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국영기업 중심 공유제 강화…궁지몰린 민영기업가들

허졘
2019년 11월 20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20일

뉴스분석

중국 관영언론의 민간기업 몰아세우기가 노골화하고 있다. ‘리카싱(李嘉誠·청쿵그룹 전 회장)을 도망 못 가게 하라’ ‘판스이(潘石屹·중국 부동산재벌)를 도망 못 가게 하라’ 같은 기업인을 노골적으로 협박하는 기사를 자주 내보내고 있다.

공산당의 압력도 거세다. 기업인에게 공유제(公有制) 서약을 종용하고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민간기업을 약화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60년 전 민관 합작이라는 미명으로 공사합영(公私合營·민관 합작경영) 운동을 벌여 상하이의 기업인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과거사를 반복하고 있다.

중국 기업가들, 왜 중국 떠나나

중국 부동산 재벌 판스이가 중국 자산을 정리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외부에는 그가 제2의 리카싱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판스이의 부동산 개발회사 소호차이나(SOHO China)는 중국 내 오피스 빌딩을 80억 달러(약 9조 3,088억 원)에 매각할 계획이다. 소호차이나의 반기보고서(半期報告書)에 따르면, 현재 소호차이나의 비(非)유동자산은 총 636억 6,000만 홍콩달러(약 9조 4,714억 원)에 불과하다. 즉, 이 오피스 빌딩을 모두 처분하면, 소호차이나는 중국 내 사업자산을 완전히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판스이는 리카싱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카싱이 2013년 상하이 금융 중심지 루자쭈이(陸家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OFC)를 매각한 후, 판스이도 중국 자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완전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소호차이나의 부동산 매각 누계 금액은 이미 300억 위안(약 4조 9,878억 원)을 넘어섰다.

2015년 9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신화통신(新華社)이 위챗 공식계정에 ‘리카싱을 도망 못 가게 하라’는 제하의 글을 실었을 때 파문이 크게 일었다. 지금은 일부 중국 경제 언론만이 같은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판스이 일가는 이미 해외에 살길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2011년부터 판스이, 장신(張欣) 부부는 가족신탁을 통해 막대한 자산을 해외에 투자했다. 그들이 인수한 고정자산은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옆의 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Port Authority Bus Terminal)과 맨해튼 파크 애비뉴 광장(지분 49%), 브라질 재벌그룹과 함께 인수한 제너럴 모터스 빌딩(지분 40%) 등이다.

2017년 8월, 판스이는 ‘판스이도 리카싱과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처럼 해외로 도망가려 한다’는 소문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권력의 작두 위에서 춤을 춰야 하는 중국 기업인들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2013년 리카싱은 회사를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2015년 1월 자신의 회사 CKH홀딩스(長和)를 영국령 케이맨 제도로 옮겼다. 또한 그는 2011년 이후 중국과 홍콩에서 매각한 자산 3,000억 홍콩달러(약 44조 6,280억 원)를 영국, 호주 등 법률제도가 잘 갖춰진 민주국가로 옮겼다.

주요 자산을 다 옮겨 놓은 리카싱은 최근의 홍콩 민주화 폭풍 속에서 다른 홍콩 거물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있다.

홍콩의 거물은 대부분 경찰들의 무차별 폭력을 용인하는 홍콩 정부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재벌들은 심지어 홍콩 정부의 ‘토지를 나누고 토호를 타도하자’는 정책에 맞춰 무상으로 부동산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집값 상승의 원흉’이라는 오명도 뒤집어써야 했다. 그러나 리카싱은 부동산 시장의 누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토지 분배’ 정책에 응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리카싱은 중국 공산당의 폭력을 빗대 ‘황태지과 하감재적(黃台之瓜 何堪再摘·넝쿨에서 오이를 계속 따면 어찌 버티랴)’이라는 글귀를 광고 지면에 싣기도 했고, 홍콩 정부가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누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고 외쳐도 리카싱, 판스이 또는 여타 크고 작은 민영 사업가들은 도망갈 수 있는 한 도망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망가지 못한 기업인의 말로

중국 공산당은 이제 막 끝난 중국 공산당 4중전회에서 “공유제 경제를 흔들림 없이 확고히하고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중국 민영 사업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국진민퇴’ 정책을 중국 공산당이 다시 한번 보증했음을 뜻한다. 당은 이를 통해 부채 위기와 경제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중에서 혼합소유제 개혁은 국유기업 개혁의 중요한 돌파구로 여겨진다.

