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고된 한·중 외교전쟁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8월 16일 오후 12:18 업데이트: 2022년 08월 16일 오후 12:18

요즘 박진 외교장관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공직자다. 한 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7월이 되면서 박 장관은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서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났다. 발리 일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본에 가서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과 회담을 했고, 8월 초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서 아세안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후 다시 칭다오로 날아가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다시 만났다. 그중에서 8월 5일 프놈펜 ASEAN+3 외교장관회의에서의 발언, 칭다오에서의 한중 외교장관 회담 그리고 7월 18일 도쿄에서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 및 대중 외교의 개막을 세계에 알린 핵심 일정이었다. 결과는 선명했다. 일본과는 ‘작은 외교전쟁’이, 그리고 중국과는 ‘큰 외교전쟁’이 예고되었다. 특히, 공동성명도 없이 헤어진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지금보다 더욱 험난해질 한중관계를 예고했다. 그럼에도 박 장관이 한국 입장을 선제적으로 천명한 것은 필요하고 불가피했다. ‘상호존중의 새로운 한·중 관계’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것은 거쳐야 하고 부딪쳐야 할 것은 부딪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새출발

7월 18일 도쿄 회담은 한일관계 재출발을 위한 만남이었다. 4년 7개월 만의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박진 장관의 한일 간 사증 면제 요청,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요청, 한일 정상회담 필요성 제기 등에 대해 일본 측은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고, 한일 및 한미일 협력 강화의 필요성, 지소미아 정상화 등에 대해 공감을 나누었다. 종합컨대, 지금부터의 한일 대화는 문재인 정부 동안 파탄에 이른 양국관계를 치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 및 한일관계 개선 공약, 중국 팽창주의와 북핵이라는 공동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더욱 말착된 중·러와 이에 대항하는 서방국가들의 협력, 양국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한 최근 여론조사 등을 종합하면 그렇게 전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뢰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대한(對韓)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 문재인 정부에 의해 파기될 뻔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정상화, 문 정부가 사문화한 위안부 합의 처리,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이 여전히 미결 상태로 있다. 특히, 강제징용 배상 건은 폭발성이 강한 변수다.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소송과 관련하여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실행된다면 양국 간 투자와 무역에 수십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윤덕민 주일대사의 8월 9일 자 발언에서 보듯,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특별현금화 명령이 실행된다면 한일관계는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일단 집행을 동결하고 정치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한다면, 그리고 양국이 다툴 것과 협력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한일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 외교전쟁의 전초전

미·중 간 신냉전이 격화되고 중국의 팽창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 및 대중 외교 입지는 매우 불편하다. 거기다가 중국의 고압적인 대주변국 외교 자세 때문에 한국 국민의 혐중(嫌中) 정서가 확산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의 기초”라는 입장을 천명한 이래 중국은 한국을 향해 경계의 눈을 번뜩이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열린 칭다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예상대로 커지고 있는 한·중 간 간극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박 장관은 7월 7일 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달라진 한국 입장을 밝혔다. 박 장관은 인권과 법치 수호를 거론하고 ‘평등한 협력’을 강조했으며, “한중관계도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 상생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왕이 부장의 대답은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한국의 새 정부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말은 윤 정부를 예의주시하겠다는 말이었고 “한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중국의 말을 잘 들으면 예쁘게 봐주겠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8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ASEAN+3 외교장관회의에서 박 장관은 왕이 부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의 면전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불용”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과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 “대만해협 갈등은 공급망 교란과 정치·경제적 불안정 초래” 등 중국이 거북하게 여기는 발언들을 쏟아냈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가도 공언했다. 이후 칭다오로 날아가 8월 9일 왕이 부장에게 다시 한번 한국의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수용하고 도발 대신 대화를 택하도록 중국이 역할을 해줄 것과 2017년 사드 배치를 빌미로 시행된 한한령(限韓令)을 해제해줄 것을 요청했고, 중국이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의 제재를 가로막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상호존중’과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강조한 것은 인권과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국가가 되고 고압적·일방적 대외 기조를 개선하라는 주문이었는데, 이는 미국이 늘상 사용해온 표현이다. 왕 부장의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예상대로 왕 부장의 대응은 중국 중심적이었고 고압적이었다. 왕 부장은 ‘자주독립 견지 및 외부 영향 배제’ ‘다자주의 경지에서 유엔헌장의 취지와 원칙 준수’ ‘상대방의 중대 관심사 배려’ ‘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 수호’ ‘상호 내정 불간섭’ 등 다섯 가지를 강조했다. 외부 영향 배제란 한미동맹을 멀리하라는 것이었고, 상대방 관심사를 배려하라는 것은 사드(THAAD)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3불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원할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언급한 것은 칩(chip)-4와 IPEF 등 미국 주도 경제블록에 가담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며, 내정 불간섭은 대만 문제에 미국 편을 들어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은 미국 중심적 국제질서를 불용하겠다는 중국의 결기를 드러낸 것이었다. 북한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원칙론적 답변을 반복했는데, 이는 북핵을 비호하는 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통보였다. 칭다오 회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8월 10일 중국 외교부의 왕원빈 대변인은 “사드는 명백하게 중국의 안보이익을 해치며 한국은 대외적으로 ‘3불(不)+1한(限)’이라는 정치적 선서를 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2017년 10월 강경화 외교장관이 말한 ‘미국 미사일방어체제 불참’ ‘사드 추가배치 포기’ ‘한·미·일 군사동맹 결성 포기’ 등 세 가지 ‘약속’에 더하여 성주 사드 기지의 정상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의지·힘·정성이 합쳐진 총력 외교전 펼쳐야

미·중이 정면 대결하는 구도 속에서 한미동맹을 확고히 하면서 중국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충분한 국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의 ‘균형자론’은 듣기에는 멋지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불신당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를 초래할 수 있어 한국의 선택이 되지 못한다. 최악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념적 동질성을 가진 미국과의 확고한 동맹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동맹을 중심에 둔 상태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중국과도 비적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Alliance + Hedging’이 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이러한 입장을 양해하지 않고 두 주권국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상호존중의 선’도 무시한 채 무한정 압박을 가해오는 중국의 행태를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나 ‘대봉(大峰) 소봉(小峰)’을 읖조리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전임 정부가 보여주었듯이 일방적인 저자세 외교는 오히려 중국의 무례와 갑질을 부추길 뿐이다. 대국논리를 앞세우고 서해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 획정을 거부하고 북핵 방어수단으로 사드를 배치한 것에 대해 문제의 원인인 북핵을 비호하면서 사드를 시비하는 중국으로부터 합리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도 없다. 한국의 대중 외교는 의지와 힘 그리고 정성이 혼합된 총력전이어야 한다. 국가 정체성 또는 안보주권 침해에 대해서는 확고한 의지 및 독자 역량 및 동맹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처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비적대적 공생을 원하는 한국의 국민적 열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 동맹외교와 대중 외교는 외교부 담당 공직자들만 나서서 되는 일이 아니다. Track-1, track-1.5, track-2 등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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