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국경충돌을 계기로 살펴 본 양국 군사력

천저우
2020년 6월 21일
업데이트: 2020년 6월 22일

최근 중국-인도 국경에서 양국 군인 간 충돌이 발생해 한동안 잠잠했던 중국-인도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중국은 상세한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인도 소식통에 따르면, 최소한 20명의 인도 군인과 43명의 중국 군인이 사망했다. 양국은 서로 상대방에 책임이 있다며 충돌을 피하기 위한 협상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양국 간 전쟁 가능성을 제기하며 중국과 인도의 군사력을 비교분석하기 시작했다.

쌍방의 대규모 병력 증원

인도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인도는 20만여 명의 산악부대원 중 약 10만 명을 이미 중국과의 국경에 배치했다.

인도군은 최소 10개의 전방 공항에 전투기가 대량 배치됐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인도는 수호이(Su)-30, 미라지-2000 전투기와 아파치무장 헬기, C17 중형운송기 등을 전선에 배치했다. 또 미국에서 수입한 155mm 견인포 M777 145문을 국경에 배치했는데 이 장비들은 이동성이 좋아 산악 작전에 유용하다.

가디언은 인도가 T-90S, T-72M 탱크를 국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도 전했다. 인터넷에는 해당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1962년 중국-인도 전쟁(중인전쟁)의 패배를 재연하고 싶지 않은 인도는 이처럼 병력을 증가시키면서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도 병력을 늘리고 있지만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최신 15식 경형 탱크, 96식 주전 탱크, 직-20헬기, 공격-2무인기, PCL-181식 차량탑재 155mm 견인포, 신형 다연장 로켓포 및 젠(殲)-10, 젠-11, 젠-16 전투기도 배치 완료했다.

인도 육군, 국경에서는 우세 가능성

전체적인 군사력은 인도가 열세다. 중국 군대는 200만 명이 넘고 국방예산은 연간 2000억 달러(약 232조 원)가 넘는다. 주로 미군을 적으로 가상해 조직됐다. 인도 군대는 약 130만 명이고 국방예산은 연간 약 550억 달러(약 67조 원)이다. 인도 군대는 주로 중국, 파키스탄을 겨냥해 조직됐다.

중국과 인도가 전쟁을 벌인다면 아마도 육군간 전투가 될 것이다. 중국의 육군은 약 120만 명, 인도 육군은 약 110만 명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산악부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약 20만 명 규모다. 미국에서 산악 교관을 초빙해 훈련받았고, 실전 경험도 쌓았다고 한다.

중국 산악부대는 오직 티베트군구에만 2개의 산악합성여단, 1개의 중형합성여단(미군의 기갑여단전투단에 해당)과 1개의 특전여단(1개 여단은 약 6천~7천명)을 두고 있다. 다 합쳐 3만 명을 넘지 않으며 이는 1962년 중국-인도 전쟁 당시와 비슷한 숫자다.

인도가 산악부대원 10만 명을 이미 국경에 배치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인 국경에서는 인도 군대가 수적으로 우세하다. 중국이 병력을 늘린다 해도 얼마나 증원할지, 장비가 산악전투에 적합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중국과 인도의 육군 무기와 전투 장비 수준은 비슷하지만, 인도가 전력상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자체 개발해 생산한 최신 99식 주력 탱크 1000 대 이상, 96식 주력 탱크 2500대 이상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 장비가 산악 전투에 적합한지는 알 수 없고 모든 탱크를 티베트로 이동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최신 PCL-181식 차량탑재 155mm 견인포와 122mm 자주포, 로켓포 등도 보유했지만 현재 배치 수량은 불확실하다.

인도는 러시아의 주력 탱크인 T-90 탱크 약 1000대를 수입했고, T-72 탱크도 약 3000대 보유하고 있다. 가디언은 인도가 산악 작전에 유용한 M777 155mm 견인포 145문을 이미 국경에 배치했고 앞으로 더 많은 장비를 증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인도와 중국의 공군 및 미사일 비교

중국 공군은 전후로 차세대 전투기 젠-10을 500대 생산했지만, 현역 수량은 불명확하다. 그 후 수호이-27을 모방한 제4세대 전투기 젠-11을 250대 생산했다. 러시아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수호이-28과 수호이-30을 각각 약 50대, 약 70대 생산했다. 수호이-30을 모방해서 만든 젠-16은 128대 생산했다. 그 외에도 중국은 4.5세대 전투기 수호이-35를 24대 보유하고 있다.

인도는 러시아에서 수호이-30 전투기 272대를 구매했고 프랑스에서 구매한 미라지-2000 전투기도 41대 보유했다. 또한, 일정 수량의 미그-21, 미그-29 전투기도 있다.

만일 양국 간에 공중전이 벌어진다면, 러시아 전투기와 러시아 짝퉁 전투기 간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인도 조종사는 훈련 경험이 많은 반면 중국은 전투기 수명을 연장하느라 조종사의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인도는 전투기 대부분을 국경에 배치할 수 있지만, 중국은 전투기를 서부 지역에 전부 배치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경 지역의 공군 병력도 인도가 우세하거나 최소한 열세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로켓군(전략 미사일 부대) 중 중-인 국경의 동부 지역에 가장 가까운 부대는 윈난성의 제62 기지다. 이곳은 주로 둥펑(東風)-21과 둥펑-16 중거리 미사일을 장비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까운 부대는 칭하이, 간쑤의 제64 기지인데, 주로 둥펑-21과 둥펑31 전략핵미사일을 장비하고 있다. 하지만 핵미사일을 쓰기는 쉽지 않다.

