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핵에 대한 착각과 진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7월 1일 오후 3:16 업데이트: 2022년 07월 1일 오후 3:16

시카고대의 현실주의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는 2018년 저서「대착각 (The Great Delusion)」에서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적 패권(Liberal hegemony)’을 앞세워 세계를 ‘자유민주주의의 바다’로 만들려 했지만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고 한탄했다. 특히, 중국을 국제경제질서에 편입시켜 발전시키면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할 것으로 믿었던 것은 ‘대착각’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실이 그랬다. 중국은 미국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국제경제질서에 편입되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경제력을 민주주의 인권 사회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기보다는 그것을 토대로 ‘대국 굴기’와 ‘중화패권’을 외치는 권위주의 세력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중국은 군사, 정보, 경제, 기술, 우주, 반도체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맞서는 ‘신냉전 시대’를 열었고 ‘전랑외교’로 주변국들을 겁박하는 팽창주의 세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상호 의존적 국제 질서하에서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았던 그로티우스(Yugo Grotius)적 예상은 빗나갔고, “힘을 키운 나라는 반드시 군림하려 든다”는 홉스(Thomas Hobbes)적 예상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순진한 착각’와 ‘의도된 착각’들이 북핵을 괴물로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순진한 착각이란 희망적 생각(wishful thinking)들을 현실인 양 착각하는 것을 말하며, 의도된 착각이란 한국 사회의 분열을 통해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려는 특정 세력들의 고의적인 착각을 의미한다. 이 착각들에 대해 한국의 현실주의 전문가들은 1990년을 전후하여 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했을 때부터 경고를 발해왔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순진무구와 무사안일로 일관해왔으며, 그런 가운데 북핵은 통제 불가한 괴물로 성장했다. 그 결과, 한국은 옴팡지게 당하고 있다. 북한의 ‘핵 갑질’이 심해지는 가운데 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1/50에 불과한 경제력을 가진 북한의 구미를 맞추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과 착각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며, 그 구분을 토대로 북핵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이제 착각들과 결별해야 할 때

그동안 북핵과 관련하여 회자되어온 착각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중 상당수는 아직도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올바른 북핵 대응을 훼방하고 있다. “북핵은 정권 생존을 위한 대미 억제용일 뿐이다”, “북핵은 동족을 겨냥하지 않는다”, “북핵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일 뿐이다”, “적절한 대북 정책과 보상으로 북핵 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 “중국도 북핵을 원하지 않으므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북한은 어차피 핵을 사용할 수 없다” 등 많은 착각들이 한국 사회를 둘로 쪼깨어 왔다. 그중에서도 평양 정권의 의도와 관련한 순진한 착각은 미증유의 안보위기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내부의 적이다. 당연히, 북한이 핵무력에 집착하는 최대 목표는 한반도에 있다. 그것이 진실이다.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탄급 미사일, 일본과 괌을 위협하는 중거리 미사일,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위협하는 단거리 미사일 등을 고루 개발해왔는데, 이 모두는 결국 남북관계 지배와 주체통일을 위한 것이다. 미국을 위협하는 핵무기나 괌을 공격권에 두는 핵무기는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며 그보다는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한반도로부터 미국의 영향력을 이탈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며, 이는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핵을 사용할 수 없다”, “동족을 겨냥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주장들은 북한의 핵전략이 변모되어온 과정을 보면 궤변에 지나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이 첫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던 2003년에 열린 제9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권호응 북측 단장은 “남조선도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는 망언을 했고 이후 북한의 인터넷 매체들은 “선군정치는 남조선까지 포함한 민족의 존엄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6년 첫 핵실험 이후부터는 한국에서도 북핵을 ‘민족의 핵’으로 간주하는 착각이 유행했다. 하지만, 북한은 2013년 “한국이 핵보유 동맹국인 미국과 야합하여 북한에 맞서는 경우 핵을 사용한다”라는 취지가 담긴 ‘핵보유법’을 제정했다. 이어서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는 상대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제 핵사용 포기(NFU)’ 정책을 표방했지만, 2021년 8차 당대회에서는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2022년 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핵사용을 불사한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5월 5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담화를 통해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를 천명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북한이 처음에는 약소국형 억제 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겸손 코스프레’를 했지만, 이제는 공공연하게 강대국형 공세형 핵사용 전략을 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의 올바른 핵대응을 훼방해온 최대의 착각은 “적절한 대북 정책과 보상으로 북핵 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 착각하에서 ‘진보’들은 “대북 유화정책과 보상을 통해 북핵 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안보 논리에 입각한 원칙적인 북핵 대응을 원하는 인사들을 향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해왔다. 반면, ‘보수’들은 제재와 압박 그리고 국제 공조를 통해 핵포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하면서 “진보 정부들의 무분별한 대북 현금 지원이 핵무기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이는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무한 평양 정권이 듣기에는 참으로 우서운 논쟁이다. 북한은 ‘수령독재체제 유지와 주체통일’이라는 불변의 목표하에 핵무력을 건설해왔고, 신냉전 구도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를 무력화시키면서까지 북핵을 두둔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이 북핵을 만류할 것이라는 망상도 버려야 한다. 중국에 있어 한반도 정책의 최대 목표는 유일한 군사동맹인 평양 정권의 존속이며 미·중 신냉전 구도에서 북핵이 미국을 지치게 만드는 중국의 전략자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양보나 설득, 제재와 압력 또는 국제 공조로 북핵을 포기시킨다는 한국의 비핵화 논쟁은 암 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하는 식의 엉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의 순진한 발언도 착각을 확산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북이 핵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2001년 발언, 북한을 수 차례 방문한 후 “북은 핵무기 개발 의사가 없다”고 했던 빌 리처드슨 당시 미국 뉴멕시코주 지사의 2003년 발언, “체제 안정과 경제적 지원이 보장되면 북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2004년 발언 등이 그 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첫 핵실험을 한 달 앞둔 2006년 9월에도 “아무른 핵실험 징후나 단서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외에도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협상용 카드”라고 했던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2005년 발언, “북핵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은 미국 내 강경파가 동북아 주도권을 위해 가상의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2005년 발언, “북한에 고농축우라늄이 있다는 어떤 정보도 없다”고 했던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의 2007년 발언, “북핵은 한국이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을 택한 결과”라고 했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2016년 발언,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한 정의용 대북특사의 2018년 방북 결과 브리핑 등 북핵 문제의 진실을 흐리는 데 기여한 지도자급 인사들의 발언은 대단히 많다.

이제는 진실을 바탕으로 북핵에 대응해야 할 때

이제는 한국도 착각과 망상을 버리고 진실에 입각한 정책으로 북핵에 대응해야 한다. 유화책이나 제재로 핵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는 ‘북핵판 대착각’과 결별하고 독자적 군사 역량과 핵우산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여 핵균형을 구축함으로써 북한의 핵무기가 일방적으로 한국을 겁박하고 남북관계를 지배하는 수단이 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북한의 핵 집착을 포기시키는 정도(正道)임을 인정해야 한다. 북핵의 최종 타깃이 한국이란 진실도 더 이상 부인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넘어, 온 국민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적인 남북 상생도 한국이 더 이상 넘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확인시켜줌으로서 가능해진다는 ‘베케티우스식 진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전쟁주의자’로 매도하는 궤변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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