 미국 예일대의 암 연구원인 장위밍(張育明)이 밝힌 바에 의하면, 탕산 대지진은 사실 규모 9였으며 사망자는 약 75만 명이었다.

웨이젠싱(尉健行)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비서였던 왕유췬(王友群) 박사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중국 고위층은 일찌감치 탕산 지진 예보를 보고받았다. 하지만 당시 지진 전문가들이 정치운동 과정에서 밀려나고 지진 예보는 중국공산당 고위층에 의해 억눌림으로써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왕유췬 박사는 ‘탕산 대지진은 천재라기보다는 인재다’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에서 당시 중국 전문가들이 탕산 지진을 추적 모니터링했지만, 중국공산당 고위층의 중시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1967년 10월 20일,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9년 전, 중국 지질학자인 리쓰광(李四光)은 “(탕산 지역의) 롼현(灤縣), 첸안시(遷安)에서 관측을 해야 한다. 이들 지역에서 이상 활동이 있을 경우 대지진 발생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1968년,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8년 전, 탕산시 지진사무실 책임자 양유천(楊友宸)은 탕산 지진 관측망 구축에 나섰다. 관측 데이터를 매일 보고할 전담 인력을 탕산 시내 40여 개 관측소에 배치했다.

1975년 12월,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7개월 전, 지질(地質)부 지진대(隊)가 국가지진국에 보고한 ‘1976년 지진 추이 의견(1976年地震趨勢意見)’에 탕산을 위험 삼각지역에 포함하고 “1976년에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1976년초,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6개월 전, 양유천은 탕산시 지진 대비 업무회의에서 “1976년 7, 8월 또는 하반기에 탕산시 주변 50km 내에서 규모 5~7의 강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1976년 5월,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2개월 전, 양유천은 국가지진국 화베이 수화학 지진회의에서 “두세 달 내에 탕산에서 강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6년 7월 6일,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22일 전, 카이롼 마자거우쾅지진대(開灤馬家溝礦地震台) 전문가 마시룽(馬希融)은 국가지진국, 허베이성 지진국에 강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1976년 7월 14일,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14일 전, 지질부 지진대는 국가지진국에 탕산 지역에 7가지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고 전보로 알렸다. 탕산2중 군중 측정소 책임자 톈진우(田金武)는 “1976년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탕산 지역에서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일어날 것이며, 규모 8에 달할 수도 있다”는 지진경보를 발령했다.

1976년 7월 23일,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5일 전, 탕산 러팅훙웨이(樂亭紅衛)중학교 군중 측정소 책임자 허우스쥔(侯世鈞)은 “곧 닥칠 대지진은 최소 규모 6.7일에서 최대 7.7로 예상된다”고 예보했다.

1976년 7월 27일 18시,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기 9시간 전, 마시룽은 카이롼광무국 지진판공실 및 상부에 “규모 7.3 이상의 강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탕산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보가 지속적으로 울렸지만, 당시 중국공산당 고위층은 ‘회개하지 않는 당내 최대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실권파)’인 덩샤오핑(鄧小平)을 비판하느라 국민들의 생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이 모든 지진 예보는 중국 공산당 중앙의 중시를 받지 못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부가 중시하지 않으니 허베이성 위원회, 탕산시 위원회도 중시할 리가 없었다. 결국 1976년 7월 28일 저녁, 탕산 대지진이 일어났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왕유췬은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70년 동안, 탕산 대지진 같은 비극은 중화 대지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큰 천재지변마다 중국공산당이 만든 인재가 겹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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