혼합소유제 개혁은 ‘새로운 공사합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를 중국 공산당은 목숨을 부지하는 지푸라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영기업의 부(富)를 앗아가는 ‘국진민퇴’나 ‘공사합영’이 중국 기업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바,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2013년 11월 톈쩌(天則)경제연구소 강연에서 중국 유명 변호사인 천여우시(陳有西)는 “민영 사업가들은 모두 감옥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했다. 이 말은 정곡을 찔렀지만, 역사와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60여 년 전, 중국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에서는 매일 많은 상공업자가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몰래 건물 옥상에 올라가 투신자살했다. 당시 상하이 시장 천이(陳毅)는 날마다 ‘오늘은 몇 명의 낙하산병(落下傘兵)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투신한 기업가 수를 묻는 말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생명 경시 풍조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1950~1953년 사이, 중국 공산당은 피비린내 나는 토지 개혁을 통해 지주와 부농인들의 가산을 빼앗고 군중들을 선동해 서로 싸우게 만들어 수백만 명의 지주 계층을 없애버렸다.

중국 공산당의 그다음 사냥 목표는 도시 상공업자였다. 1952년에 사유경제가 국민소득의 80%를 차지한 탓에 민영기업은 중국 공산당의 수확 대상이 된 것이다.

1953년부터 중국 공산당은 일부 민영기업의 주식을 강제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정부 대표 신분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관리하도록 간부를 파견했다.

1954년 9월, 중국 공산당 정무원(政務院·중국 인민대표대회가 성립되기 이전 국가 정무의 최고집행기관)은 ‘공사합영 임시시행조례’를 통과시켰고, 1956년 공사합영을 단행했다. 1966년 공사합영기업이 결국 국유기업으로 바뀌면서 개인주식은 하룻밤 사이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공유화’됐다.

이 기간 동안 중국 공산당은 공사합영에 맞춰 ‘오반’(五反·민영 상공업자들이 관리 부패의 원인이라고 지목해 공격한 정치운동) 운동을 벌이면서 자본가를 공략했다. 이에 많은 상공업자가 굴욕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했다. 예를 들어, 항일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중국 선박왕 루쭤푸(盧作孚)는 1950년 많은 선박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으나, 1952년의 ‘오반’ 운동 중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음독자살했다.

이런 역사가 지금 재연되고 있다. 민영경제가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중국 공산당은 산더미 같은 부채와 국유기업의 쇠퇴, 그리고 나라 안팎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바닥이 난 정부‧국유기업‧권력층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국진민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 중국 공산당은 중국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혼합소유제 경제’ 발전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는 국유기업을 발전시키고 ‘국진민퇴’를 추진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국유기업 혼합개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2013년에서 2018년 사이, 각 성(구, 시)이 시행한 혼합개혁 기업은 5000개가 넘었고, 당은 6,000억 위안(약 99조 9,960억 원)이 넘는 비(非)공유자본을 거둬들였다. 또한 중앙 기업이 시행한 혼합개혁은 3359건으로, 9,000억 위안(약 149조 5,710억 원)이 넘는 비공유자본을 거둬들였다.

혼합소유제 개발은 중국 공산당이 현재의 경제 조건 아래에서 공사합영을 실시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혼합소유제에서 중국 공산당이 민영기업에 정부 대표를 파견하는 것은 66년 전 공사합영 과정에서 정부 대표를 파견한 것처럼 중국 공산당이 ‘수확’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지난 9월, 항저우(杭州)시 정부는 1차로 기관 간부 100명을 뽑아 알리바바(阿裏巴巴), 지리홀딩스(吉利控股), 와하하(娃哈哈) 등 100개 중점 기업에 정부 대표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기업인들이 술렁였다.

