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베 전 총리의 사망과 한일관계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8월 2일 오후 6:36 업데이트: 2022년 08월 2일 오후 6:36

지난 7월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의 지원유세 도중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일본에 애도의 물결이 넘쳐났고 한국을 포함한 서방국들의 조의 표명이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과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할 만큼 ‘미국의 친구’을 잃은 것에 큰 상실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국 조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과거사를 부인하는 극우의 거두’이자 ‘혐한(嫌惡) 정치를 주도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애도하고 싶지 않다는 글들이 SNS에 올라왔고, “아베는 일제의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가짜 뉴스도 돌아다녔다.

아베가 ‘적극적 평화주의’와 ‘통합기동방위’를 내세우고 일본의 재무장을 주도한 지도자였음은 어김없는 사실이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수정, 종군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강경 입장 등을 통해 ‘일본 중심적 전후 청산’을 주도했음도 사실이다. 그가 온건보수 정치인이었던 조부 아베 칸이나 친부 아베 신타로보다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총리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강경 우파 정치성향을 이어받아 일본의 우경화를 선도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냉엄한 현실에 바탕으로 두고 다툴 것과 협력할 것을 구분하는 자세로 일본과 일본인들을 바라봐야 하며,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도 그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하면 가차없이 ‘토착 친일’로 몰아버리는 좌파적 프레임을 불식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우경화의 ‘Push와 Pull’ 그리고 아베의 우경화

  냉정하게 말해,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 과정에는 ‘push’ 요인과 ‘pull’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 패전의 악몽을 떨쳐내고 일류 국가로 재부상하고 싶은 일본인들의 자존심과 내셔널리즘을 ‘push’라는 자발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중국 팽창주의나 북핵으로 인한 안보 불안, 동맹국의 요구 등 외부적 ‘pull’ 요인도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패전을 딛고 경제강국의 반열에 오른 80년대부터 우익 세력 일각에서 주장한 ‘정상국가론,’ 즉 경제기술 파워에 걸맞은 정치·군사력를 보유해야 정상적인 나라가 된다는 주장, 수정주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새역모(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등장 등은 push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에 ‘불침항모론’을 주창한 나카소네 총리, 2008년 현역 신분으로 도쿄 군사재판을 비판하고 재무장을 촉구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물의를 일으킨 다모가미 항공자위대 막료장 등이 push를 잉태·확산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었고, 아베는 21세기 일본의 우경화를 견인한 핵심이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Guidelines for U.S.-Japan Defense Cooperation)은 pull 요인들이 작동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평화헌법에 의해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였지만, 1978년 방위협력지침을 통해 미국은 일본에게 피침 시 방어를 위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전수방위’를 허용했는데, 이는 소련 공산세력의 남하를 견제하는 데 일본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1997년 제1차 개정을 통해 일본은 본토뿐 아니라 주변 지역 사태에도 무력을 사용하고 동맹국과 협력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개정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의 핵개발이었다. 일본이 ‘자위대법’을 개정하고 ‘주변사태법’을 개정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15년 제2차 개정을 통해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인하고 중국과 북한을 사실상의 주적으로 지목했으며 ‘도서를 포함한 육지’가 피침되면 공동 대응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센카쿠 공격 시 미군 개입을 약속한 것이었다. 또한, 안보협의위원회(SCC)를 상시 가동함으로써 한미연합사(CFC)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당연히, 지침의 제2차 개정을 촉발한 것은 점증하는 중국의 팽창주의적 위협이었다.

2006~2007년, 2012~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집권한 아베 총리는 push 요인과 pull 요인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일본의 우경화와 재무장을 선도했다. ‘적극적 평화주의’ 기치를 내걸고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對中) 견제, 북핵에 대한 강경 기조, 호주·인도를 위시한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안보협력 강화 등에 진력했다. ‘통합기동방위’ 구호 아래 자위대의 활동 영역 확대, 기동성 강화, 신무기체계 확보, 서방국가들과의 합동훈련 등을 통해 자위대의 군사작전 능력과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했으며, 육해공 자위대 간 합동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쟁지휘부인 통합막료감부를 설치하고 해병대에 해당하는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 이와 함께 평화헌법 재해석을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일본을 평화헌법 제9조의 굴레에서 벗어나 필요한 지역에서 단독 또는 동맹국과 함께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시키고 2013년 신방위대강, 국가안보전략서 등을 통해 이를 내외에 공표했다.

상호호혜적·생산적 한일관계를 향하여

아베 이후에도 ‘정상국가’를 향한 일본의 행보는 지속되고 평화헌법 제9조의 개폐 논의도 이어질 전망이다. 군사적 강대화와 국제적 역할 증대도 계속 모색될 것이며,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를 부인하는 우익 세력도 계속해서 힘을 키울 것이다. 2020년 9월 아베의 뒤를 이어 집권한 스가 총리나 2021년 10월에 취임한 기시다 총리가 아베 내각에서 광방장관과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의 심복들인 데다 연립 여당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도 안정되어 있고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개헌 찬성세력이 개헌선을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미·일 전략적 밀착도 이어질 것이며, 중국과의 지역 패권 다툼이나 북핵에 대한 강경한 입장도 계속될 것이다. 한일 관계에는 한국이나 일본이 하기에 따라서 문재인 정부 5년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한일 관계는 위안부 합의 파기,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책임 판결, 일본의 보복성 대한(對韓) 수출 규제, 한국 정부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소동 등으로 파탄을 맞았고, 문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죽창가’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호혜적·생산적 한일관계를 위해서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일본이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기보다는 과거도 돌아보면서 피해를 당한 나라들을 배려하는 데에 성심을 다해야 함은 기본이다.

한국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은 격화되는 신냉전 구도하에서 북핵 위협과, 전랑(戰狼)외교를 앞세운 중국의 팽창주의와 맞닥뜨리고 있는 열악한 안보환경을 감안해야 하며, 일본에 있는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에 한반도 유사시 파병되는 미군이 사용할 전쟁물자가 비축되어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은 1억 3천만 인구에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4위의 무역대국이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450만 km²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진 일본을 ‘무시해도 그만인 소국’으로 폄하하기보다는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일본까지 적대국이 된다면 현재의 국력으로 국방을 꾸려나갈 수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그래서 한일 양국은 더 넓게 그리고 더 멀리 보면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지도를 볼 때에는 두 나라만 볼 것이 아니라 동북아 또는 세계 속에서 한국과 일본을 봐야 하고, 한일관계를 볼 때에는 과거사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미래에 함께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봐야 한다. 일본 우파세력이 가진 두 개의 얼굴도 동시에 봐야 한다. 즉, 과거사 부인으로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하는 국수주의의 얼굴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수호하면서 서방국가들과 협력하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도 죽창가를 불러야 하나

북한이 끝없이반일 죽창가를 부르는 것은 수령독재 체제의 정통성이항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지만, 미일동맹을 이완하고 한일관계를 이간하려는 전략인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북한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 한국은 다투어야 할 것들과 협력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일본을 바라봐야 하며, 일본이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서방국가의 일원이자 미국과 함께 한국의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구도에 있는 국가임을 중시해야 한다. 아베 전총리를 바라보는 눈도 이래야 한다. 물론, 좌파적 프레임에 갇혀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걸핏하면죽창가를 부르자고 하는 사람과 언론이 판치는 나라에서 이런 냉정함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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