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에이즈 만연 실상, 비참한 지경”

2016년 1월 5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8일

中 에이즈 퇴치운동가 동생시드니서 중국 실상 폭로
중공 당국에이즈 사태 은폐하며 오히려 구제활동 탄압 
에이즈 만연사태당국의 잘못된 혈액정책에서 비롯
허난성에만 환자 수십만 명 ··· 가족들 생활 비참

중국의 유명 에이즈 퇴치 운동가의 동생이 해외에서 중국의 에이즈 실상을 전하는 활동을 펼쳤다.

지난달 6일 호주 시드니의 차이나타운에서는 가오야오제(高耀潔·87) 여사의 동생 가오스하오(高世浩)가 누나의 작품 《가오야오제의 회상과 수상》을 현지 중국인에게 증정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가오스하오는 대기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중국 에이즈의 실상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중공은 과거 ‘혈장(血漿)경제’ 사업을 크게 일으켜 중국에서 에이즈가 폭발하는 사태를 일으켰다. 허난(河南)성에는 주민 다수가 에이즈를 앓는 마을, 이른바 ‘에이즈 마을’이 여러 곳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중공은 대책과 보상 마련은커녕 마을을 봉쇄해 외부와의 출입을 막아 주민들을 더욱 비참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운동가들을 비열한 수법으로 방해해왔다는 것이다.

가오스하오는 “에이즈 환자들의 비참한 상황과 죽음, 남겨진 고아들의 증오로 가득 찬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며 “큰누님(가오야오제)이 인권상을 수상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나 역시 국가안전부로부터 감시와 각종 시달림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中 에이즈 실태, 중국 언론은 오히려 ‘쉬쉬’

가오 여사는 ‘중국의 민간 에이즈 퇴치 1인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녀의 직업은 허난성 중의학단과대 교수이자 산부인과 종양 전문가다. 그녀는 에이즈에 관한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중국 에이즈 환자들이 겪는 가정 파탄과 가족의 죽음 등 비참한 상황을 외부에 알려왔다.

이러한 중국의 에이즈 사태는 주민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다. 중공이 주민들의 혈액을 사들이는 이른바 ‘혈장경제’ 사업을 시행하며 일회용 주삿바늘을 재활용하면서 발생했다. 에이즈 환자의 몸에 꽂은 주삿바늘을 다시 정상인의 몸에 꽂거나, 에이즈 환자의 혈액을 수혈해 에이즈를 퍼뜨린 것이다. 여기에 불법 업체들까지 난립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지난 십수 년간 중공은 책임 인정을 거부하면서 온갖 방식으로 가오 여사를 탄압해왔다.

2009년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중국의 민간 에이즈 퇴치 운동가이자 의사인 가오야오제가 워싱턴 기자클럽에서 자신의 현장기록 작품인 《피의 재난 : 10000통의 편지》를 정식 출간했다. | 에포크타임스

가오스하오는 이번 시드니 책 증정 행사의 목적에 대해 “중국에 에이즈가 만연한 실태를 세계에 알리고, 중국에서 수천만 명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큰누님(가오 여사)은 수십 년간 이런 일을 하다가 나라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지금 나는 (중국) 안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현장에는 중국 에이즈 환자의 사진도 함께 전시됐다. 가오스하오는 “저 사람들이 썩어가는 것을 봐라. 마지막에는 신체해부도에 그려진 뼈처럼 된다. 환자들은 가난해서 닭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키울 돈도 없다”면서 “(중국) 방송국에서는 좋은 것만 보도하고 나쁜 것은 보도하지 않아 사람들은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에이즈 마을 봉쇄하고 사멸’ 유도

중국 당국은 에이즈의 만연에 대해 축소·은폐하고 있다. 허난성 당국은 2013년 “전 성을 통틀어 에이즈 감염자는 5만9천 명”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가오스하오는 “10배를 곱해도 (실제 환자수보다) 한참 모자란다”고 반박하면서 “허난성의 많은 지역에 에이즈 만연 실태가 심각하다. 현지 정부에서는 마을을 봉쇄해 자생자멸(自生自滅)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에이즈 만연 지역의 한 마을 묘지 | 에포크타임스 DB

이러한 사태에 대해 중앙정부는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번은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CCTV)의 차이징(柴静) 기자가 허난성의 한 에이즈 마을을 방문하려다가 현지의 간부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다.

