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임금님 만나러 해삼·전복 들고 한양 찾아온 경상도 농부에게 생긴 일

윤승화
2020년 9월 23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23일

누리꾼들 사이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는 사연이 하나 있다. 얼마나 뒤늦게냐면, 무려 500년도 더 된 일이다.

15세기, 조선 왕 성종은 장난치기 좋아하던 왕이었다.

어느 날 밤, 성종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운종가(지금의 서울 종로)로 잠행을 나섰다.

중신들이 위험하니 가지 마시라 말려도 봤으나, 성종은 “백성이 잘살고 못 사는 것을 내 눈으로 친히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날 성종이 청계천 다리 위를 지나던 때였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고 행색이 초라한 사람 한 명이 다리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성종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누구신데 예서 잠을 청하시오?”

“예, 저는 경상도 흥해 땅에 사는 김희동이올시다”

잠에서 깨어 반갑게 대답한 시골 사람 김씨는 이어 자신을 소개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관상’

“마흔이 넘도록 어진 임금님이 계시다는 한양 구경을 못 했지요.

오래 벼르기만 하다가 간신히 노자를 구해 가지고 나섰는데 수십 일 만에 겨우 당도하여 누구에게 물으니까 예가 서울이라 하잖은가요.

이제 막 저녁은 사 먹었지만 잘 곳을 찾지 못해 여기서 밤을 새우던 중이오.

댁은 뉘시기에 이 밤중에 나다니시오? 아, 혹시 임금님이 계신 집을 아시거든 좀 가르쳐 주구려”

순박한 백성을 만난 성종은 시치미를 뚝 떼고 “나는 이 첨지라는 사람이오. 임금이 있는 곳을 알기는 하오만, 만일 알려주면 임금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하오?”라고 물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픽사베이

김씨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소?

우리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님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걱정 없이 잘 산다지 않소. 그러니 임금님 한번 뵈옵고 돌아가자는 거지요.

빈손으로 뵙긴 뭣할 것 같아 우리 고장에서 나는 전복이랑 해삼 말린 것을 좀 짊어지고 왔지요. 임금님께 이것을 드려 한 끼 반찬이나 합시사 하구요”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관상’

멀찌감치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들이 낯선 사람인 김씨를 보고 달려왔다.

성종은 호위무사들에게 귀띔한 뒤 “이 자들을 따라가면 오늘 밤 지낼 곳도 있을 터이고 임금을 만날 수 있을 거요”라고 일렀다.

김씨는 “서울 양반은 참 인심도 좋구만!”이라고 좋아하며 뒤를 따랐다.

이튿날 성종은 또 한 번 평상복 차림을 하고 김씨가 묵고 있는 집에 들렀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김씨는 “이 첨지는 참말 좋은 사람이외다. 처음 보는 시골 사람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라고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임금님을 뵈올 수 없다면 그냥 돌아갈 수밖에요. 이왕 온 길이니 임금님께 길이 닿으면 이것이나 전해주시지요”하고는 해삼과 전복을 싼 보퉁이를 내놓았다.

성종은 웃음을 꾹 참으며 “내가 힘써볼 테니 하룻밤만 더 묵고 계시오. 당신이 직접 갖다 바쳐도 좋지 않겠소”라고 대답한 뒤 집을 떠났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김씨는 관복 한 벌을 받았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관상’

“그래, 이 첨지는 어디로 갔는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영문도 모른 채 옷을 갈아입고, 한 손에는 해삼과 전복이 든 짐을 들고 대궐로 따라갔다.

잠시 뒤, 대전에 들어선 김씨는 내관이 시키는 대로 세 번 절하고 엎드렸다.

그때 저 높이 있는 용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임금이다. 네가 짐을 보러 수백 리 길을 왔다지. 겁내지 말고 쳐다보아라”

김씨가 고개를 겨우 들고 용상에 앉은 임금을 쳐다보니 바로 이틀 동안이나 마주 앉아 대하던 이 첨지가 거기 앉아 있었다.

“엥, 이 첨지가 어떻게 여기 와 있소?”

김씨는 해맑게 물었다가, 매서운 주변 신하들의 눈초리를 받고서야 깨달았다. 이 첨지가 바로 임금님이셨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관상’

김씨는 몸 둘 바를 모르고 벌벌 떨다가 당황한 나머지 가지고 온 보따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성종은 자비로운 얼굴로 보따리를 주우라고 말했다.

“저 해삼과 전복은 희동이 나를 위해 먼 길을 걸어 갖고 온 것이니 내 고맙게 먹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성종은 김씨에게 후한 상금을 내려 금의환항하게 하였다. 김씨는 걸어서 올라올 때와는 달리, 말을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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