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의 ‘선제 핵사용 불사’ 선언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5월 2일 오후 1:24 업데이트: 2022년 05월 2일 오후 1:24

  지붕이 불타고 있는 줄 모르고 처마 밑에서 재잘거리는 제비와 참새를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 ‘선제 핵사용 불사’를 선언하면서 북핵 위협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은 4월 25일 밤에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된 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화성-17형 대륙간탄도탄,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화성-8형 극초음속 미사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성능개량 전차 등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핵무력을 과시했다. 이어서 원수복 차림으로 등단한 김정은은 “핵무기가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다른 사명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방어용 및 억제용 핵무력’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제 핵사용’을 포함하는 강화된 핵전략을 천명한 것이다. 이쯤 되면 여야(與野)는 잠시만이라도 정쟁을 멈추고 한 줄짜리 성명이라도 내놓아야 하지만, 검수완박,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인사청문회 등을 둘러싼 정쟁으로 날밤을 새우고 있다. 

  ‘핵억제’와 ‘핵전투’ 그리고 NFUNSA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unuseable) 무기이자 억제만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핵전쟁을 모두가 멸망하는 승자가 없는 전쟁이므로 ‘싸울 수 없는 전쟁(unfightable war)’으로 전제하는 ‘핵억제 전략’에 집중했다. 이 전략하에서는 “억제력이 가공할수록 상대가 핵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유행했고, 그래서 미·소는 상대국의 존재 자체를 말살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전략핵무기들을 만들어 ‘대량보복(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다가 “제한적인 핵전쟁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하면 싸워 이겨야 하기 때문에 핵무기도 필요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제2세대 ‘핵전투(nuclear warfighting)’ 전략이 생겨나면서 실제 사용이 용이한 군사목표 파괴용(counter-force) 저위력 전술핵들이 양산되었다. 제2세대 핵전략의 등장과 함께 핵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가 쏟아지면서 핵강국들은 ‘핵 선제 불사용(NFU)’을 선언하기도 했고, 비핵국들을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NPT에 가입하는 비핵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보호하겠다는 약속(PSA)과 비핵 NPT 회원국에는 핵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NSA)을 발표하기도 했다. 냉전이 격화되면서 소련은 1993년 이후 NFU를 공식 철회했고, 미국은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오가면서 입장이 바뀌어 왔다. 즉, 오바마 정부의 핵전략검토서(NPR)에서는 NFU와 NSA를 천명했으나 부시 정부는 철회했고, 바이든 정부는 NFU와 NSA를 다시 포함할 것을 검토하다가 동맹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약화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철회를 고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편, 새로이 핵보유를 꾀하는 신생 핵국들이 국제사회의 견제와 제재를 완화하는 외교수단으로 NFU와 NSA를 활용했다. 중국은 1964년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이 되기 직전까지 ‘인류의 평화를 위한 전 세계적 비핵화’를 주장했었다. 즉, 겉으로는 비핵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고, 핵실험 이후에는 NFU와 NSA 입장을 밝혔다. 북한도 2006년 핵실험 이후 억제·방어용으로만 핵무력을 보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말하자면, 무탈하게 핵보유를 인정받고자 하는 ‘겸손 코스프레’이자 국제사회를 안심시키려는 외교적 제스처다. 그러나,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한 법(핵보유법)’의 제정을 통하여 핵입장을 강화했다. 이 법은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하는 정당한 방위수단 (제1조),’ ‘침략 본거지에 대한 섬멸적 타격 목적(제2조),’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핵사용권(제4조),’ ‘적대적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에 대한 핵사용 및 핵위협 포기(제5조),’ ‘국제사회의 핵확산 금지 및 핵군축 노력 지지(8,9조)’ 등을 밝히고 있다. 요약건대 이 법을 통해 북한은 핵보유 초기의 ‘겸손 모드’에서 벗어나 ‘핵강국’의 위상을 선포하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김정은의 ‘핵강국’ 선언에도 무덤덤한 대한민국

