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브이 포 벤데타’ 연락 두절…소식통 “당국에 체포, 심문 중”

2021년 6월 17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17일

베이징 거주 추정되는 익명의 IT 전문가로 수년간 반공 활동
중국인 수백만 명에게 방화벽 우회법 알려주고 프로그램까지
홍콩 시위, 톈안먼 등 상세히 정리한 게시물로 중국인 계몽

중국 내부에서 반(反)공산당 활동을 펼치던 IT전문가가 최근 당국에 체포돼 혹독한 심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동안 구글 블로그에 중국 내부의 은밀한 소식을 폭로하고, 중국의 방화벽을 우회해 외국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온 익명의 블로거 ‘프로그램싱크’(Programthink·이하 싱크)가 최근 당국에 붙잡혔다.

이 소식통은 ‘싱크’가 밤낮으로 혹독한 심문을 당하고 있으며, 곧 유죄 판결과 함께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여론 다지기에 한창인 중국 공산당이 저항심을 지닌 청년층에 영향력이 큰 ‘싱크’를 일벌백계로 삼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자국 내 오디션 프로그램 대부분을 중단시키며 시청자 투표를 금지했다. 유료 투표 등 지나친 상업성을 지적했지만, 전문가들은 창당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거나 대중을 매료하는 방송을 퇴출시킨다는 분석을 내놨다.

‘싱크’의 블로그도 지난달 9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깃허브(GitHub), 트위터 등 커뮤니티나 소셜 계정도 침묵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 반공산당 활동을 벌여온 ‘싱크’는 앞서 “내가 모든 플랫폼에서 14일 이상 활동이 없으면 당국에 의해 체포됐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의미”라고 밝힌 바 있다.

‘싱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자신을 “당국에 먹칠하고 세뇌를 폭로하고 방화벽 우회 보급에 열심인 IT덕후(IT宅)”로 소개했다. 또한 종종 테크 관련 글을 쓰고 괜찮은 서적도 소개한다며 블로그 글을 공유했다.

‘싱크’가 운영하던 구글 블로그와 트위터는 모두 중국에서 접속이 차단됐지만, 우회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접속이 가능하다. 중국계 미국인들이 결성한 ‘글로벌네트워크자유연맹’에서 제공하는 방화벽 돌파프로그램인 ‘둥타이왕(动态网·동태망)’이 대표적이다.

중국 베이징의 IT전문가로 추정되는 블로거 ‘프로그램싱크’가 운영하던 블로그 | 화면 캡처

수많은 ‘민감’ 사안을 객관적 입장에서 기록

‘싱크’는 지난 수년간 당국의 추적을 따돌릴 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춘 IT전문가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그가 37~50세의 남성으로 추정되며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IT업계 종사자라는 점이다. 그는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거의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을 포함해 온라인 결제를 극도로 기피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싱크’의 블로그는 지난 2009년 1월 15일 개설됐다. 처음에는 IT 지식과 관련된 글을 작성했으며, 주제는 점차 사이버 보안, 방화벽 우회로 확대됐다. 현재 그의 블로그에는 중국의 세뇌교육과 공산당에 관한 부정적 정보와 시사·정치논평 등 700여 편의 글이 남겨져 있다.

그는 2010~2011년 발생한 첸윈후이(錢雲會·당시 53) 촌장 사망사건과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정치·시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첸 촌장은 저장성 러칭시의 한 마을에 살던 인물로, 2010년 12월 대형 트력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들은 사고 현장 사진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지적하며 사고사를 위장한 고의적 살인이라고 추정했다.

이후 첸 촌장이 건장한 남성들에게 포박당한 뒤 트럭에 깔렸다는 증언이 나왔고, 그가 토지 보상 문제로 국영기업인 저장성 에너지그룹을 상대로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건은 단순 사고사로 결론 나며 종결됐다.

이 사건은 부당한 사건이 명백하지만, 당시 네티즌에게는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공산당 정권 앞에서 묵살당하는 뼈저린 현실과 좌절감을 안긴 경험으로 남았다.

‘싱크’는 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 민중이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후 만리장성 방화벽에 갇혀 관영언론이 던져주는 검열된 사실밖에 접할 수 없는 중국인들에게 외국 사이트에 접속할 길을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는 방화벽을 넘지 못한 중국인들을 위해 ‘오프라인 브라우저’와 ‘메일 구독’ 서비스를 제공했다. ‘오프라인 브라우저’는 사이트를 전자책 포맷(EPUB, CHM)으로 저장해 모바일이나 태블릿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읽어볼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 혹은 뉴스사이트를 하나의 전자책 형태로 저장해 오프라인으로 브라우저를 통해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중국 언론이 흑색선전에 열중했던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의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서술로 전달하려 애썼다. 또한 젊은 네티즌을 위해 ‘톈안먼 광장의 대학살 회고 시리즈’를 연재했다. 20년 전 일을 요즘 세대에게 전달해 공산당의 실체를 알리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또한 파나마 문서와 공산당 고위층 가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중국 고위층에 만연한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밝혀내는 게시물도 작성했다.

아울러 그의 블로그에 방문하고 구독신청을 한 수백만 명에게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공산당의 세뇌 선전에서 벗어나 익명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독재에 항거할 수 있는 방도을 열어줬다.

이는 혼자서 독재정권의 민중 통제 음모에 맞서는 인물 가이 포크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에 비견할 만하다.

그렇다고 ‘싱크’는 반체제 활동에만 매몰되지도 않았다. 그는 때때로 최신 보안 이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적인 리뷰를 더해 구독자들이 중국의 전반적인 인터넷 동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역시 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믿을 만한 경로를 통해 당국이 ‘프로그램싱크’를 체포했으며 가혹하게 심문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당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고 밝혔다.

공산주의 중국을 폭로하는 활동을 펼쳐온 중국인 쉬(許)씨는 “2013년에 우연히 ‘싱크’의 글을 접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특히 ‘톈안먼 시리즈’와 ‘송환법 반대 시리즈’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공산당을 맹신하다가 점차 깨어나 자유민주를 동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내부에서 반공산당 활동을 펼치던 IT전문가 ‘싱크’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다양한 사람들이 구조활동에 나서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중국 인권보호 단체 ‘휴매니태리안 차이나(Humanitarian China·人道中国)의 저우펑숴 대표는 “‘싱크’는 중국에 끝까지 남아 항거한 전설적 인물”이라며 “중국인을 일깨우고 공산당 독재 정권을 폭로해왔다”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저우 대표는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 학생 지도자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서 투자자 겸 중국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우 대표에 따르면, 다수의 인권단체가 서방 정부 관계자,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각국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전개해 중국 공안당국을 압박하고 ‘싱크’를 지원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나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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