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체제 교수 “중국인들, 마오쩌둥 실체 알면 놀란다”

NTD
2021년 6월 25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25일

문화대혁명 겪고 미국 간 쑹융이 캘리포니아대 LA 캠퍼스 교수
“중국인들 마오쩌둥 영웅으로만 알아…진실 알려줄 필요성”

중국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위광정(偉光正,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정확하다)’를 지속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공산당의 진정한 역사와 만행을 잘 모른 채 공산당의 선전에 끌려가고 있다는 한 중국 반체제 인사의 지적이 나왔다.

문화대혁명 연구가인 쑹융이(宋永毅)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 교수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 중국어판에 실린 기고문에서 한때 마오쩌둥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자신이 반체제 인사로 전향하게 된 과정을 풀어놨다.

쑹 교수는 자신이 공산당을 옹호하는 중국 상하이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문화대혁명 당시 ‘검은 7가지 부류(黑七類·문화 대혁명 초기 지주·부농·반혁명분자·악질분자·우파·반역자·스파이나 그 자녀를 낮춰 부르는 말)’로 취급돼 고초를 겪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오쩌둥을 열렬히 지지해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고위급 간부의 자제 집에서 훔친 미국 서적을 읽으면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 때 벌인 행위가 히틀러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훗날 그가 공산당의 역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결국 반체제 인사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쑹 교수는 1971년 ‘일타삼반운동(一打三反, 부패·투기·낭비 축출)’에 걸려 좁은 지하방에 5년 반 동안 감금됐다. 그 사이 그는 수 차례 자살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으며, 단식 투쟁을 통해 어렵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수감 기간, 그는 ‘마오쩌둥 선집’,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 레닌의 저서 등 서적을 읽으며 이들의 사상을 근본에서부터 탐색했고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마오쩌둥의 행적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서 회의감도 점차 깊어졌다고 했다.

쑹 교수는 많은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이 일본으로부터 중국을 지킨 영웅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항일전쟁의 주력이었다고 하지만, ‘마오쩌둥 선집 제3권’에 따르면 마오쩌둥의 모든 군 관련 지시는 일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세력을 키워 국민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기 위한 준비에 집중됐다. 항일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다.

석방 후 관련 연구를 계속한 쑹 교수는 1989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문화대혁명과 중국 정치사에 대해 더 깊이 연구했다. 1999년 귀국해 문화대혁명 관련 자료를 정리하다가 국가안전부에 붙잡혔으나 반년 만에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풀려났다. 그는 잡혀 있는 동안 문화대혁명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가안전부의 젊은 요원들을 상대로 매일 저녁 강연을 해 ‘쑹 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쑹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정치 운동을 계속 일으키며 속임수로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계속 공산당에 대해 희망을 품게 만든다”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진정한 역사를 알면 이런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알아야 할 진정한 역사의 한 사례로 1968년 문화혁명 기간 광시장족자치구에서 벌어진 인육 사건 일명 ‘광시 학살(혹은 광시 문화혁명)’을 들었다. 이 사건은 마오쩌둥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친지나 가족을 살해한 뒤 인육을 먹은 사건이다. 굶주림의 영향도 있었다.

쑹 교수는 “문화대혁명 때는 살인, 성폭행이 성행했지만 광시 문화혁명의 절정기에는 살인을 유희로 여겼다. 약 15만명이 사망했는데 정식으로 총살형을 당한 사람은 단 10명뿐이었다. 나중에 공산당원 2만5천명이 살인혐의로 당에서 제명당할 정도로 다들 살인에 광분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정부도 이 사건을 조사해 공식 문건을 남겼다. 이 단체는 해당 문건을 입수해 1968년 광시자치구 무쉬안현 등 8개현에서 최소 75건의 인육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광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들은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려는 과정에서 패싸움을 벌인 끝에 살해한 상대편의 살과 내장 등 인육을 먹었다.

쑹 교수는 “이 사건으로 무쉬안현에서만 최소 75명이 살해 당해 잡아 먹혔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싸운 게 아니라, 정부가 싸움을 부추겨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에포크타임스의 시리즈 논평집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에서는 광시 문화혁명 당시 등장한 인육 조리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당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인육으로 잔치를 벌였는데, 온갖 요리법을 총동원했다. 이들은 술 게임을 벌이며 인육 만찬을 즐겼다.

쑹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정리한 책 ‘광시 문화혁명 식인 유행(廣西文革中的吃人狂潮)’에서 “광시의 식인 유행은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구축한 폭력 지향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스템, 결사적인 계급 투쟁, 문화혁명 등 잔인한 정치 운동이 초래한 결과물”이라고 논평했다.

덧붙여 “마오쩌둥은 이런 정치운동을 집권 기간에 50~60번은 했다. 마오쩌둥 당시부터 시작된 이런 행위는 이미 몇십년간 반복돼 왔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속임수에 빠져 사는 중국인들에게는 사태의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전했다.

/NTD 협력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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