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상화폐 시대’의 종말…채굴장비 반값에 중고시장 매물로

장민지
2021년 6월 24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24일

디지털 위안화 사용 확대를 추진 중인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업계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에 나서면서 중국 내 중고 그래픽카드, 채굴기, 하드 디스크 등 컴퓨터 부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 20일 새벽 쓰촨성 당국은 비트코인 채굴 지역의 전원 공급을 기습적으로 차단했다. 야안시, 간즈주, 아베이주 등 수력 발전이 풍부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26개 채굴 업체는 즉각 개점 휴업 상태에 처했다.

앞서 중국 온라인에는 쓰촨성 당국이 지방정부에 가상화폐 체굴 현황을 조사해 중단시키도록 통지했으며 25일까지 관련 보고를 올리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어 쓰촨성 여러 지역에서 허위로 등록된 채굴장 폐쇄 소식이 이어졌다.

로이터통신은 21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가상화폐 거래 문제와 관련해 일부 은행 및 지급 기관과 예약면담을 진행했으며, 가상화폐 거래소 및 장외 거래소의 계좌를 철저히 조사해 자금 유통을 차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예약면담(웨탄)은 상부 기관이 하급 기관 관계자와 약속을 하고 만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문책성 만남을 뜻한다. 무시무시하기로 악명이 높아 웨탄 지시를 받고 자살하는 당 간부와 관리들까지 나온다.

예약면담 지시를 받은 금융기관은 공상은행, 농업은행, 건설은행, 우정저축은행(PSBC), 흥업은행, 알리페이 등이 포함됐다. 이 중 건설은행과 공상은행은 은행 계좌를 통해 가상화폐 관련 거래를 할 수 없다고 공시한 바 있다.

각종 부정적인 뉴스가 이어지면서 중국의 가상화폐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했다. 21일까지 비트코인, 이더리움, 도지코인의 가격은 각각 7.54%, 8.83%, 8.52% 하락했다.

채굴 관련 설비의 가격도 대폭 하락했다. 중국 TF차이징에 따르면, 이날 그래픽 카드 도매상을 인용해 ‘조텍(ZOTAC) 3070’ 그래픽 카드의 가격이 7100위안(약 124만원)으로 4월 최고점이었던 1만1000위안(약 192만원)에서 크게 떨어졌다.

또 다른 그래픽 카드 유통 업자 역시 현재 ‘칼라풀 3060’의 가격은 5000위안(약 87만원)으로 가장 비쌀 때보다 2000위안(약 34만원) 넘게 가격이 빠졌다고 밝혔다.

중국 신장 지역과 함께 가상화폐 인기 채굴지였던 쓰촨에서는 이미 다수의 채굴업체들이 문을 닫았으며 남은 업체도 그래픽 카드와 채굴기를 대량으로 저가 매도 중이다.

쓰촨성의 한 채굴업자는 “당국이 채굴업체들을 샅샅이 뒤져 문을 닫게 하고 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업체들 대부분이 페쇄됐다. 우리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채굴장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한 업체 직원 10여 명이 열심히 채굴장비를 시설 바깥으로 옮기는 동영상이 떠돌았다. 채굴장비가 설치됐던 선반은 텅 비었고 영상에는 ‘야반 도주’라는 자막이 달렸다. 당국의 단속을 피해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업체는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채굴장도 된서리를 맞았다. 개인 채굴장을 운영한다는 장야오(张瑶)는 커뮤니티에 “한 달 전 채굴기 몇 대를 구매해 집에서 채굴하려 했지만, 전력소모가 너무 많아 전원이 차단되기 일쑤였다. 아예 수력발전소를 전세 내 작은 채굴장을 차리고 30대를 설치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단속이 강화돼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대당 4500위안(약 78만원) 주고 구매했는데 2000위안 정도에 내놨다. 총 12만위안(약 2100만원) 주고 산 그래픽 카드도 일괄 50% 가격에 내놨다”고 썼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장야오가 내놓은 매물은 아직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상태다.

하드 디스크 가격도 하락세다. 하드 디스크 구매 관련 커뮤니티에서 씨게이트 8T 하드 디스크의 가격은 한때 2600위안(약 45만원)을 호가했지만, 현재는 1000위안(약 17만원) 이하에 거래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시대가 끝났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채굴 관련 커뮤니티에는 지난 21일 공유된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채굴업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캡처한 이 사진에는 “어제 청두에서 10시간 정도 떨어진 쓰촨성 아베이의 깊은 산 속에서 친구가 중국의 마지막 비트코인 채굴기가 꺼지는 과정을 목격했다. 전원 버튼을 모두 누른 후에 울려 퍼지던 기계소리는 돌연 조용해졌다. 나지막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 함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시대는 끝났다”는 글이 담겼다.

중국 채굴 관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게시물. 채굴장 철거 장면이 담겼다. | 화면 캡처

중국 당국은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를 유발해 정상적인 금융 질서를 해치고, 자산의 불법 해외 이전, 돈세탁 등 범죄에 이용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디지털 위안화’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가상화폐인 디지털 위안화는 다른 가상화폐가 갖는 익명성이 전혀 없으며 거래 내역과 소지자 등 모든 정보가 중앙에 수집된다. 사용자 간에는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인민은행은 누가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훤히 알게 된다.

이 밖에도 최근 중국의 전력난이 심화되는 것도 가상화폐 채굴 제한 조치의 주된 이유로 지목된다.

현재 중국 남부지역은 이상 고온과 가뭄이 겹쳐, 경제활동 중심지인 광둥성의 일부 도시에서는 공장 가동을 1주일에 4~5일로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가뭄으로 수력 발전량이 줄어든 데다 더위에 냉방기 가동이 시작돼 전력 수요가 많아졌고, 화력발전소들은 당국이 호주에 대한 경제 보복 차원에서 내린 석탄 수입 금지 조치의 여파로 가동 일수가 오히려 감소했다.

한편, 홍콩경제일보는 쓰촨성의 채굴업자들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미 CNBC는 지난 18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시장이 “마이애미의 대문은 중국 비트코인 채굴업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