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사나이’ 주중 일본대사

박상후
2021년 12월 5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5일

최근 동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는 아무래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발언이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1일 대만의 싱크탱크 국책연구원 문교기금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중국 공산당(중공)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다.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은 반드시 일본의 국토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 대만의 유사시는 일본의 유사시다. 이는 곧 일미동맹의 유사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베이징에 있는 사람들, 시진핑은 이에 대해 절대 오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면으로 지적했다. 오키나와, 센카쿠 제도를 지키려는 일본의 의지를 오판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무력침공은 경제적 자살”이라고도 경고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신(新)시대의 일본, 대만 관계’라는 주제의 심포지엄 화상 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는 대만 타오위안 시장 쩡원찬, 신저우 시장 린즈졘 등 민진당의 차세대 지도자와 국제관계학자들이 참석해 아베 전 총리와 의견을 교환했다.

아베 전 총리는 최근 30년 동안 중공의 국방비가 42배 증가했으며 여기에 대항하는 일본과 대만은 스스로의 방위능력을 높여 확고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대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지지를 표명하면서 대만의 국제적 지위를 한발 한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유롭게 사람들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대만은 일본의 이익이며 세계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만 간 경제협력에서도 반도체 같은 양국이 자신 있는 분야가 있어 유사시 안심하고 확실히 공급을 확보할 태세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중공에 대해 들으라고 하는 의도와 함께 기시다 내각의 일부 친중파에 대한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일본 외무대신 하야시 요시마사가 친중파라 그가 중공을 혹시 방문할지도 몰라 양국관계를 불안하게 보던 대만인들이 아베의 강연을 듣고 안도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아베 신조의 이 같은 발언은 흔들릴 수도 있는 기시다 내각의 대외정책에 아예 쐐기를 박는 톡톡한 효과를 냈다.

하야시 마사요시 외무대신은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내년 외무성에 인권담당 포스트가 신설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중공의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처하는 포스트인데 “이로써 일본다운 외교를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 이는 또 일미동맹의 유사라는 언급의 파급력도 핵폭탄급이다. ‘반일(反日)은 반미(反美)’라는, 전에 없는 강한 메시지이다.

일본 내 아베 반대파들은 이 메시지가 난데없이 미국을 끌어들였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아시아 정세가 중공의 위협으로 위태로워진 마당에 일본이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주일미군 주둔비 분담도 증액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2월 3일 아베 신조 전 총리에 호응했다. 대만 유사 사태는 파멸적인 판단이 될 것이라고 중공에 경고했다. 또 전수방위를 분명히 하고 있는 현행 헌법의 프레임에서 일본 자위대는 자국 유사시에만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대만 유사가 일본 유사라는 표현은 자위대 출병의 조건을 명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력은 아직 막강하다. 총리 재직 기간이 워낙 긴 데다 자민당 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직 기간 중에 수많은 외국 정상과 만나 다져놓은 국제적 영향력도 아직 건재하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중공은 크게 반발했다. 왕원빈 중공 외교부 대변인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망언을 했다”면서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에 도전하면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말했다.

화춘잉도 “대만 문제 언급은 중요한 내정간섭”이라면서 주중일본대사 타루미 히데오(垂秀夫)를 초치해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자 타루미 대사는 “정부를 떠난 분의 발언에 하나하나 설명할 입장에 있지 않다. 일본 국내에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을 중공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중공 측의 거센 항의에 전혀 기죽지 않고 정면으로 반박한 타루미 대사의 의연함에 대해 일본의 석간 후지는 격찬했다. “하야시 마야요시 외무대신이 정계 굴지의 친중파지만 외교 일선은 아주 굳건하다”고 평가했다.

“나를 키운 것은 국민의 세금이다”

석간 후지의 타이틀은 아주 인상적이다. <‘중국 당국이 경계하는 사나이’ 타루미 히데오 주중대사, 아베 발언에 대한 중국의 반발 일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961년생인 타루미 히데오는 스가 요시히데 내각 시절인 2020년 9월 주중일본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중공이 가장 경계하는 외교관으로 아주 유명하다. 외무성의 관방장을 하다가 주중대사로 내정됐다.

