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과 북핵 문제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11월 14일 오후 10:20 업데이트: 2022년 11월 14일 오후 10:20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무력 시위가 기승을 부리던 11월 3일 워싱턴의 펜타곤에서는 이종섭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 미 국방장관이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SCM)를 갖고 19개 조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메세지를 담아낸 성명이었다. ‘철통같은 한미동맹’과 한국에 대한 ‘확고한 확대억제 약속’의 재확인은 강력한 대북 경고이었지만, 동시에 북한의 ‘핵 갑질’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한국 국민을 향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화답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한미 안보협의회의 결과가 ‘즉각적 핵무장’ 또는 ‘미 전술핵 재반입’을 원하는 한국인들의 요구에는 부응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양국 국방부가 남북 간 핵비대칭성이 초래하는 한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이 평가할 만하다. 어쨌든 북한의 도발과 한·미의 강력한 대응이 교차하는 현 상황을 종합할 때 당분간 북핵을 둘러싼 긴장은 ‘주고받기식’으로 고조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긴장이 한국 안보에 순기능을 하는 부분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확대억제, 주한미군 그리고 연합훈련

  이번 공동성명은 그동안 한·미 간에 논의·합의되었던 사안들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즉, 지금까지 정상회담이나 안보·외교 관련 회담에서 합의했던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기술했다.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라는 원칙의 공유(제2조), 우주 및 사이버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제11, 14조), 상호운용성 강화에 중점을 둔 국방연구 및 방산 협력(제12, 13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공조와 협력 등 양국이 이미 합의하고 있는 사안들을 재강조했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제15조) 등 미국이 대중(對中) 견제를 위해 한국의 동참을 요구해온 사안들도 다시 한번 포함되었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COTP)(제10조), 한·미·일 안보협력의 지속적 증진(제16조), 대북 제재 공조(제17조) 등도 재확인되었다. 그럼에도,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핵 위협 억제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 역량을 동원한 확대억제 공약’을 재확인한 제3조와 현 수준의 주한미군 유지를 약속하고 유엔사의 역할을 강조한 제5조 그리고 연합훈련 복원·확대의 필요성에 합의한 제7조 등이다.

  제3조는 “핵 군사력, 재래 군사력, 미사일 방어 능력, 첨단 비핵 군사력(nuclear, conventional, missile defense capabilities and advanced non-nuclear capabilities) 등 모든 범주의 군사력으로 확대억제를 제공한다는 미국의 확고한 공약(firm U.S. commitment)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한 확대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을 연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과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 미사일대응 정책협의체(CMWG), 미사일방어 공동연구협의체(PAWG) 등 양국 국방당국 간 대화체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기술도 포함되었다. “미국이나 동맹국 및 우방국에 대한 핵 사용을 포함한 어떠한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will result in the end of the Kim regime)”이라는 경고도 담았다. “필요에 따라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하고 북한의 위험한 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식별해 나가기로(identify new steps to reinforce deterrence) 했다”는 표현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향후 사태 악화 시 미 전술핵 재배치 등 추가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전력 수준을 현재대로 유지하기로 한 제5조와 한미 연합훈련을 복원·확대하기로 한 제7조는 한국 국민을 안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러시아의 핵사용 가능성, 중국 시진핑 주석의 3연임 확정 등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규모나 역할에 변화가 생긴다면 한국에는 매우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합훈련도 그렇다. 현시(visibility)와 전진배치(forward deployment)가 억제력을 높이는 주요 변수가 되는 안보현실에서 한국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군과 함께 대응 능력을 과시하는 것은 북한의 핵 오판을 억제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변수이며, 때문에 지난 5년간 보류·축소·폐지되었던 연합훈련들이 복원·확대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요약건대 동맹 차원에서의 대북 억제의 요체는 확대억제와 주한미군 그리고 연합훈련이며, 이번 한미 안보협의회는 이 요체들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주고 받기식’ 긴장고조 불가피

북한은 지난 9월 하순의 한·미·일 해군훈련과 11월 초순의 한미 연합공군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에 반발하면서 9월 25일에서 11월 5일까지 총 18 차례에 걸쳐 60여 기의 미사일을 쏘았다. 거기에는 화성17호 장거리 미사일과 화성 12호 중거리 미사일에서 구식인 스커드에 이르기까지 단·중·장거리 미사일들이 망라되었으며,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한 발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한국의 영해 인근에 떨어지기도 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하는 포격, NLL 침범, 위협비행, 대규모 공중훈련 등도 이어갔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한·미 또는 한·미·일 연합훈련이 실시되는 기간 중에는 대체로 무력도발을 자제하면서 ‘북침연습’ 비난이나 퍼붓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북한이 한미 또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이토록 대담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간과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금년 들어 ‘핵무력 정책법’을 제정하여 ‘핵사용’ 전략과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까지 선언한 북한이 바야흐로 본격적인 ‘핵강국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질런트 스톰’이 종료된 다음 날인 11월 6일 노동신문은 “불가역적 위상을 성취한 공화국이 무력의 군사기술적 강세와 실전 능력을 만천하에 각인시켰다”고 선전했다. 한마디로, 이제 미국도 건드리지 못하는 핵강국이 되었으므로 남쪽에서 실시되는 훈련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비핵국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갑질’은 갈수록 거세어질 것이다. 둘째, 최근 연합훈련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북한의 불안감이 높아진 것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10월 23일부로 세계 최강의 무인공격기로 알려진 MQ-9 리퍼 드론 8대를 운용인력 200여 명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현의 가노야 해상자위대 항공기지에 실전 배치했는데, 이 드론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Q-9 리퍼는 정보수집, 감시정찰, 공격 등의 임무도 수행하지만 특히 요인 암살용 무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20년 1월 3일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Quds)군 사령관 가셈 술레이마니 장군을 제거했는데, 당시 술레이마니 장군은 이라크의 바그다드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내려 차량으로 옮겨 타고 공항 내 도로를 이동하던 중 MQ-9 리퍼가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을 맞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첨단 군용기 240여 대가 동원된 한미 연합공군 훈련에 북한이 불안감을 느끼고 군부대에 준전시 태세를 발령하고 군 지휘관들에게 ‘갱도 훈련’을 지시하면서 ‘수뇌부 호위’를 강화한 데에는 이런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안보국론 통일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내면적 불안감을 가진 채로 ‘불가역적 핵강국 위상’을 뽐내는 북한이라면 앞으로도 한·미 또는 한·미·일 연합훈련을 시비하면서 ‘강 대 강’ 국면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6·25 정전 이후 지금까지 실시해온 모든 연합훈련이 북한의 주요 군사도발 직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북한은 적반하장의 억지 주장을 계속할 것이고, 한·미 또는 한·미·일의 대응도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식의 긴장 고조는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북핵에 대응하는 정도(正道)는 이미 오래전부터 ‘핵균형을 통한 핵억제’였다. 그럼에도 과거 정부들은 ‘달래기나 퍼주기’ 또는 ‘압박과 제재’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안주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문제에 있어 강한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이다. 이번 북한의 도발과 긴장은 한국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30년’을 청산하고 정도를 걷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 삼아 벌이는 북한의 핵도발 게임이 한국 혼자 대응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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