에이즈 환자도 문제지만 남겨진 아이들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에이즈는 최대 잠복 기간이 15년이다. 에이즈가 폭발적으로 발병할 당시 감염된 환자 대부분이 현재 사망했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고아 신세가 됐다.

지난 2011년 가오야오제는 한 매체에 이러한 고아들을 소개하며 “현재 에이즈 실상은 정부 발표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음식이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 비참한 지경에 놓여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러한 고아들은 마음속에 증오를 품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한다”며 한 고아의 사진을 가리키며 “목 부분에 원수(仇·초우)라고 새겼다. 한 고아는 복수하겠다고 말했는데, 복수의 대상은 사회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오스하오는 “큰누님도 이를 염려해 많은 일을 했다. 많은 고아를 산둥, 홍콩 등 여러 곳에 보내 구제했는데, 대략 9천 명 정도 된다. 이런 고아 중에는 에이즈 보균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균자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에이즈 피해지역이 허난성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오스하오는 “사실 다른 성도 피해를 입었다. 큰누님이 가봤던 산시(山西),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등지에 모두 있었다. 당시, 혈장경제는 전국적이었다. 만약 주삿바늘을 재사용하지 않고 한 사람당 한 번씩만 사용해 채혈했다면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피를 너무 많이 뽑았다”며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혈액은행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인들은 모두 수혈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죽을 때가 다 됐을 때나 수혈하지, 일반적으로는 모두 수혈할 엄두를 못 낸다. 누구의 혈액 속에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공보름 동안 가오야오제 가택연금

이날 배포된 가오 여사의 책에는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국으로 출국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에 대해 묘사돼 있다. “2007년 미국에서 시상하는 ‘생명의 소리’상을 받으러 내가 미국에 가려 할 때 당국은 가지 못하게 방해했다. 경찰 50여 명을 동원해 보름간 가택연금을 했다.”

가오 여사가 설득에도 흔들리자 않자 중공 정부는 마지막 카드로 비열한 수단을 꺼내들었다. 가족을 동원한 협박이었다.

가오스하오는 “허난성 위생청의 한 부청장이 누님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조카는 공무원이었는데 누님에게 와서 아무 말 안 하고 무릎을 꿇었다. 정말 괴로운 상황이었다. 누님도 눈물을 흘렸다. 누님이 울음을 멈추자 위생청 부청장이 펜과 종이를 내밀며 ‘몸이 안 좋아서 미국에 상을 받으러 가기 힘들다고 성명 하나만 작성하라’고 했다. 그러자 누님이 ‘그렇게 쓰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직접 상을 받으러 못 가고 내 여동생이 대신해서 갈 것이다’고 적고는 오열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 당시 큰누님이 그렇게라도 안 써줬다면 조카가 40년 전에 겪었던 누명을 다시 한 번 쓰게 됐을 수도 있다. 조카는 40년 전, 열세 살밖에 안 됐을 때 화장실에 반동구호를 적었다는 이유로 3년의 노동교화 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암울하던 상황은 외부의 도움으로 급반전을 맞게 됐다.

가오스하오는 “2월 16일 갑자기 누님이 미국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방해하다 이렇게 놓아주었다면 분명히 거물이 나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클린턴 미국 국무부 장관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두 통의 편지를 보냈고 결국 후진타오가 놓아준 것이었다. 위기는 그렇게 끝났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가오스하오는 자신의 희망을 다시 한 번 밝혔다. “모든 사람에게 중국에 아직 이렇게 많은 에이즈 환자가 있음을 알리고,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그는 “누님이 그렇게 큰 박해를 받으면서도 계속 근면성실하게, 진지하게 모든 일을 했다. (당시) 누님은 허난성의 모든 현을 거의 전부 돌아다녔다”며 자못 뭉클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가오 여사는 미국에 머물며 에이즈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올해 87세의 고령으로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온 그녀는 “일생이 다하도록 중국의 에이즈 역사를 전하겠다”며 “중공의 최대 문제는 날조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중공이 내게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한다면 죽어도 안 돌아갈 것이다”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이 중국으로 송환돼 재단설립 등 또 다른 사기극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해 유골을 황허(黃河)에 뿌려달라는 바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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