또한 중국은 수백 개의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제조하기가 쉽지 않아 전부 서부 지역으로 이동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며 전선의 공항이나 지휘소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을 중-인 국경에 배치하기에도 부적합하다. 중국의 단거리 미사일 배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가 러시아와 공동개발한 브라모스 순항미사일 가운데 지대지 미사일은 사정거리 500km로, 중-인 국경에서 지상공격용으로 쓰기에 적합하다.

중국은 해군에 가장 많이 투자하지만, 항공모함은 1개월 이상 배치할 수 없어 출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비해 인도의 브라모스 대함미사일은 대단히 위협적이다.

핵전쟁 가능성은 아주 낮다. 중국이 군사력을 총동원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양국의 국경 지역 군사력 배치를 보면 인도가 단기간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고려해야 할 다른 사안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는 중국보다 인도가 훨씬 강하다.

인도는 1962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중국이 고원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하도록 상당한 병력을 중-인 국경에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동시에 파키스탄도 방비해야 한다. 최근 인도가 파키스탄과의 충돌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파키스탄 방비를 위한 병력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인도가 우려할 점은 이뿐이다.

미국이 선진무기를 공급할 것이고 인도는 러시아에서 무기를 더 많이 구매할 수도 있어 보급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1962년처럼 전쟁을 일으킨다면, 인도 영토를 점령하려는 게 아니라 안팎으로 곤경에 처한 중국 고위층이 위기를 벗어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우려해야 할 것은 훨씬 많다.

현재 중-인 국경의 산지는 국경선이 이빨처럼 맞물려 교차한다. 양국의 전투력을 고려하면, 산악 전투에서 중국 군대가 10만 명의 보병을 투입한다 해도 인도의 산악방어막을 돌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은 인도와 전쟁을 치르면서 최소한 동쪽, 남쪽 해역에서는 미국을, 북방에서는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파트너로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다. 동시에 한반도의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또한 미국은 동남아를 지지해 남해를 차지하려 할 것이므로 중국은 양면작전을 구사하기 어렵고 대만을 위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방대한 산악지구의 보급선을 유지하는 것도 곤란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소모되는 국력은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중국은 끝없는 대리전에 휘말리게 돼 국력이 손상될 뿐 아니라 국제적인 형세는 더욱 불리해질 것이다. 중국 고위층의 권위도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과 서방국가는 모두 중국을 주목하고 있고 중국에 1962년과 같은 기회가 더는 없다.

최근 충돌이 발생한 후 중국 고위층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타협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중국-인도 국경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

중국과 인도의 국경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865년, 인도 측량국 공무원인 윌리엄 존슨은 ‘존슨 라인’을 획정해 악사이친(Aksai Chin)을 포함한 3만km²의 토지를 영국령 인도에 귀속시킨다. 당시 영국 정부는 청 정부와 교섭하지 않았고 중-인 국경 서부 지역의 분쟁이 시작된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티베트는 청나라 군대를 축출하고 독립을 선포한다. 1913~ 1914년 사이 중화민국과 영국령 인도, 티베트는 3자회담을 개최했지만, 당시 북양정부(1912~1928 중화민국정부)가 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협상에서 배제된다. 티베트 정부와 영국령 인도는 ‘심라조약’을 체결해 9만㎢에 달하는 티베트 남부 지역이 영국령 인도에 넘어가는 ‘맥마흔라인’ 국경선을 획정한다.

인도는 1947년 독립 후 ‘맥마흔라인’을 포함한 영국령 인도 영토를 승계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역대 중국 정부는 심라조약과 맥마흔 라인을 모두 인정하지 않아 중-인 국경의 동부 지역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에도 중국-인도는 국경에서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수년간 이어진 갈등은 결국 티베트 문제로 폭발했다.

1959년 중국 통치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티베트에서 발생하고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한다. 이를 두고 중국은 인도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1960년,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인도를 방문해 네루 총리에게 국경 문제 해결을 제안한다. 그 후 중국이 소련과 대립하면서 한반도에서의 미국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없었던 반면 인도는 소련, 미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62년 8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발해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틈을 타 마오쩌둥은 중인전쟁을 일으켰다. 10월 20일 중국은 3만의 병력으로 기습했고. 인도는 약 2만2천 명의 병력으로 응전했지만 결국 중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10월 말 쿠바 미사일 위기가 끝나고 미국이 인도에 무기를 보내며 개입하자 중국은 한 달 후 일방적으로 정전을 선언한 뒤 철군해 실질통제선(LAC)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중국은 대약진 운동(1958~1961)이 실패하면서 수천만 명이 아사했다. 비록 3년 자연재해라고 무마했지만, 마오쩌둥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시선을 외부로 돌려 당내 지위를 되찾은 마오쩌둥의 중국은 인도와의 전쟁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둔 후 스스로 물러났다. 이는 전쟁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국제적인 압력과 더불어 중국 군대의 보급라인에도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중국, 장기전에 들어가면 불리…기피할 것

1962년 중인 전쟁은 순전히 중국 지도자의 개인적인 정치적 계산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중국은 자위 반격전이라고 주장하며 “인도에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후 중국과 인도는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관계로 악화했고 국경분쟁도 해결되기 어려웠다. 중국은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인도는 오랫동안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여겨왔다 그 후 점차 국경에서 양국의 군사력은 균형을 이뤘다.

중국 고위층은 1962년의 중인전쟁과 유사한 동기를 가질 수 있으나 중국과 인도의 군사력은 예전과 다르다. 기습은 불가능하고 국제적인 형세도 아주 불리하다. 중국은 마음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도는 방어에 주력할 뿐 영토를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충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무기를 사용한다면 어느 쪽이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산악지역에서의 장기전은 수많은 사상자 발생, 장비 파괴 및 국력 소모로 이어질 것이다. 인도는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왔고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시간을 끌 수 없다. 지구전은 중국 고위층에 아무런 이익도 없고 골치만 더 아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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