타루미 주중대사는 일본 외무성의 최고가는 중국 전문가이다. 중공 내 인맥이나 정보가 폭넓어 중공 당국이 스파이로 여길 만큼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다. 대사 내정이 결정됐을 때 혹시 아그레망(상대국의 임명 동의)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타루미 대사는 정무 공사 시절이던 2013년 외무성의 지시로 소리소문없이 귀임한 적이 있다. 귀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의 정보수집능력을 잔뜩 경계한 중공 측으로부터 무언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만 추정될 뿐이다.

또한 베이징에 있었던 시절 도청에 대비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고 심(SIM)카드도 빈번하게 쓰고 버렸다고 한다. 한번은 자택의 팩스가 울려서 보니 계속 백지만 쏟아져 나와 협박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는 부임 직전 NHK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그동안 쌓은 인맥과 경험을 살릴 수 있어 영광이다. 나를 키워준 것은 일본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이를 갚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타루미 대사는 교토대 출신으로 재학시절에는 럭비를 즐겼다. 외무성에 들어가서는 학습경험이 전혀 없었던 중국어를 전문언어로 선택해 공부하기 시작해 난징대학에서 연수했다. 부임한 지역도 베이징, 홍콩, 대만 등 모두 중화권이었다. 대만에서 2번 베이징에서 4차례 근무했다.

그는 특히 베이징에서 근무했을 때 아주 정열적이었다. 1년에 300회 이상 중국인들과 식사를 했다. 낮, 밤 가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중국인들과 만나느라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중난하이(中南海·중공 권력층 집단 거주지)의 사람들과 골프도 치고 가라오케도 가고 사우나도 같이 했다고 회고했다. 베이징을 떠나 다른 곳에 근무할 때도 1년에 3번 정도는 베이징 상하이로 건너가 인맥 유지에 힘썼다.

이런 노력으로 외국인으로서는 취득하기 힘든 중공 내 인사나 기밀정보를 취득했으며 그런 날은 아무리 늦어도 대사관에 복귀해 본국에 정보 보고를 했다. 중국 공산당 인사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인사들까지 폭넓게 교류했다.

그는 중국인들과 깊게 사귀기 위해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써가며 선물도 보냈는데 자비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10년간 이렇게 노력한 결과 일본 외무성의 차이나 스쿨은 그가 쌓아놓은 자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타루미 대사가 처음부터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거창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중국을 알고 싶다는 예술가적 기질이나 장인의 정신으로 30대부터 노력했다고 한다.

일중관계가 냉각기였던 고이즈미정권말 외무사무차관이던 상사 야치쇼타로(谷 正太)로부터 아베 정권이 탄생했으니 뭔가 양국관계 개념을 구상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 구상한 개념이 ‘전략적 호혜 관계’였다. 양국 간 다양한 현안이 있지만 공통된 이익을 위해 대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구상인데 이는 아베 신조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아베 신조는 중공을 방문해 후진타오를 만나 전략적 호혜 관계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타루미 대사는 당시 자신의 아이디어가 반영돼 매스컴에서 보도하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회고했다.

중국 전문가인 타루미 대사는 대만과도 인연이 깊다. 대만 인맥도 아주 광범위하다. 사진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 그는 대만 총통부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개인전에는 당시 대만 부총통 천졘렌도 방문했다. 개인전은 그에게 고마워하는 대만 측이 비용을 부담했다고 한다.

그는 사진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현지 정계의 인맥을 넓혔다. 사물을 철저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지닌 그는 인생 중에서 가장 바빴던 중국, 몽골 과장 재직 시절 취미로 사진을 시작했다고 한다.

베이징에 대사로 부임할 때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은 일중관계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중국에 정통한 인사를 파견해야 한다면서 그를 적극 추천했다.

타루미 히데오 주중 대사는 일본외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외교관 개개인의 능력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박상후의 시사논평 프로그램 ‘문명개화’ 지면 중계

*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표현은 원저자의 ‘중공’ 대신 중국, 중국 공산당으로 변경했습니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