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페미니즘으로 인한 남녀갈등으로 찢어지는 나라

오세라비
2021년 8월 19일
업데이트: 2021년 8월 19일

숏컷 논란이 페미니즘 논쟁으로 점화

한국은 세계 최고 사회갈등 국가다. 정치적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좌우 이념 갈등, 지역갈등, 세대 간 갈등, 여기에 건국 이래 가장 극심한 남녀갈등으로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남녀갈등은 언제 어떤 계기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폭탄과도 같다. 어떤 이슈만 생기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성별 간 대립으로 진영이 나뉘어 공방전이 벌어진다.

지난 8월 8일 폐막한 제32회 도쿄올림픽 기간 중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금메달 3관왕 양궁선수 안산의 숏컷 논란이었다. 대수롭지 않았던 일이 단번에 남녀갈등으로 비화돼 성별끼리 나뉘고 집단으로 똘똘 뭉쳐 확대됐다. 발단은 정말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인터넷에서 무수히 생산되는 단 한 개의 댓글에서 시작됐다. 안산 선수의 SNS 계정에 동남아시아 국적으로 추정되는 외국인이 한글 번역기를 사용해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는 서툰 질문에 안 선수가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여기까지가 전부다. 문제는 안 선수의 SNS 계정에 질문을 남긴 유저를 한국 남자로 추정한 페미니스트들의 조롱과 비하의 댓글이 몇천 개씩 달리면서 시작됐다. 한국 남자들이 또다시 여성혐오를 재연한다는 이유다. 곧이어 최대 남성 커뮤니티 한 곳에서 안 선수의 SNS 계정 캡처본을 퍼 나르면서 일파만파 퍼졌다. 캡처본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유행처럼 사용하는 남성 비하 용어 두 개가 있었다. 그래서 안 선수가 래디컬 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논란이 벌어지며 남녀갈등은 미디어를 타고 퍼져 나갔다.

인스타그램 캡처

2017~2018년 탈코르셋 운동, 남성중심 사회에 대항?

숏컷 논란이 어째서 남녀갈등을 불러왔는지 어리둥절하다면 시간을 앞당겨 보자. 페미니즘 열풍이 절정기에 다다른 2017년 중순 무렵부터 시작된 ‘탈코르셋 열풍’이 동학이 됐다. 페미니즘 세례를 받은 젊은 여성들은 긴 머리, 메이크업한 외모, 날씬한 몸매 강조는 바로 남성들이 씌운 외모 코르셋이라 규정했다. 여성의 아름다움 추구의 본질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결국 남성의 강요와 억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탈코르셋 열풍은 여자대학생, 20대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긴 머리를 짧게 커트하고,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실천이 SNS 해시태그를 달고 전파됐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숏컷보다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즈음 유튜브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단체로 혹은 홀로 삭발을 하는 영상이 가끔 올라왔다. 이런 흐름 속에 남성들은 여성들의 숏컷은 곧 페미니스트라는 표식으로 인식하게끔 했다. 탈코르셋 열풍은 2017~2018년까지 두 해나 지속되며,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터진 미투운동과 결합해 페미니즘 운동의 기세는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남성들이 유독 숏컷을 보는 시선,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 직후 생겨나기 시작한 남성을 조롱하는 백여 개가 넘는 저속한 용어에 유독 민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성세대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남녀갈등 양상이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화제성에 즉각 연쇄 반응하는 미디어의 행태다. 안 선수로 빚어진 남녀갈등이 확대 재생산하게 된 동학은 언론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또한 2015년부터 국내에 불붙은 페미니즘 운동 출현 직후 남혐(남성혐오), 여혐(여성혐오)이 난무하고 남녀갈등이 산사태가 나듯 발생한 데는 언론의 일방적인 페미니즘 편향성이 여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친페미니즘 기조인 진보·좌파 성향 언론이 주도했고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개최한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엄중 처벌 및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2020.4.2 | 연합뉴스

페미니즘 정체성 정치가 만든 남녀 대립과 갈등

문재인 정부의 친페미니즘 기조와 때를 만난 주류 여성계의 페미니즘 이데올로기 확산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먼저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하자. 페미니즘은 ‘여성주의(feminism)’다. 어원은 ‘여성다움(feminine)’에서 나왔다. 여기에 ‘이즘(-ism)’이라는 접미어가 붙어 이데올로기, 즉 이념이 된 것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과격한 요인도 이념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국가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의 지위와 권한 강화’이다. 또한 남녀관계를 계급 구도로 보며 남성은 압제자, 여성은 피해자로 규정하며 남성 지배적인 문화를 뒤집는 것이 중심 구조다. 미국 현대 페미니스트들의 대모로 불리며 ‘여성의 신비’를 출판한 베티 프리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남성성은 악의 씨앗이 자라는 비옥한 토양이다.”

