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투아니아의 주중 대사관 철수 이후

허영섭/언론인, 전 이데일리 논설실장
2021년 12월 27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27일

북유럽 발트해 연안국 리투아니아가 대만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자 중국이 리투아니아에 대해 외교 관계를 종전 ‘대사급’에서 ‘대리대사(代辦)급’으로 격하시키고 경제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행 철도 화물 발송이 전격 중단됐는가 하면 리투아니아산 제품 수입 통관도 금지됐다. 지난, 7월 리투아니아 정부가 수도인 빌뉴스에 ‘타이베이(臺北, Taipei)’가 아닌 ‘대만(臺灣, Taiwan)’ 명칭을 사용하는 ‘주리투아니아대만대표부(The Taiwanese Representative Office in Lithuania)’를 개설토록 허용한 결정에 따라 최근 대만대표부가 정식 문을 연 데 대한 보복 조치다. 대만을 하나의 국가처럼 인정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는 이유에서다.

중국이 주변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리투아니아와의 거래 관계를 끊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리투아니아에서 생산된 조립 부품이 사용되는 상품도 수입을 거부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리투아니아에 공장을 두었거나 부품을 조달받는 외국 기업들도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이 리투아니아를 제재하겠다며 유럽연합(EU) 기업들의 전체 공급망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리투아니아 경제계가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나라들도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려고 한다면 비슷한 불이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보내는 셈이다. 이유는 다를지언정 경제 보복의 전례도 없지 않다.

호주 정부가 지난해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바이러스 근원에 대한 국제조사 필요성을 내세웠다가 보복 조치를 당했으며, 한국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2016년 내려진 한한령(限韓令)이 아직도 풀어지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중국의 강압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민감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서 베이징 주재 리투아니아 대사관 직원들이 모두 철수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신경전을 피할 수 없었다. 리투아니아 정부가 외교관과 가족 등 19명을 급거 귀국시키면서 ‘신변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자체가 눈길을 끈다.

중국 정부가 외교 관계 하향 조정에 따라 신분증 내용 변경이 필요하다며 리투아니아 외교관들에게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는데, 그렇게 될 경우 외교적 면책특권 박탈로 신변에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과거 소련에 점령당해 50년 넘도록 시달렸던 처지에서 폐쇄사회의 실상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외교관들이 주재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떠날 채비를 한 것은 과대망상증에서 비롯된 처사”라며 되레 비난한다. 리투아니아 측의 신변 안전 주장이 “일부러 피해자 이미지를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해당 외교관들이 체류 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중국 측의 응답이 없었다는 리투아니아의 배경설명에 대해서도 “체류 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도 않았다”며 리투아니아 측의 주장을 거짓말로 몰아가고 있다. 이처럼 양측 주장이 진실 공방으로 치달으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반면 대만과 리투아니아의 협력은 강화되고 있다. 대만이 리투아니아에 반도체, 생물공학, 인공위성 등의 산업 분야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우선은 농산물 판로를 열어 준다는 계획이다.

리투아니아 국회의원단 방문에 이어 식품업계 관계자들이 최근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식품전시회에 참가해 농산품 홍보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리투아니아 농업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기업 사절단이 내년에 대만을 방문한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타이베이 주재 리투아니아 대표부 역시 2022년 초 개설될 예정이다.

미국도 리투아니아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리투아니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만과의 관계를 확대하려는 리투아니아의 의지를 평가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함께 맞설 것을 다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우려되는 가운데 미국이 리투아니아에 대전차 미사일 판매를 검토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단순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대만도 이미 군사 정찰용 드론을 리투아니아에 제공했는데, 동쪽에 인접한 벨라루스 국경 정찰에 쓰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리투아니아 지원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지가 관건이다. 중국은 벌써부터 “미국이 립 서비스만 하고 실제로는 자기 이익만 챙길 것”이라고 비아냥대는 상황이다. EU도 회원국인 리투아니아가 교역 불이익을 받는 데 대해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만과의 교역에 있어서도 시장 규모의 한계로 중국에서 야기된 리투아니아의 수출 공백을 채워주기에는 어차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리투아니아가 서비스 산업 위주에 제조업 비중이 낮기 때문에 중국 경제보복에 그런대로 견뎌낼 수 있다고 하지만 외부의 도움이 미미하다면 끝까지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결국, 자유 체제를 갈망하는 국가들의 긴밀한 공조 태세만이 중국의 압력으로부터 리투아니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공조 체제가 빈틈을 보인다면 대만에 접근하려고 하는 다른 나라들도 더 이상 행동에 옮기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대만과 관계개선의 출발점에서 첫걸음을 뗀 리투아니아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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