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언론 탄압 없다” 공언한 날, 또 다른 신문 폐간 선언… 비판 언론 멸종할지도

최창근
2022년 1월 6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6일

빈과일보,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이어 전구일보 폐간 선언
캐리 람 “홍콩 언론 탄압 없어… 폐간은 매체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
홍콩 언론 자유 지수 급락 2002년 18위, 2021년 80위
폐간 선언 언론사들 “사원의 안전 위해 불가피”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남긴 명언이다.

지난해 6월, 빈과일보(蘋果日報) 폐간을 시작으로 온·오프라인 신문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오늘날 홍콩의 언론 현실에 대해서 ‘홍콩특별행정구 수반’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입장신문(立場新聞·Stand News)에 이어 시티즌뉴스(衆新聞·CitizenNews)마저 자진 폐간을 선언한 1월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기자 회견에서 “신문사 운영 중단은 그들의 자율적 결정”이라며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탄압한 것이 아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빈과일보, 입장신문 폐간이 ‘시티즌뉴스에 일종의 칠링 효과(chilling effect·소송 등 법적 제재로 무형의 압력을 가해 합법적인 권리 행사나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운영을 중단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인 홍콩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시티즌뉴스는 고별사에서 “우리는 초심을 망각하지 않았다. 단 애석하게도 지난 2년간 사회는 격변했고 매체 생존환경은 악화됐다. 현재 우리는 우려 없이 우리의 애초 이상을 달성할 수 없다. 태풍의 눈이 가까이 있는데 우리는 작은 조각배에 불과하다. 파고 높은 물결에 휩쓸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승선한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밝혀 캐리 람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양젠싱(楊健興) 시티즌뉴스 주필 역시 “운영 중단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입장신문 운영 중단이 촉발한 일이다. 홍콩 사법 당국의 연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홍콩 매체들은 당국의 처리를 받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소리(Deutsche Welle)’ 중문판에 따르면 캐리 람은 “홍콩특별행정구 정부는 언론 보도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며, 자유롭게 일하되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콩에서 언론 자유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언론인과 언론매체는 우리처럼 법을 준수해야 하며 법을 준수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면 결단을 내리고 필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리 람이 언급한 법은 2020년부터 시행 중인 ‘홍콩국가보안법’이다. 그는 이어지는 신문 폐간이 홍콩 정부의 언론 자유 침해 때문이라는 서방 언론의 비판도 반박했다. “서구 국가에 국가보안법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 달라. 나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캐리 람의 발언은 반년 전과 동일하다. 지난해 6월 22일, 빈과일보 폐간 후 그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영국 등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반중 성향의 빈과일보를 경찰이 탄압했다고 비난하면서 홍콩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미화하고 있다”고 일축하며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 등의 체포는 저널리즘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언론의 자유를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캐리 람이 ‘언론 자유 침해는 없다’고 항변하는 실제 홍콩의 언론 환경은 어떠할까.

홍콩은 아시아에서 언론 자유가 가장 폭넓게 보장됐던 지역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언론의 자유만은 인정받았다. 1997년 중국 반환 이후에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에 의하여 중국 본토와 분리된 정치 체제를 갖고 있고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기능한다는 점 때문에 글로벌 언론사들의 아시아 본부 설립지로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언론 환경은 급변했다.

홍콩기자협회(HKJA)는 2021년 7월 발간한 ‘누더기가 된 자유’라는 제목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홍콩의 언론 자유가 다방면에서 침식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20년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1년은 홍콩의 언론 자유에서 ‘역대 최악의 해’였다”고 지적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는 2021년 7월, 캐리 람 행정장관을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약탈자(predators)’ 명단에 올리면서 “캐리 람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꼭두각시임이 증명됐으며, 그는 이제 공공연히 언론에 대한 시진핑의 약탈적인 방식을 지지한다”고 비판했다. 언론 자유 약탈자 명단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이름이 올랐다.

같은 해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세계언론지수에서 홍콩특별행정구는 전 세계 180개 국가·지역 중 80위로 기록됐다.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2년 18위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서 ‘급락’한 것이다.

홍콩 언론인들이 체감하는 현실도 다를 바 없다. 지난해 5월, 홍콩 공영방송 홍콩라디오텔레비전(香港電臺·RTHK)은 홍콩기자협회가 회원 36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2021년 언론자유지수(최고 100)가 전년도보다 4.1포인트 떨어진 32.1로, 2013년 해당 설문을 시작한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캐리 람이 “홍콩 내 언론 탄압은 없다”고 공언한 날 또 다른 온라인 신문이 폐간을 선언했다. 전구일보(癲狗日報·Mad Dog Daily)를 운영해 온 레이몬드 웡(Raymond Wong Yuk-man·黃毓民) 전 홍콩 입법회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마이 라디오 홍콩(MyRadio Hong Kong)을 통하여 전구일보 운영을 중단하고 콘텐츠도 삭제한다 발표했다.

레이몬드 웡은 “우리에 대한 기소 여부가 전적으로 정부에 달려 있다. 당국이 입장신문에 게재된 기사들을 선동적이라고 여긴다면, 우리 매체도 분명히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는 안전한 곳에 있고 매일매일 (홍콩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직원들은 매일의 일상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나는 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폐쇄 이유를 설명했다. 저명 언론인이자 시사평론가인 레이몬드 웡은 1996년 반공산당·반둥젠화(董建華·초대 홍콩 행정장관)을 기치로 전구일보를 창간했다. 경영난으로 1998년 운영을 중단했다 2018년 온라인 매체로 재창간했다. 전구일보는 2019년 홍콩 민주 시위 당시 현장 생중계를 통해 명성을 떨쳤고, 레이몬드 웡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치인들과 정부 비판 대담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8월부터 아내와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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