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화권의 설 맞이 풍경

박영주 /중국문학박사_전 숙명여대 겸임교수
2022년 02월 3일 오후 6:48 업데이트: 2022년 02월 4일 오후 3:00

춘절은 지나간 한 해를 종결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중국의 음력설이다. 이전 농본(農本)사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장 중요한 전통 명절이다. 이전에는 ‘과년(過年)’이라 했으나 1912년 중화민국(中華民國) 성립 후 양력으로 개정하면서 ‘춘절(春節)’로 개칭했다.

춘절의 유래는 4000여 년 전 요순(堯舜)시대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린 것에서 기원한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진 기원이다. 오랜 역사에서 음력설 시기도 변화되었으나 한(漢) 무제(武帝) 때 오늘날의 설날인 정월 초하루로 굳어졌다.

중화권에서는 음력 1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거리 곳곳마다 설 분위기가 충만하다. 12월 23일에는 집집마다 조왕신(竈王神)에게 제를 올리는데 새해맞이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조왕신은 부엌의 수호신이다. 인간 세상의 실제 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신이기도 하다. 조왕신은 한 해의 모든 상황을 하늘에 보고하고 그믐날에 되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기에 조왕신에게 바치는 축문은 “호화호설 불호화소설(好話多說, 不好話少說(좋은 말은 많이, 나쁜 말은 조금만 해 주세요)”이다. 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듯 인간미 가득하다.

그믐날은 춘절의 절정이다.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붉은색 바탕의 그림(연화·年畫), 글(춘련·春聯), 복(福) 자 등을 대문, 벽, 기둥에 붙인다. 또한 수선화나 금전수 같은 ‘개화(開花)’와 ‘결실’을 상징하는 꽃들로 장식하기도 한다. 더불어 지난 한 해를 평안하게 돌보아준 조상과 신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제사를 드린다.

특히 평소에 멀리 떠난 가족들까지 모두 모여 풍성한 세모밥인 연야반(年夜飯)을 먹으면서 서로 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밤을 지새워 새해를 맞이하는데 이러한 ‘해 지킴’을 한자어로 수세(‘守歲’)라고 한다.

정월 초하루 원단(元旦)에는 설빔으로 새 옷을 입고. 친지들과 새해 인사를 나눈다. 대개 공시!공시!(恭喜恭喜), 공시파차이!(恭喜發財), 신녠콰이러(新年快樂) 등의 덕담을 건넨다. 세배와 더불어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세뱃돈, 압세전(壓歲錢)도 빠질 수 없다. 세뱃돈은 어른들이 잡귀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는 돈으로 과거에는 아이의 나이만큼 동전을 붉은 실에 꿰어 가슴 앞에 걸어주었으나 요즈음은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주기에 ‘훙바오(紅包)’라고 한다.

설 음식은 중국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북방에서는 그믐날 자시(子時·밤 11시~새벽 1시)가 지나면 새해로 바뀌는 것(交子)을 기념하기 위해 발음이 같은 교자(餃子·만두)를 먹는다. 남방에서는 설 떡 녠가오(年糕)를 먹는데, ‘더 높이 오르라’는 뜻의 녠가오(年高)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또한 물고기 모양의 녠가오인 녠위(年魚)도 즐겨 먹는데 역시 ‘해마다 더 풍족해지자’는 뜻의 녠위(年余)와 발음이 같다. 단어가 음이 같거나 비슷하여 다른 단어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는 현상인 해음(諧音) 현상은 음식 문화에도 여실히 남아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 중국 거리의 볼거리로는 지신(地神)을 다스려 악귀와 액운을 쫓고 복을 부르는 의미에서 행하는 용춤, 사자춤이 대표적이다. 이는 중화권 축제에서 빠트릴 수 없는 단골 풍습이다. 여기에 밤하늘에 찬란하게 펼쳐지는 폭죽이 만들어 내는 불꽃은 설맞이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하겠다.

중화권에서 춘절은 정월 보름 너머까지 이어진다. 형형색색의 정월 대보름 연등 축제도 끝나는 신년 17일이 되면 모든 ‘춘절’ 행사는 마무리되고 새로운 한 해 업무를 시작한다. 춘절 기간 동안에는 금기(禁忌)도 존재한다. 불길한 말을 해서도, 물건을 깨뜨려서도 안 된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필자가 베이징에서 춘절을 보낼 때였다. 연일 터뜨리는 폭죽으로 천지는 온통 화염(火焰)에 휩싸였다. 폭죽 소리는 소낙비, 우박 소리를 넘어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기세였다. 이는 중국이 지난날 번영을 누린 한(漢)제국, 당(唐)제국과 같은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염원을 표출하는 듯했다.

해마다 벌이는 폭죽놀이는 사실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정부는 화재 위험, 소음, 금전 낭비 등을 명분으로 자제를 권하지만 중국인들은 요지부동이다. 민중들은 폭죽을 터트리는 만큼의 액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온다는 뿌리 깊은 믿음으로 값비싼 폭죽 비용조차 개의치 않는다.

이렇듯 중화권에서 춘절은 송구영신(送舊迎新)하며,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놀이를 통해 지난해의 노고를 풀고 가족의 단결, 나아가서는 사회의 단결을 도모하며 희망차게 새해의 염원을 다지는 의미를 지니는 기간이다.

글을 쓰면서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농악대가 집 마당으로 들어와 꽹가리 치며 흥겨운 타령, 복조리를 주며 덕담을 하면서 막걸리와 돈 봉투를 주던 호탕한 아버지의 모습, 부엌에서 하얀 행주치마를 두른 채 정성스레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니 모습, 정화수에 절을 올리시던 단아한 어머니의 뒷모습…

미풍양속은 그만큼 값어치를 지녔기에 전수되는 것이 아닐까.

인륜과 윤리가 허물어진 황망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는 요즈음, 가족이란 고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길 수 있는 명절 활동과 민족문화 행사가 진흥되어 밝고 훈훈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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