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血의 재난, 매혈자의 비극 ①

2010년 1월 4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11일

에이즈 환자 대부분이 마약중독자나 성매매자, 성이 문란한 사람들인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의 에이즈 환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피를 판 가난한 농민들이다. 그들은 병원에서 수혈을 받던 중 에이즈에 걸렸다. 1988년 허베이성 담당의사였던 쑨융더(孫永德)는 혈액은행에 보관 중인 혈액이 이미 에이즈에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이는 90년대 초 중국정부가 일으킨 ‘매혈경제’의 참혹한 결과였다.

중국 민간 에이즈 전문가 가오야오제(高耀潔) 씨는 이를 ‘중국정부의 독직(瀆職-부정부패)이 불러온 사상 유례 없는 공중위생의 위기’라고 비판했다.

“주민 여러분,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현 방역센터와 공립병원 수혈센터로 오셔서 피를 파세요. 매일 50위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거래가 없겠죠?”

이는 95년 허난성의 한 작은 현 현장이 농민들에게 매혈로 돈을 벌라고 권유한 연설이다. 매혈을 통한 돈벌이는 중국 농촌에서 매혈이 성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으며, 중공정부가 매혈경제를 소리 높여 외쳤던 이유이기도 했다.

매혈 독려한 정부

주민 3천여 명이 사는 허난성의 작은 마을 솽먀오촌은 정부 주도로 주민 2천여 명이 매혈에 참여했고, 그 중 7백여 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솽먀오촌에서 40여 년을 살아온 리샤(李霞) 씨도 매혈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 중 한 명이다.

리 씨는 신기원과의 인터뷰에서 매혈은 93, 94, 95년도에 성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농민들은 세금과 공물, 산아제한 위반 벌금 등에 시달렸으며, 더욱이 사람에 비해 땅이 부족했다. 정부는 매일 TV와 라디오, 전단 등을 통해 매혈할 것을 강요했고, 농사를 마친 농민들은 매혈센터에 가서 피를 뽑았다. 당시 8백cc를 뽑으면 45위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리 씨는 국가 위생부가 92, 93년에 혈장매매를 금지했으나, 현지 관리들이 사설 매혈센터를 차려 혈장매매를 계속 했다고 회상했다. “96년 초가 돼서야 정부가 위법센터를 모두 중지시켰다. 우리 현의 매혈센터도 문을 닫게 되어 사람들은 더는 헌혈을 하지 않았다.”

매혈센터의 열악한 위생

허난성 둥관촌에 사는 에이즈환자 자오융(趙勇) 씨는 과거 자신이 피를 팔던 매혈센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81년 군대에서 퇴역한 그는 무역국에서 일하다 개인사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해 도산하고 말았다.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매혈을 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살 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죠.”

당시 허난 핑딩산 군부대에 매혈센터가 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152병원 매혈센터였다. 그곳에서는 기본적인 단백질검사조차 실시하지 않았고, 하루에 매혈하는 사람이 4,5백 명 정도였다. 매혈자들은 새벽 3시 반부터 접수를 할 수 있었고, 접수비는 5위안(850원)이었다.

허난성 타이캉현 방역센터 내 매혈센터에는 하루 천여 명이 매혈접수를 하였고, 90% 이상이 적합판정을 받았다.

자오 씨는 95년에 자신의 현에 직접 매혈센터를 차렸다. 그곳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고, 매혈자에게 적혈구를 다시 수혈할 때, 혈액형이 같은 다른 사람의 적혈구가 마구 섞인 채 수혈했다. 매혈센터는 1년 여 동안 계속됐고, 96년 하반기가 돼서야 문을 닫았다.

리샤 씨는 94, 95년 매혈 열풍이 불었을 때, 3개의 매혈센터에서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은 채 피를 뽑았다고 폭로했다.

비정상적인 사망자 급증은 매혈 때문

“죽음의 그림자가 피를 판 농민들에게 닥치자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리샤 씨가 술회했다. 99년부터 솽먀오촌에 비정상적인 죽음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사망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00년까지 사망률이 너무나 높았고 사망자 중 99%가 매혈한 사람들이었다.

매혈을 많이 한 사람들은 자비를 들여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일 한두 명씩 죽어나갔고, 어떤 때는 더 많이 죽기도 했다. 2002년 당시 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2백 명이 넘었고, 사람들은 위생국으로 달려가 대책을 요구했다.

허난성 둥관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99년 하반기부터 에이즈 환자가 죽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매일 설사와 미열에 시달리고 몸이 천천히 말라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발병한 지 10일이 채 안돼 죽었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나갔다. 마을에는 총 7백 호가 살고 있었는데, 35호 이상이 에이즈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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