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일 안보협력과 한반도의 차악(次惡) 시나리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10월 28일 오후 2:22 업데이트: 2022년 10월 28일 오후 5:32

  한국에서 한·일 안보협력이 정치 쟁점화된 적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지금도 양국 간에는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있어서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잊을 만하면 ‘반일 (反日) 감정’과 ‘혐한(嫌韓) 정서’가 충돌음을 낸다. 하지만, 안보를 놓고 벌어지는 ‘친일 몰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2012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북핵 대비 안보대책의 일환으로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추진했다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안을 국민 몰래 추진했다”는 정치공세를 받았다. 결국, 청와대와 외교부의 담당 인사들이 사임했다. 석 달 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후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통일연구원장이었던 필자 역시 한·일 안보협력의 불가피성을 이유로 원만한 관계를 촉구하는 글을 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정치권의 시비로 임기 도중에 사임했다. 지난 9월 말 한·미·일 해군훈련 직후에도 또 한 차례 정치권발 ‘친일’ 공세가 있었다. 북한이 이 훈련을 시비하면서 9월 25일에서 10월 14일 사이에 아홉 차례에 걸쳐 15기의 미사일을 쏘고 위협 비행을 하던 시기에 “3국 훈련은 극단적인 친일”이라는 비난이 정치권으로부터 나왔고, 다시 한번 ‘친일’ 논쟁이 점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친일몰이는 시대에 맞지 않고 안보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북쪽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생존을 지켜야 하는 시대다. 게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발 핵위기가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위기를 촉발할 수 있고, 특히 한반도에서 최악 또는 차악의 시나리오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이 절실한 시기다. 일본과 다툴 것과 협력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협력할 것은 확실히 협력하는 ‘분리 대처’가 필요한 시기다.

 한반도의 차악(次惡) 시나리오

 가설이지만, 우크라이나가 한반도 위기를 초래하는 발원지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이미 660억 달러나 쓴 미국에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 이상의 지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를 기회로 판단하여 전술핵이나 ‘더러운 폭탄’을 사용하여 점령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아조프해를 러시아의 내해로 만드는 ‘추악한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이 3연임을 확정 지은 시진핑 주석을 고무하여 대만 통일을 시도하게 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에서 국력을 소진한 미국은 대만을 ‘충분히’ 지원할 물적 심적 여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북한도 유혹을 느낄 수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직후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남겨진 2천여 기의 핵무기를 포기시키는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경선을 보장해주었다. 그랬던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지켜주지 않은 상태에서 대만 사태까지 발발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이 무용지물일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행정부 이후 부쩍 부상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감안하면 이제는 미군이 함께 피를 흘리는 6·25식 참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푸념들이 나오는 중이다. 그래서 북한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다면, 그 순간부터 대남 도발은 시간문제가 되고 만다.

 그 경우, 최악 시나리오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발목을 잡힌 사이에 북한이 핵위협과 핵강압을 앞세우고 전면 남침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가능성이 더 큰 차악 시나리오는 한국의 일부를 점령하여 기정사실화하는 ‘푸틴식 특수군사작전’일 것이다. 예를 들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등 서북 도서들을 기습 점령하고 1999년 이래 주장해왔던 해상경계선, 즉 경기도와 황해도 사이의 중간선 이북을 북한 관할이라고 우기면서 핵 공갈로 한국군의 수복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서해의 해상 질서는 딴판이 되고 만다. 서북 도서가 무인도가 되고 8천여 ㎢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어획고가 상실되는 것은 전략적 손실에 비하면 약과다. 수도권의 측방이 전략적으로 추워지면서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이 취약해지고 해군 2함대와 인천방어사령부의 작전도 위축될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그만큼 세계 및 동북아 그리고 한반도의 안보정세가 한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을 적대국으로 돌려세우고도 국방을 꾸릴 수 있나 

 그렇다면, 지금도 ‘죽창가’를 부르자고 선동하는 정치인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많다.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시시각각 커지고 있는데도 과거사 문제와 영토 문제가 미결 상태라는 이유로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포기해야 하는가? 일본은 무시해도 그만인 소국인가? 일본을 적대시하면서 국방을 꾸릴 수 있는가? 일본의 협력 없이 유사시 미군이 한국에 파병될 수 있는가? 한·미·일 안보협력 없이 한미동맹이 작동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해, 협소한 국토와 제한된 국방비로 북한의 도발은 물론 이미 세계 제2위의 군사대국이 된 중국의 압박에도 대처해야 하는 한국이 일본까지 적대국으로 돌려세워서는 국방을 꾸려가기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묻지마식 ‘친일몰이’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언행이다.

 모든 것을 넘어, 일본에 있는 7개 유엔사후방기지(UNCRB)의 역할을 살펴보면 일본을 위시한 해양세력과의 안보협력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들은 한반도 사태 재발에 대비하여 탄약, 유류, 장비 등 전쟁물자들을 비축하고 있으며, 본토에서 날아오는 미군은 물론 한국을 도와 참전하는 다른 우방국들의 군대가 한반도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해주는 중간기지들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와 최단거리인 사세보 기지에는 서태평양 최대 규모의 전쟁물자 비축시설이 있고, 요코다 공군기지는 6·25 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유사시 각종 폭격기와 수송기의 출격기지가 될 것이며, 오키나와 후텐마 해병기지에 주둔하는 미 제3해병원정군(III-MEF)은 가장 먼저 날아올 동맹군이다. 가데나 공군기지는 미군이 가진 최대 해외 공군기지이며, 거기에는 전투기, 정찰기, 공중급유기 등 각종 항공기들이 운용되고 있다. 전투기들은 1시간이면 군사분계선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유엔사 업무를 경험해본 군인들은 “유엔사는 유엔이 한국만을 위해 만들어준 특별한 안전보장 장치”라고 부른다. 한국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일본의 역할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국이 북핵을 견제하기 위해 핵추진 공격잠수함(SSBN)을 한반도 인근에 배치한다면 일본이 기항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대억제(Extended Deterrence)를 강화할 때에도 일본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요컨대, 한국에 있어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불가피하고 한·미·일 안보협력 태세도 다져 놓아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일지 모른다. 양국 간 미결 사안들을 보면 먼 나라가 맞고, 반일 감정이나 혐한 정서를 부추겨 자파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정치세력들이 양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동북아는 100년 전과는 다르다. 특히, 북한은 ‘핵사용’ 전략을 천명하고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까지 선언했고, 제7차 핵실험까지 준비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푸틴의 핵사용 위협, 멈추지 않는 시진핑식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 및 차악 시나리오 등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을 생각하면 한국과 일본은 매우 가까운 안보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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