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만 국민들, 왜 락토파민 美 돼지고기에 찬성표 던졌나

허영섭/언론인, 전 이데일리 논설실장
2021년 12월 21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21일

대만 국민들이 지난 12월 18일 치러진 국민투표를 통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민진당(民進黨) 정부에 신임을 표시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4개 안건이 투표에 붙여졌지만 모두 부결(否決)됐다.

차이잉원 총통으로서는 투표 직전까지 불리하게 돌아가던 여론의 흐름을 되돌려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셈이다. 이로써 국민투표 여세를 몰아 내년 지방선거와 2024년 예정된 차기 총통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던 국민당(國民黨)으로서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가장 주목된 것은 락토파민(Ractopamine) 함유 돼지 고기 수입을 계속 허용하겠느냐 하는 문제였다. 차이잉원 정부가 가축 성장촉진제의 일종인 락토파민으로 사육된 미국산 돼지고기를 올해 1월 부터 수입 허용해 온 데 대해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대만 국민 식생활에서 돼지고기 소비가 많은 만큼 부정적인 정서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락토파민 섭취로 인한 국민 건강 문제와 더불어 양돈 농가에 미치는 경제적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 민진당이 야당 시절 집권 국민당 정부의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 허용 움직임에 극력 반대하며 ‘제로(Zero) 락토파민’ 입장을 내세웠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처럼 투표를 앞두고 민진당에 불리하던 여론이 뒤집힌 것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폭넓게 작용한 결과다.

대만은 현재 미국과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체결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이 다시 중단된다면 협정 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만은 더 나아가 일본, 호주 등 다른 미국 동맹국들이 포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벗어나 미국 의존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한 차이 정부의 기본 의도다.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징검다리 삼아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이 국민투표 유세 연설을 통해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은 우리가 고립을 탈출해 세계로 나가려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선택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중국에 계속 묶여 있게 될 것”이라고 호소한 데서도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중대한 전환점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CPTPP 가입에 미적지근한 입장을 취했던 한국에서 지난 13일 이 같은 방침이 전격 발표되자 민진당은 한국과 대만이 여러 분야에서 경쟁 관계임을 들어 “CPTPP에 먼저 가입하는 쪽이 관세, 투자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다”며 유권자 설득에 나섰다.

한국이 이미 2012년부터 락토파민 사료로 키워진 미국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CPTPP의 11개 회원국 모두 미국에 돼지고기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는 사실도 방어 기제로 동원됐다. 민진당에 불리하던 일반 여론이 막판에 뒤집혔다는 점에서 한국의 CPTPP 가입 방침이 투표 분위기를 크게 바꿨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과정을 거쳐 차이 총통이 다시 국민의 신임을 받으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민진당의 친미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됐음은 물론이다.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대립 양상은 한층 거칠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사설에서 “대만 민진당이 국민의 이익을 배신했다”며 이번 투표 결과를 비난한 데서도 그런 분위기가 전해진다.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를 수입하겠다는 것은 국민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미국을 껴안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다.

한편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락토파민 돼지고기 안건 외에 제4 원전 공사 재개, 타오위안(桃園)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시설 이전, 국민 투표일과 대선일 연계 등 모두 4개 안건이 붙여졌다. 모두 국민당이 추진한 것으로,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중간평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론몰이를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막판에 이르러 민심이 돌아섬으로써 국민당으로서는 또다시 쓰라린 좌절을 맛봐야 했다. 락토파민 돼지고기 수입 문제가 대만의 국내외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