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협 커질수록 차이잉원 대만 총통 인기 상종가

중국에 맞서는 '대만의 매운 언니'
최창근
2022년 08월 22일 오후 4:11 업데이트: 2022년 08월 22일 오후 4:11

연일 수위가 높아지는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 속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인기가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을 비롯한 미국 상·하원 의원과 고위 정치인이 대만을 방문한 데 이어 영국·독일·일본·캐나다 의원들의 면담 약속이 줄 잇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서방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8월 2~3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발 속에 타이베이(臺北)를 찾아 그를 만난 뒤 8월 14~15일에는 미국 여야 상·하원 의원 5명이, 21일에는 에릭 홀콤 인디에나 주지사가 뒤를 이어 타이베이를 방문했다. 대만에 있어 전통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일본 국회의원들은 오는 8월22~24일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고, 영국·독일·캐나다 의원들도 올해 안에 타이베이를 찾을 예정이다.

중국의 위협에 단호히 맞서는 면모를 보여 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차이잉원의 별칭은 ‘라타이메이(辣臺妹·매운 대만 언니)’ ‘대만의 철의 여인’이다. 취임 전 별명은 이름에서 유래한 ‘샤오잉(小英)’이었지만 총통이 된 후 새로운 별칭을 얻었다.

‘타임’ ‘포브스’ 등 서방 유력 잡지들은 인구 2390만 명의 대만을 이끄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대처 전 영국 총리, 매르켈 전 독일 총리에 이어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차이잉원을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한 미국 ‘타임’.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 본성인(本省人·국민당 정부 이주 이전 대만섬 거주 대만인) 집안 출신이다. 그에게는 한족(漢族)이 아닌 대만 원주민 피도 흐른다. 차이잉원의 조모는 대만 원주민의 한 갈래인 파이완(排灣)족이다.

차이잉원은 1956년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아버지 차이제성(蔡潔生)의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자동차 수리업, 부동산 투자, 건설업 등으로 거부가 된 차이제성의 네 번째 부인이다.

차이잉원은 국립대만대 법학과 졸업 후 미국 코넬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국립정치대 교수로 활동했다. 당시 동료 교수 중 한 사람이 전임 국민당 소속 총통인 마잉주(馬英九)였다. 이런 인연으로 차이잉원과 마잉주는 사석에서 ‘차이 교수’ ‘마 교수’로 부르는 사이가 됐다.

차이잉원 현 총통(좌)와 마잉주 전 총통(우) 두 사람은 각각 민진당, 국민당 소속 정치인으로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젊은 시절 국립정치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한 인연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서로를 ‘마 교수’ ‘차이 교수’라 부르는 사이이다.

국제법 학자 차이잉원을 정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은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다. 본성인 출신으로 1988년 사망한 장징궈(蔣經國)의 뒤를 이어 총통이 됐던 리덩후이는 대만 독립론자였다.

리덩후이 정부에서 차이잉원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행정원 경제부 산하 무역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행정원 공정무역위원회 위원, 내정부 산하 저작권 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대중국 업무 전담부처인 행정원 대륙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며 ‘홍콩과 마카오 간의 통치 관계 조례(港澳關係條例)’ 제정 업무를 맡았다.

차이잉원은 1992~2000년 경제부 국제경제기구 수석 법률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대만의 가트(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가입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 과정에서 수석 협상 대표로 참여했다. 또한 1999~2000년 국가안전회의(NSC) 자문위원, 국가통일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리덩후이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특별한 국가 간의 관계’로 규정한 ‘양국론(兩國論)’ 초안 작성에 관여했다. 양국론의 핵심은 중국과 대만은 별개 국가로서 새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중국 측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응하는 논리이다.

선거 유세장에서 함께한 차이잉원(좌)과 리덩후이(우) 전 총통. 리덩후이는 국제법 학자 차이잉원을 정계로 발탁한 인물로서 ‘정치적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2000년 3월 대선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이 승리하여 사상 첫 여야 수평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차이잉원은 양안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통일부 장관 해당)으로 임명돼 본격 정계 입문했다. 이후 2004년 민진당 비례대표 입법위원(국회의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를 역임했고 2008년 민진당 주석이 됐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마잉주 총통에게 패배했으나, 2016년 재도전 끝에 총통에 당선되어 대만 첫 여성 총통이 됐다. 그해 12월에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이례적인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첫 재임기에는 경제 정책 실패, 탈원전 정책 논란, 인사를 둘러싼 잡음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연임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여파, 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의 친중 논란 등에 힘입어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의 위협 수위가 높아질수록 지지율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총통 3연임이 불가능한 대만 선거법에 의거하여 차이잉원은 2024년 차기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다. 다만 차세대 주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제1야당 국민당 상황, 확산되고 있는 대만 내 반중 정서 등을 종합할 때 차기 대선도 민진당의 승리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