1960년대 말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배경으로 한 신좌파운동, 즉 68혁명이 발발했다. 페미니즘은 신좌파운동의 하나의 테제로 영페미니스트(young feminist)들이 대거 등장하며 급진적으로 이념화됐다.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차별, 여성혐오, 반인권주의자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명확히 해두자. 모든 독재는 하나의 이념에서 출발한다. 이념은 늘 의심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진단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이념이며 정치. 사회적 실천운동을 내건 정체성 정치이기 때문이다. 68혁명이 만든 현대 페미니즘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기점으로 ‘젠더리즘’으로 변이됐다. ‘젠더(gender)’는 남녀가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성별이며, 성별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젠더 개념을 국내 여성계는 ‘성인지’로 해석해 지금은 젠더리즘(성인지)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성인지 개념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고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

혐오로 굴절된 K-페미니즘 운동

서구 페미니즘 역사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1776)과 프랑스 혁명(1789)을 단초로 이어진 기나긴 여성인권운동이었다. 여성 참정권 쟁취 운동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단체들에 의해 2000년 초부터 일어난 호주제폐지운동과 2004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설립되면서 비로소 일반화, 대중화된 형태를 띠게 됐다. 그만큼 역사가 짧다. 더구나 한국은 여성 참정권 투쟁이 없었다. 1948년 미 군정시절 제헌헌법 도입으로 민주적 법체계 수립으로 남녀보통선거권을 자연스럽게 얻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한 국방부 성 관련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상담관 교육(2017.3.30~31) | 진흥원 홈페이지

국내 페미니즘 운동의 본격화는 2015년 8월 ‘메갈리아’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이때 동력으로 부상한 집단이 영페미니스트들이다. 앞서 말했듯 이들의 탈코르셋 운동과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터진 미투운동까지 동시에 일어나며 페미니즘 황금기를 맞았던 것이다. 이는 서구 페미니즘의 긴 역사를 단 몇 년으로 압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메갈리아 등장은 일련의 정치적 전략의 하나로 NL 계열 페미니스트들의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86~87년 무렵 탄생한 NL(National Liberation: NL) 세력, 즉 ‘민족해방파’는 586 남녀운동권이 주축이 됐다. NL 페미니스트 세력 역시 반미, 반일, 통일운동을 내세운 친북 성향이다.

2016년 4월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인, 2015년 5월에 좌파 여성계 양대 세력 중 하나인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 계획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여성혐오’였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메갈리아와 공동으로 ‘여성혐오 근절 캠페인’ 운동을 2015년 7월부터 10월까지 이어나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상기해 보자. 그전까지 한국 사회가 여성혐오로 불릴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회자됐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2015년 8월에 개설되기 직전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2016년 5월 발생) 및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 | 연합뉴스

이때부터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라는 말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8월 메갈리아 사이트가 개설되자마자 첫 번째 운동으로 대학 내 여성주의 그룹, 흩어져 있는 여성주의 활동가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기획 활동을 진행했다. 2016년 4월 총선에 의회 진입이 절박한 군소 좌파 정당들인 정의당, 노동당, 구 사회당, 녹색당이 각각의 정치적 목적으로 합류했다. 이들 좌파 세력과 여성계는 페미니즘이라는 반세기 전 구시대 담론을 활동 어젠다로 채택했다.

‘여성혐오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걸고 남성혐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메갈리아 커뮤니티는 개설 즉시 인터넷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 ‘넷페미’들을 결집시켰다. 메갈리아는 개설 직후 2015년 8월부터 11월까지 진선미 의원 후원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여 약 1,200만 원을 전달했다. 이때 진선미 의원 보좌관은 메갈리아 사이트를 직접 방문해 감사 인사를 남겼다(기사 링크).

2015년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이 이처럼 명백한 정치사회 운동이었다.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

명확한 사실은, 여성차별이 만연한 나라라고 외치며 페미니즘의 불꽃을 당겼던 2015년 우리나라는 UNDP(유엔개발계획) 발표 세계 성평등지수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인 나라이며 2021년 현재도 순위는 거의 변함없다(작년은 11위). UNDP에서 공인한 성평등 선진국이다.

우리나라 성불평등 지수(GII) 현황 | 통계청

메갈리아는 ‘남성혐오 용어 100가지’ 이상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군인 비하 용어와 지금 흔히 사용하는 군무새, 오조오억, 웅앵웅 등 공개하기 불가능한 저속한 용어를 마구 양산했다. 여학생, 20대 여성들 중 의미도 모르고 단순히 유행어인 줄 알고 사용하다 논란을 일으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우습게도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는 용어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는 이 책에서 “남성과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43쪽)라고 서술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다른 이는 “혐오는 소중한 자유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신체적 약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혐오는 소중한 자유이고, 그 반대면 혐오라는 것이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재임 시 혐오표현 특징 찾기라는 용례를 발표하며 김치녀, 김여사는 혐오표현이며, 김치남은 혐오표현이 아니라는 자료는 많은 남성의 공분을 샀다.

메갈리아 사이트 폐쇄 후, ‘워마드’라는 더욱 극렬 여성우월주의 커뮤니티로 변모하면서 남성혐오 용어도 더욱 수위가 높아졌다. 대다수 영페미들은 자신이 “나는 메갈리아도, 워마드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갈리아에서 만들어진 남성혐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설령 모르고 사용했을지라도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남혐이든 여혐이든 성별 관계없이 혐오표현은 공정한 잣대로 비판받아야 한다.

한국사회의 극심한 남녀갈등 문제는 급기야 최근에 구속된 청주간첩단의 북한 지령문에도 나와 있다. 북한은 ‘청주 간첩단’으로 불리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여성천시당’으로 각인시켜 여성들의 혐오감을 증대시키라”는 지령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자유한국당은 2017~2019년 당명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격렬했던 시기였다. 대남공작활동까지 여성혐오 분위기를 조장해 사회 혼란을 야기하겠다니 참으로 두렵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갈등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며 그로 인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 젊은 남녀의 분열과 분리주의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도대체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

/오세라비·미래대안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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