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한 발 쏘지 않고 공산주의에 맞서 승리한 레이건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국을 ‘글로벌 공공 외교’ 수단으로 사용해 소련을 물리쳤다.
에멜 아칸
2019년 11월 22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22일

올해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해를 넘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동유럽 공산권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고, 소련 제국의 무혈 붕괴에 크게 기여했다. 공산주의에 대항한 그의 획기적인 전술은 후대에 귀중한 교훈을 남겨 준다.

소련을 향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은 심플하다. 그는 소련과 맞서 총부리를 겨누고 미사일을 발사하며 싸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이긴다. 그들은 진다”며 미국의 승리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레이건 대통령과 정치적 소올메이트(soulmate)로 불릴 정도로 이념과 사상을 공유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우리는 지금 로니(레이건의 애칭)가 시작한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냉전에서 승리했다”며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철의 장막 뒤에 있었던 4억여 명의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한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를 구상했다. 이 전략은 실제로 동방의 공산주의의 패배를 앞당기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워싱턴의 국가안보문제대학원 세계정치연구소(IWP)의 존 렌차우스키 소장은 지난 15일 당사자가 주최한 행사에서 그때의 시대 상황에 대해 ‘정보와 이념 및 사상의 전쟁’이었다고 표현했다.

1983~1987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했던 렌차우스키 소장은 “레이건 정부의 전략적 목적은 소련 제국 국민과 연계해 그들이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산주의 정권의 주요 통치방식이 ‘국민이 원하지 않는 틀 속에 그들을 밀어 넣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며, 동독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동독 인구의 약 30%가 정권의 비밀 정보원이었는데, 이는 사회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회를 공동체 집단에서 분리시켜 파편화, 원자화된 개인 사회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통신, 정보, 교육 등의 모든 수단을 동독 공산 정권이 독점해 그들의 정치적 이념에 맞춰 활용했다. 그러했기에 레이건 대통령의 목표는 그 독점을 깨기 위한 것이라고 렌차우스키 소장은 강조했다.

위대한 소통가

1981~1989년까지 집권한 미국의 40대 레이건 대통령은 ‘위대한 소통가’(The 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외국인과 소통하는 주요 방법으로 활용했다.

그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 라디오 리버티(Radio Liberty) 등 미국 국제 방송사를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렌차우스키 소장은 “우리는 라디오 채널과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위해 25억 달러를 받았다”며 미국의 메시지를 해외에 전파하는 것이 레이건 행정부의 핵심 외교 정책이었으며, 당시 새로운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언급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군비 통제 담당 이사였던 케네스 아델만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공공 외교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계속 발전하고 있던 글로벌 통신망 덕택이었다고 설명했다.

1981년 미국 국제 관계 및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아델만 대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깔린 배경에 대해 “레이건은 성년기 대부분을 라디오 방송, 순회 강연, 신문 잡지에 칼럼 쓰기, 선거 유세로 보낸 재능 있는 전문적 의사소통 전문가다. 대중 외교는 그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잘하는 국제적인 업무 분야다”라고 썼다.

굴라크 가장 어두운 복도에서도 반향

1983년 소련을 처음으로 ‘악마의 제국’(evil empire)으로 낙인찍은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은 냉전 시대의 두 강대국 사이의 갈등을 ‘선과 악’의 대결로 정의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렌차우스키 소장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이것(evil empire speech)은 굴라크의 가장 어두운 복도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를 언급하며 대통령의 연설을 평가했다.

레이건의 대통령 연설은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와 나단 샤란스키 같은 공산권 내부의 많은 반체제 인사와 인권 운동가에게 돌연 희망을 안겨 줬다고 그는 부연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 공산주의와의 전쟁도 병행했다. 그의 참모진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계는 미국 정부가 공산주의에 유연해야 하며 소련 정권을 미국에서처럼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렌차우스키 소장은 “많은 학자, 정책 전문가들은 소련 체제와 소련 그 자체가 영구적인 지정학적 정치 구도로 확신했다”며 이들은 미국의 정책은 그러한 특성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고 여겼고, 그렇지 않으면 핵 전쟁터에서 서로 폭파시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음을 밝혔다.

베를린 장벽

레이건 대통령의 생각은 그당시 너무 급진적이어서 어느 누구도 그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렌차우스키 소장에 의하면 레이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 일부는 소련의 약점을 보았고, 소련 체제의 상당부분이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이 장벽을 무너뜨립시다’라고 했던 베를린 연설 또한 유명하다.

레이건의 연설문 작성자인 피터 로빈슨에 따르면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겨냥한 그 내용에 대해 당시 미 국무부, 국가안전보장회의, 베를린주재 미국 고위 외교관이 모두 반대했다.

로빈슨은 2012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서 “대통령이 어쨌든 요구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거의 2년 반이 경과한 후인 1989년 11월 9일, 30여년 동안 베를린을 동과 서로 갈라 놓았던 거대한 장벽은 실제로 무너졌다.

미국 내 모든 저항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공공 외교와 함께 한 그의 정책은 베를린 장벽 철폐, 동유럽의 공산주의 척결, 그리고 결국 1991년 소련 붕괴를 이끌어내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렌차우스키 소장은 공공 외교는 오늘날의 외교 정책 수립에 필수적인 부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 국무부에는 오래 전부터 (각 나라의) 국민과 관계보다는 정부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려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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