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간선박 투입해 해군력 강화하는 ‘민군융합’ 박차

강우찬
2022년 09월 27일 오후 12:00 업데이트: 2022년 09월 27일 오후 12:00

‘회색지대’ 전술로 남중국해 공략
군·민간 구분 모호해 대응 어려워

중국 정부가 민간선박을 이용해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스리랑카의 항구에는 감시 장비를 실은 중국 과학조사선이 정박하고, 남중국해 섬들 사이에는 중국 어선들이 수개월째 머물고 있다. 사람과 차량을 가득 실은 원양 여객선도 출몰한다.

전문가는 이러한 선박들이 겉으로는 민간선박을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해상능력을 강화하는 민군융합 정책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남중국해 등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대만 주변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태평양 섬나라들과 미국에 맞설 안보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도 했다. 남중국해 분쟁 해역에서는 인공섬 건설과 군사요새화가 진행 중이다.

어선과 탐사선 등 중국 민간선박은 이러한 중국의 군사적 목적에 호응하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선박의 숫자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외교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임무를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 해군을 대신해 수행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전문가 그레고리 폴링은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1년 중 최소 280일 동안 닻을 내리고 어업조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어선은 남중국해를 비롯해 세계 여러 해역에서 민병대 혹은 준군사부대 역할을 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민간선박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해왔지만, ‘남사골간함대(Spratly backbone fleet)’ 창설 이후 그 수가 많이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이 함대에 보조금을 지급해 새로운 선박 건조를 지원하고 있다.

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 소장인 폴링은 중국이 스프래틀리 제도에 인공섬과 항만 인프라를 건설한 후 중국 민간선박이 “거의 하룻밤 사이에 수백 척이 출현했다”며 “이 수역에는 300~400척의 민간선박이 항상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스프래틀리 제도에 대해서는 중국 외에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주변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지역은 어업 생산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선박 항로에 위치하고 있다.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 가능성도 기대된다.

중국 어선들은 수십 척씩 몰려다니며 이 지역에서 다른 국가의 어선들이 조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의 정부에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필리핀대학 항해해양법문제연구소 제이 바통바칼 소장은 “(중국어선들은) 일단 겉으로는 민간 어선이기 때문에 필리핀 해군은 민간인에게 무력행사를 했다는 중국의 비난을 우려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통바칼 소장은 “중국은 주변국의 자기방어를 발동하지 않을 한계치 이내에서 회색지대(gray zone)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색지대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범위나 상태를 가리킨다. 군사적으로는 정규군을 동원하지 않아 상대국이 정규군을 동원한 대응을 어렵게 하는 전술을 가리킨다. 중국은 해상 영유권 분쟁이나, 국경분쟁, 사이버 분야에서 회색지대 전술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서해에서 활동하는 중국 어선 역시 이러한 전술 운용의 한 사례로 분석된다. 한국 대전대 경찰학과 강사 노연상의 2021년 연구에서는 “중국은 어민으로 위장한 75만 명의 해상민병대를 운용하고 있다”며 서해가 회색지대 해양분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연구 링크).

폴링 소장이 중국 정부의 보고서와 위성사진 등을 분석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남사골간함대’는 상업용 어선 800~1000척 외에도 민병대용 선박 200척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방위정보업체 젠스(Jen’s)의 애널리스트는 중국 정부가 군사 임무에 민간 조사선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선박이라는 점을 내세워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하지 않으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인도 정부가 새 미사일 시험발사를 준비하던 지난 8월 중국은 ‘보급’ 명목으로 조사선 위안왕 5호를 인도 남동부에 가까운 스리랑카 한반토타항에 정박시키려 했다. 위안왕 5호에는 미사일 추적설비가 갖춰져 발사 데이터 수집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끝에 위안왕 5호는 입항이 허용됐으며 8월16일부터 8월22일까지 머물다 떠났다.

위안왕 5호는 국제해운 사이트에 연구·조사선으로 분류됐으며, 스리랑카는 이 배를 ‘과학적인 정보함’이라고 불렀다. 미국 국방부는 위안왕 5호를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SSF)가 운용하고 있다며 사실상 군함으로 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