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홍콩의 미래를 묻는다

허영섭/언론인, 전 이데일리 논설실장
2022년 1월 3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3일

홍콩의 어두운 미래상을 보여주는 ‘10년’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영화가 현지에서 공개돼 연일 매진 사태를 일으킬 만큼 큰 호응을 받은 것이 2015년의 일이다. 젊은 영화감독들이 각각 다른 스토리로 제작한 5편의 작품이 같은 제목으로 묶였을 뿐이지만 내세우는 메시지는 모두 비슷하다. 중국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주민들의 인권과 자유가 현저하게 침해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당국이 폭력단 조직원을 끌어들여 암살을 시도하면서까지 보안법을 추진한다거나, 광둥어(廣東語)를 사용하는 홍콩인들이 베이징어(北京語) 사용자들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하는 스토리로 엮어져 있다.

홍콩 독립 지지자가 유죄 판결을 받고 단식투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과거 영국이 관할하던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래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위축돼 버린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한 해 전 중국 간섭에 저항하며 도심을 휩쓸었던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의 좌절로 인한 불안한 분위기가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을 때였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홍콩 수반인 행정장관의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하며 민주화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결국 최루탄을 앞세운 경찰 진압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홍콩에 외교·국방 분야를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허구성을 두루 고발한 시위였다. 비슷한 무렵, 중국에 비판적인 서적을 낸 출판업자들이 종적도 없이 하나둘 사라진 사건도 주민들의 신경을 자극할 만했다. 이렇게 행방을 감춘 5명의 서점 관계자가 중국에서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그 뒤의 얘기다.

이처럼 홍콩에 있어 중국의 손길은 깊숙이 뻗쳐오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로부터 10년 뒤, 즉 2025년까지를 설정해 앞으로 일어날 비관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보다 시기가 3년이나 앞당겨진 지금 홍콩 사회의 모습은 훨씬 심란하다. 현실이 픽션을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다. 홍콩 반환 이후 50년간 기존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홍콩기본법 규정이 한낱 휴지 조각으로 변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결과다.

가장 심각한 것은 2020년 5월 중국 전인대(全人代)가 직접 나서서 통과시킨 홍콩보안법이다. 홍콩의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비판적인 정파와 여론을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 보안법에 의해 민주진영 정치인들이 대거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파장을 실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적잖은 정치인들이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속사정을 이해할 만하다. 홍콩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자칫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적발될 경우에도 즉각 추방당하기 십상이다.

최근 실시된 입법회 선거의 투표율이 역대 가장 낮은 30.2%를 기록한 것도 보안법의 여파다. 공직자 출마 자격에 충성맹세 조건이 덧붙여졌고, 이로 인해 민주진영 인사들의 출마가 원천적으로 가로막힌 탓에 친중파 출신들 위주로 나선 선거였다. 정치 현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과 무기력증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례다. 공무원들도 충성 선서를 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한 650명 이상의 대상자가 퇴직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 탄압은 더 노골적이다. 민주 성향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 Stand News)의 전·현직 간부 6명이 출판물을 이용한 선동 모의 혐의로 경찰에 전격 체포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지난해 6월 빈과일보(蘋果日報)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폐간된 데 이어진 언론 탄압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홍콩 당국자는 “사회 안보를 해치는 저널리즘에는 무관용으로 대처할 것”이라며 체제 비판 언론에 대해 비슷한 조치가 따를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홍콩 곳곳에 설치됐던 민주화 흔적들이 슬며시 지워지는 게 단순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홍콩중문대가 최근 새벽 시간을 틈타 캠퍼스 내 광장에 세워져 있던 ‘민주주의 여신상’을 철거했으며, 링난대에서도 톈안먼 시위를 추모하는 대형 벽화가 철거됐다. 보안법 시행으로 언론·집회의 자유는 물론이고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속의 1등 시민’이라고 자처하던 홍콩 주민들이 당국의 날카로운 눈초리 앞에 스스로 움츠러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앞서 ‘10년’ 영화는 페이드 아웃으로 처리된 마지막 에필로그 자막을 통해 “이미 너무 늦었다(already too late)”,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not too late)”라는 메시지를 차례로 띄우고 있다. 중국의 장악력이 자꾸 거세지는 단계에서 과연 지금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항공로가 다시 열린다 해도 홍콩이 지난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로 남아 있는 것이다. “홍콩에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변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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