이에 중국 당국은 정부 대표가 민영 기업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60여 년 전 투신한 상하이 상공업자들도 당시 정부 대표에게서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러나 사실 정부가 민영기업에 사람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이 ‘사업’을 수년 전에 이미 대대적으로 추진했었다.

지난해 9월 홍콩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재작년 홍콩에 상장된 중국 회사 중 최소 123개 회사가 사내 당(黨)위원회에 이사회를 능가하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회사 정관을 수정했다.

지난해 6월, 중국 증감회(證監會·중국증권감독위원회)는 상장회사에 반드시 당(黨)지부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치위(齊玉) 부부장은 “2016년 말 기준, 중국 국유기업 14만 7000개 중 93.2%, 민영기업 273만개 중 67.9%, 외자기업 10만 6000개 중 70%가 각각 중국 공산당 당(黨)조직을 설립했다”고 했다.

정부나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민영기업에 들어가 기업 내부 파악을 끝냈고, 이제 ‘공사합영’이라는 큰 수확을 할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60년 전의 무섭고 끔찍한 일을 아는 중국 민영사업가들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마윈, 알리바바 내주고 생존…세계적 기업인도 예외 없어

예나 지금이나 중국 공산당 통치하에 있는 민영사업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중국 공산당 손아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상업계의 기적을 일궈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리바바는 수천억 달러의 부(富)를 창출했고 알리바바 제품과 서비스는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바꿔놓았지만, 결국 마윈도 돈과 목숨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 알리바바는 마윈이 알리VIE(Variable Interest Entities)의 지배권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알리바바 그룹과 중국 공산당 기관지는 모두 “마윈이 VIE(이익이나 회사 지분을 지배 회사에 양도하는 계약을 맺은 법인)를 포기한 것은 핵심 인물들에게 미칠 위험을 줄이고 VIE 주주의 이익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는 마윈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알리바바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마윈은 반드시 알리바바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살해 위험도 숨겨져 있다. 실제로 왕젠(王健) 전(前) 하이항(海航)그룹 회장이 사망하자 마윈이 곧바로 미국 증권거래소에 알리VIE 소유권 포기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3일, 왕젠은 프랑스에서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았다. 이에 앞서 4월, 그는 본인이 자청한 ‘중국경제주간(中國經濟周刊)’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하이항 그룹을 빼앗으려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난해 7월 27일, 알리바바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F 연례 보고서를 통해, 마윈과 셰스황(謝世煌)이 보유한 알리VIE 통제 지분을 형식적으로 파트너들에게 분배한다고 밝혔다. VIE 구조를 쉽게 설명하면 중국 기업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미국이나 홍콩에 상장한 후, 이 페이퍼컴퍼니가 각종 협약을 통해 중국 경영 실체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도록 하는 구조로, 해외 페이퍼컴퍼니(대체로 해외에 상장돼 있음)가 소유한 VIE가 바로 중국 자본 법인이다.

엄밀히 말해, 마윈은 ‘해외 상장주식’과 ‘중국 내 VIE 지배권’을 모두 가져야 온전히 자신의 재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VIE는 현재 아직 중국 공산당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언제든 중국 정부, 심지어 어느 지방정부나 법원이 VIE 구조가 불법이라고 선포하면, 마윈 손에 있는 수백억 달러의 알리바바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VIE 지배 지분은 중국 경영법인(VIE)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마윈이 VIE 지배권을 포기하는 것이 표면상으로는 상장돼 있는 지배 컴퍼니의 주식을 넘겨주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넘겨준 셈이다.

어떻게 해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마윈의 대답은 알리바바를 중국 공산당에 내어주는 것이었다.

민영기업가들, 태생적인 한계…’좋은 결말’ 맞으려면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민영기업 거물들이 당국에 의해 숙청당했다. 이어서 밍톈(明天)그룹, 안방(安邦)보험그룹, 화신(華信)에너지 등, 많은 민영기업이 중국 공산당에 넘어갔다. <2017 기업인 형사 리스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유죄를 선고받은 중국 사업가 중 민영 사업가가 80.6%를 차지한다.

