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리천장은 있다? 없다?

오세라비 /작가·미래대안행동 공동대표
2022년 06월 21일 오후 8:08 업데이트: 2022년 06월 21일 오후 8:09

엘리트 여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유리천장’ 깨기?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경제학적 용어인 동시에 매우 정치적인 용어다. 엘리트 여성이 최고위직에 도전했다 실패하면 흔히 따라붙는 용어로, “유리천장을 못 뚫었다”라고 말한다. 주로 정치권이나 공공부문, 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최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리천장이라는 것이다. 유리천장론은 모든 분야에 걸쳐 여성 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 곧 남녀차별 해소라는 논리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낙선한 국민의힘 김은혜 전 후보에 대해 언론은 “첫 여성 광역단체장 실패 ”유리천장 못 뚫었다”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냈다. 김은혜 전 후보는 전직 여성 국회의원이었으며 자산 규모만 200억 원이 넘는 부호에 속한다. 김 전 후보는 경기지사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출마하였다. 김 전 후보가 낙선하자 “유리천장을 못 뚫었다”고 논평하는 것은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김 전 후보의 패배는 성별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근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우파 유명 여성정치인 중 유리천장을 자주 언급하는 인물이 나경원 전 의원이다. 대한민국 최상위 엘리트이기도 한 그녀의 정치경력은 화려하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에 최고 명문대 출신으로 판사를 거쳐 정계 입문하여 국회의원을 4번 지냈다. 또한 정당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당내 최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원내대표를 지내던 시절에도 “유리천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할 정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나 전 의원이나 김 전 의원은 성별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 명백한 기득권 계층이란 사실이다.

유리천장론의 원조는 민주당의 페미니스트 의원들이다. 여성단체 출신의 남인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여성의원들 역시 여의도 유리천장 깨기와 투쟁해 왔다. 이에 발맞춘 듯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장관 30% 할당 공약을 제시했다. 공약 이행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여성장관 비율은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 2018~2020년에는 중앙행정조직 18부처 중 6개 부처가 여성장관이었다. 당시 내각의 여성장관 비율은 33.3%로 OECD 평균(2015년 기준 29.3%)보다 높은 기록이다. 그러나 여성장관들이 재임 중 보여 준 능력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민주당은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임원 및 관리자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유리천장 깨트리기에 주력하였다. 2018년 민주당 의원에 의해 “상장사, 여성이사 할당제 도입” 법안이 발의되었고, 공동 발의 의원 명단에는 나경원 전 의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안은 올해 8월부터 본격 시행되며 상장 법인은 이사회에 여성 이사 1인 이상 포함해야 한다.

서구 주요 국가들도 유리천장 깨기를 주요 의제로 내세웠다. EU 집행위원회는 2027년까지 상장기업의 이사진 3명 중 1명을 여성 이사로 선임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에 여성들의 기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되자, 언론은 어김없이 유리천장을 깨부순 최고위직 이라는 수식어를 잊지 않는다.

유리천장을 말할 때 빠짐없이 제시되는 자료가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 순위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자료로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를 언급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다. 유리천장 지수는 OECD 회원국 38개 나라 가운데 29개 나라의 현황을 산출한 지수로 한국은 29위다. 국내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차별을 말할 때 단골로 제시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유리천장 유래와 유리천장 신화

유리천장 용어는 1978년 페미니스트 마릴린 로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 로든이 여성 리더십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여성 리더가 성공하려면 보이지 않는 장벽에 직면한다는 말이다. 이후 1984년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에서 사용되며 널리 퍼졌다. 그때는 이미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유례없이 높고, 비즈니스 세계로 진출이 크게 늘어났던 시대였다.

유리천장론이 보편화되면서 논쟁도 격화되었는데,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한 여성은 보이지 않는 각종 장애 요인과 차별의 장벽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 요인은 성차별이며, 비즈니스 세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로 인해 유리천장이 지속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 리더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유리천장이라는 것은 타당성이 있는 가? 유리천장 용어가 만들어진 지 40여 년이 지났다. 1970년대는 여성들이 고위직에 오르기 어려운 여러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리천장은 통용되는 가치였다. 하지만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기 위해 남성들이 작당해서 음모를 다 같이 꾸미는 것도 아니다. 또한 능력이 뛰어난 전문직 여성이라도 직장이 아닌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또 다른 행복을 찾아 직장을 떠나는 일도 흔하다. 성별을 떠나 최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당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다. 남성 최고경영자가 많은 것은 출장을 수없이 다니고, 위험한 일에 도전하고, 365일 24시간 클라이언트를 위해 준비된 상태로 노력을 경주한 데 따른 결과다.

유리천장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남녀 공히 능력과 실력, 역량으로 최고위직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있다. 이 법령에는 사업주는 교육. 배치 및 승진에 있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과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여 남녀고용평등 실현을 법제화하였다. 또한 앞서 말한 유리천장지수가 낮다는 것은 세계 주요 선진국 38개국 중 29개 나라 현황 산출에서 29위이므로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이것을 두고 마치 우리나라 유리천장지수가 꼴찌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지나치다.

이제는 여성들이 유리천장 신화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다. 성별을 떠나 실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여성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여성물리학자 김영기 교수를 보자. 그는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난해 미국 물리학회장에 당선된 과학자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유리 천장을 깨느라 남들보다 3, 4배 노력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성격상) 차별 같은 걸 잘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네이버는 2017년 최초로 여성 CEO 선임에 이어 현재 81년생 여성 CEO가 이끌고 있다. 그리고 필자가 존중하는 인물로 대만계 미국 기업인 리사 수는 세계 반도체 연맹 의장을 지낸 엔지니어 겸 CEO다. 이처럼 스스로 길을 닦아 온 뛰어난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을 깼다는 표현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럴수록 여성들이 유리천장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페미니스트들은 유리천장이라는 꼭대기만 쳐다볼 게 아니라 “끈적한 마룻바닥“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는 1990년대 초 사회학자 캐서린 화이트 버라이드가 만든 용어로, 저임금 노동의 덫에 갇힌 수많은 여성을 의미한다. 유리천장이라는 명제는 최고위직으로 향하는 극소수 여성이 대상이다. 유리천장은 구시대적 마인드다. 유리천장 신화에서 벗어나자. 그것이 여성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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