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영매체, 편당 1천만원 주고 ‘타임’에 어떤 기사 실었나

2021년 6월 12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12일

‘드론이 사람을 농사일에서 해방한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China Daily)’의 작년 12월 25일 자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의 게재 시점이 절묘하다. 바로 일주일 전인 18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가 중국 최대 드론 제조사인 DJI(大疆 ·다좡)를 제재 기업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정보당국이 드론으로 미국 개인과 기업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중국의 모든 기업은 정부의 자료 수집에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DJI 드론은 미국에서 정보 수집 의혹을 받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주민 감시 수단으로 쓰인다. 위구르족 등 수백만 명이 감시의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신장 지역에서, 중국 당국은 DJI 드론을 감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나데일리 기사는 이 같은 사실은 외면하고 DJI 드론의 긍정적 용도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기사는 DJI가 지난 1년간 농업용으로 4만 대의 드론을 판매했으며, 이 회사가 “농민의 효율성을 높이고 스마트 농업 설비 사용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의 보도 시점과 방향성을 볼 때, 차이나데일리가 미국에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지적이 또 한 번 입증된다.

현재 차이나데일리는 미국의 ‘외국대행기관등록법(FARA)’에 따라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됐다. 흔히 한국에서 ‘중국 관영매체’로 불리는 인민일보(해외판), 신화통신, CCTV 해외판인 CGTN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매체가 아닌 중국의 해외기관이라는 의미다.

타임 홈페이지에 실린 ‘드론이 사람을 농사일에서 해방한다’ 기사 화면 캡처. 화면 상단에 유료 파트너 콘텐츠라는 안내 문구가 새로 생겼다. 우측에는 차이나 데일리 로고가 작게 보인다. | 화면 캡처

차이나데일리, 미 유력지에 ‘기사형 광고’ 싣고 중국 이익 대변

차이나데일리는 종이신문과 인터넷 홈페이지 외에 현지 다른 매체에도 ‘기사형 광고’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DJI 드론을 옹호한 기사 역시 미 유력 주간지 ‘타임’(Time)에 차이나데일리 로고와 함께 실렸다.

FARA 관련 문서에 따르면, 차이나데일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간 총 70만 달러(약 8억 원)를 내고 미 유력 주간지인 타임에 총 75편의 기사를 유로로 게재했다. 즉 기사형 광고인 셈이다.

기사형 광고는 화면 우측 상단에 차이나데일리라는 작은 로고가 달렸고 하단에 차이나 데일리 배너가 달렸다. 기사 최상단에는 ‘유료 파트너 콘텐츠(PAID PARTNER CONTENT)’라는 작은 안내문이 표시된다.

이를 클릭하면 ‘이 내용은 후원사를 대행하는 유료 컨텐츠이다. 타임 편집 담당자는 콘텐츠 제작이나 생산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안내문이 나타난다. 이전까지는 이런 안내가 전혀 없었으나 최근 추가됐다.

타임 홈페이지에서 검색기능을 활용해 ‘차이나데일리(China Daily)’를 검색했을 때 가장 상위에 제시되는 게시물은 앞서 다룬 ‘드론이 사람을 농사일에서 해방한다(Drones Take Drudgery Out Of Farmwork)’와 4월 26일 자 ‘쟁기 외교가 어떻게 성공했는가(How Plowshare Diplomacy Won the Day)’이다.

‘쟁기 외교’ 기사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때 통역을 맡았던 퇴임 외교관 채스 프리먼이 지난 50년간 이뤄진 중국의 급속한 현대화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보수매체인 ‘워싱턴 프리비컨’에 따르면 프리먼은 재작년에 설립된 워싱턴의 민간단체 ‘퀸시연구소’와 관련이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 2월 소속 비상근 연구원인 조슈아 랜디스가 중국의 위구르족 집단학살을 부인하고 ‘극우이념’에 근거한 비판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그 밖에 차이나데일리 기사들은 정치나 외교와 무관한 기사들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기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정치나 외교를 다룬 기사에서는 중국을 두둔하는 성향을 나타냈다.

차이나데일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와도 제휴를 맺었다. 타임을 제외한 이들 3개 언론과의 제휴 관계는 지난해 종료됐다.

월스트리트저널 2017년 1월 17일 자에 끼워진 중국일보의 유료광고면 차이나워치(China Watch) | Benjamin Chasteen/The Epoch Times

지난해 WSJ에 실린 차이나데일리 기사 중 1편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형제 닐 부시가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부과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서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납치했다’고 비난했다.

WSJ은 해당 기사 상단에 ‘유료 항목’이라는 작은 안내 문구를 띄웠다. 이 문구를 클릭하면 “이 내용은 중국 관영 출판물 차이나데일리가 단독으로 비용을 내고 제작했다. WSJ은 이 창작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한편, NYT는 지난해 차이나데일리와의 제휴 관계 종료와 관련해 “중국 관영 매체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시인했다.

에포크타임스는 타임에 차이나데일리와의 파트너십에 관한 논평을 요청했지만 자동회신 메일만 받았을 뿐 다른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한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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