  핵보유법 제 1,2조는 미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핵억제 수단으로서의 핵보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내용, 즉 미국에 대한 핵억제 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이 가장 유념해야 하는 제5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얼핏 비핵국에 대한 NSA를 선언한 것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제5조를 바꾸어 쓰면 “남한이 핵보유 동맹국인 미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는 경우 남한이 비핵국이라 하더라도 남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할 것이다”가 된다. 즉, ‘대남 핵사용’을 천명한 내용이다. 여기에 더하여, 인민군 최고사령관만이 핵사용을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제4조는 핵보유를 통해 세습독재 체제의 공고화를 꾀하는 것이며, 핵확산 금지 및 핵군축 노력을 천명한 제 8,9조는 스스로를 신뢰할 만한 성숙한 핵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북한의 핵보유법은 대미 핵억제 전략과 대남 핵전투 전략을 모두 포함하는 강대국형 핵전략을 천명한 것이며, 동시에 핵보유의 기정사실화와 최고지도자의 권위와 상징성을 강화하는 목적을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나 언론이 북한의 이런 변신, 즉 ‘겸손 모드’에서 벗어나 ‘핵강국 코스프레’를 하는 북한의 행보에 대체로 무신경한 반응을 보여왔다. 2021년 후반부터 2022년 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북한은 대미 핵억제 전략을 위한 핵심 수단인 대륙간탄도탄을 과시했고, 대남 핵전투 전략의 수단이 될, 즉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방어망을 돌파하여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단중거리 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 등을 집중적으로 선보였지만, 한국 뉴스의 최상단은 언제나 ‘정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22년 4월 25일 인민군 건군 기념일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의 두 가지 사명을 말한 것은 곧 대미 핵억제 전략과 대남 핵사용 전략을 재천명한 것이자, 북한이 핵강국의 입지를 달성했음을 대외에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제2의 6·25 발발 시 핵전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을 착각하지 말라

  날로 엄중해지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평양의 목적과 의지를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좌우’ 정부들은 엄청난 착각 속에 ‘철 지난 노래’만을 불러왔다. 한쪽은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도와주고 북핵을 시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해왔고, 다른 쪽은 ‘원칙 있는 대북기조와 제재’를 강조해왔다. ‘세습독재 체제 유지’와 ‘적화통일’이라는 확고부동한 목표하에 최대 국가사업으로 핵무장을 강행해온 평양 당국자들의 귀에는 ‘삶은 소머리가 하늘을 쳐다보며 웃을 얘기’로 들릴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은 대미(對美)용이지 대남(對南)용은 아니다”라는 것도 ‘특등 머저리’라는 말을 들을 얘기다. 북한이 대륙간탄도탄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흔들어 남북관계를 지배하고 적화통일로 가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지, 결코 미국과 핵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모든 핵무기는 결국 대남용인 것이다.

  때문에 5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평양의 목표와 의지를 정확하게 읽고 치밀한 장단기 전략계획하에 ‘핵균형·안보역량증강·동맹역량극대화’라는 정도(正道)를 걸으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의 전략적 균형을 꾀해나가야 하며, 당장 핵무장을 결행할 입장이 아닌 현재로서는 핵우산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당장 전술핵 재반입을 논의해야 한다. 이제는 그렇게 해야 할 단계가 되었다. 재래 무기체계인 ‘3축 체제’만으로 핵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즉 이것만으로 북핵을 발사 전에 선제타격할 수 있고 발사되어도 방어체제를 증강하면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새 정부가 서둘러야 할 안보과제들은 이것 말고도 많다. 문재인 정부 동안 망가진 한국군을 재정비하는 새 국방개혁도 필요하고 국정원도 정치를 초월한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안보 관련 경험이 없는 군 통수권자가 군 수뇌부와 함께하는 전쟁연습(CPX)을 통해 전쟁지휘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어떤 대북기조하에서도 필요한 기본 안보과제다. 이렇듯 나라의 지붕이 불타고 있는데도 위정자들이 정쟁과 신구권력 간 갈등으로 정신줄을 놓고 있다면 ‘연작처당’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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