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시아와 북한, 핵질서 파괴자 되나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4월 13일 오후 1:18 업데이트: 2022년 04월 13일 오후 1:18

  제2차 대전 동안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인류의 운명을 건 핵 경쟁을 벌였다. 나치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만들었다면 인류는 끔찍한 운명을 맞았을 것이다. 지금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더욱 엄중한 핵혼돈(nuclear chaos) 시대의 도래를 경고하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핵질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한 언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은 중동에도 불길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 이로 인해 핵질서가 무너지고 핵무기가 들불처럼 확산되어 지구의 곳곳에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도시 2개(히로시마, 나카사키)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친 1945년과는 달리 인류는 석기시대를 다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핵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이유

  그동안 세계에는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과 사용을 방지하는 비확산체제가 작동되어 왔다. 미국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이 체제의 관리자 역할을 해왔다. 핵비확산 체제에는 1970년에 발효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약·제도·기구들이 있다. 이 체제의 헌법격인 NPT의 핵심은 1967년 이전에 핵을 보유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다른 나라들의 핵 보유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를 핵보유국과 비핵국으로 양분하는 불평등 조약임에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준수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핵보유국이 많아지면 핵전쟁과 핵사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인류의 안전을 위해 핵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론적 명분이 있었고, 핵강국들은 이 명분을 앞세워 비핵국의 핵 보유를 만류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부 핵보유국들은 핵전쟁 발발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 선제불사용(NFU)’을 선언했다. 비핵국들을 설득하여 NPT에 가입시키기 위해 1968년 5대 핵보유국들은 안보리결의 255호를 통해 비핵국이 핵공격을 받을 경우 보호하겠다는 ‘적극적 안전보장(PSA)’을 약속했고, 1978년에는 유엔 군축회의를 통해 NPT의 비핵 회원국에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선언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한국, 일본, 나토 등 각각의 비핵 동맹국에게 개별적으로 PSA를 약속했다. 그것이 핵우산이다. 이런 장치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지금까지 핵비확산 체제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핵질서를 파괴하고 유엔을 무력화하는 불량국가들

   그런데 지금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예상외로 고전하면서 땡깡을 부리듯 핵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서방은 러시아의 화생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북한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핵무력을 증강하고 있다. ‘핵질서의 이단아’를 자처하는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틈타 더욱 위험한 핵게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추가적인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던 2018년의 모라토리엄 약속을 깨고 금년부터 대륙간탄도탄(ICBM) 발사를 준비했고, 3월 24일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미사일 발사를 통해 ICBM 능력을 입증했다. 고각으로 발사된 이 미사일은 고도 6,248km에 비행거리 1,090km를 기록하여 정상각도 발사 시 13,000km 이상을 날아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북한은 ICBM 발사에 이어 핵실험 재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도 NPT를 외면하고 핵무장을 한 나라들이지만 핵으로 비핵국을 위협한 적이 없고, 모든 핵실험을 금지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준수해왔다. 21세기에 들어서서 핵실험을 한 나라는 북한뿐이다. 

  러시아의 핵 위협은 모든 비핵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중국의 북핵 두둔은 아시아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핵강대국인 러시아가 핵 사용 카드로 위협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의 북핵 제재를 저지하여 유엔을 무력화시키는 행태는 폭력배를 단속해야 할 경찰이 폭력배와 결탁하거나 스스로 폭력배가 되어 세상을 흔드는 격이다. 이후에 전개될 상황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PSA, NSA, 핵우산 등의 신뢰성이 실추되어 기존 핵실서가 붕괴되고 너도나도 살기 위해 핵무장을 서두르는 각자도생의 핵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와, 러시아를 비호하는 중국이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보리는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행위나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무력 고도화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제재결의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력화된 유엔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해체하라”고 울부짖고 있다. 이렇듯 ‘불량국가들(pariah states)’이 핵질서를 파괴하고 유엔을 무력화하고 있다.

힘을 바탕으로 하는 대북정책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북한 비핵화 방안을 놓고 “유화냐, 강경이냐”라는 철 지난 ‘좌우’ 논쟁이 이어져 왔다. 핵강국을 향한 북한의 핵 행보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중에도 한국의 좌파들은 북한 구미 맞추기와 종전선언 같은 문서 쪼가리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억지 주장을 반복해왔다. 우파의 주장도 그렇다. 우파 중에는 아직도 원칙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하고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식의 좌우 논쟁은 한 마디로 부질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자식을 기다리는 격이다. 이제는 평양의 핵 야망을 과소평가하는 부질없는 논쟁을 접고 북한의 위험한 행동을 제어하는 ‘억제력’을 함양하는 것이 급선무다. 앞으로도 북한과 협력도 하고 협상도 해야 하지만, 모든 것은 대한민국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하는 독자적인 역량과 동맹 역량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어떤 북핵 기조를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