이에 겁먹은 민영 사업가들은 해외 이민과 자산 이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빠르게 외화를 긴축하기 시작했고, 민영기업, 심지어 외국 기업까지 모두 정상 경영이나 이윤 송금조차 제한을 받고 있다. 민영 사업가들이 도망가려 해도 이미 늦은 셈이다.

리카싱, 판스이처럼 선견지명이 있는 행동파는 결국 소수이고, 그 외 대다수의 사업가는 도망가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창업가가 모델로 삼고 있는 중국 최고 부자 마윈은 중국 공산당 통치하에 있는 민영사업가들의 현실을 관측하는 풍향계가 됐다.

2017년 1월, 마윈은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5년 안에 미국에 일자리 1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에는 미·중 무역관계가 악화될 경우, “그 일자리 100만 개가 없어질 것”이라며 미국을 위협했다.

마윈이 무역전에서 미국을 공격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환심을 사려는 표현 중 하나였다. 알리바바를 위해 마윈은 당의 인정을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2010년, 그는 “국가가 원한다면 언제든 무상으로 즈푸바오(支付寶, 알리페이)를 국가에 바칠 수 있다”고 했고, 2014년에는 “알리바바는 스스로 국가 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도 했다. 마윈은 중국 공산당 ‘혁명 성지’인 옌안(延安)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옌안에서 매우 대단하고 성공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며 타오바오(淘寶)를 설립했다.

그러나 마윈은 그렇게 당에 충성을 표했음에도 중국 공산당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다시 말해 민영 사업가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중국 공산당이 정해놓은 ‘위치’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저 도마 위의 생선이자 권력가들의 사냥감일 뿐이다.

VIE를 내어주고 퇴임한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 권력층의 검은 손아귀에서 반드시 벗어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마윈처럼 똑똑한 사람이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정치적 백그라운드도 없는 그는 권력 늑대들이 득실거리는 중국 공산당 통치 아래에서 어떻게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마윈은 행동으로 답을 제시한 듯하다. 올 9월 중순의 알리바바 20주년 기념식에서 마윈은 펑크스타일 옷을 입고 록을 열창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0월 말에는 미국의 전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Floyd Mayweather)에게 “언제 어디서든 난 준비돼 있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인터넷과 언론은 마윈이 돈이 많다고 허세를 부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자유분방한 마윈이 어째서 해외로 나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지, 어째서 권투 챔피언을 도발할지언정 20년을 매달려온 사업엔 다시 손을 대지 않는지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보도를 회피했다.

마윈은 이전에 일부 표현을 통해 이미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결말을 밝힌 바 있다. 그는 2013년의 인터뷰에서 이미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다며 “중국 기업인들에겐 확실히 좋은 결말이 없다. 사실이 그렇고 역사가 그렇다”고 솔직히 말했다.

퇴임식에서도 그는 “알리바바는 마윈만의 것은 아니지만, 마윈은 영원히 알리바바의 소유일 것”이라고 했다. 알리바바가 마윈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됐기 때문에 이 말은 그의 진솔한 심정임이 분명하다.

마윈은 자신의 자산과 가족을 해외로 잘 빼돌릴 수는 있었지만, 자신은 도망가지 못했다. 가족과 재산, 그리고 한평생 이룬 사업을 위해 마윈은 인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윈은 돈은 있지만, 자유는 없다. 마윈이 그렇고, 판스이가 그렇고, 중국의 성공한 많은 사업가가 모두 그렇다.

사실 중국 기업인들에겐 살길이 있다. 리카싱의 용기를 본받아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산을 이전하고 몸을 옮겨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가장 좋은 활로는 중국 공산당과 결별하는 것이다. 지지기반이 약화된 중국 공산당은 외부 압력에 따라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 공산당이 해체되면 중국 기업인 역시 더는 도망갈 필요가 없다. 가장 편한 곳은 고향이다.

위 기사 내용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