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특집]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 완전 형태로 시작… 제헌절 기념해야”

자유 민주 공화 가치 조화 이뤄야
최창근
2022년 07월 16일 오후 1:25 업데이트: 2022년 07월 17일 오후 1:13

제헌절과 대한민국의 의미에 대해서 김주성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부원장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자유민주공화국 정부로서 ‘혁명적 사건’이라 정의했다. 아울러 한국인의 법 관념을 바꾸어 놓은 모멘텀이라고도 했다.

김주성 부원장은 정치학자이다. 정치사상·철학이이 주 연구분야이다. 한국외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거쳐 미국 텍사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교원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활동했다. 한국정치철학연구회 창립 회장, 한국동양정치사상학회 회장, 한국정치사상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고, 한국교원대 총장을 역임했고 민간 싱크탱크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정치학자로서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해 오고 있는 김주성 부원장을 만나 제헌절과 대한민국 헌법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의의는 무엇인가요?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 민주 공화국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입니다. 1907년 성립한 신민회(新民會)에서 ‘민주공화국 정체’가 구상됐습니다. 그러다 41년의 세월이 흘러 자유민주공화국 성립으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김주성 부원장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거대한 혁명이라고도 했다. “봉건 왕조인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3년의 미 군정(軍政)을 거쳐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죠. 한국 역사 전체를 볼 때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해 조선을 건국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죠. 혁명으로 치면 이렇게 큰 혁명이 없습니다. 한국인이 봉건 왕조하 신민(臣民), 일본제국 2등 신민으로 살다 근대 국가 시민(市民)으로 거듭난 일입니다. 이제까지 통치의 객체(客體)였던 국민이 주체(主體)가 된 것이죠.”

입헌군주정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유민주공화국이 건국됐습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고 스스로 광무(光武)황제라 칭합니다. 개화파들은 입헌군주제로 바꾸려 하였으나 고종이 거부하고 전제 정치를 강화하죠. 입헙군주제를 주장하던 사람들을 역적으로 단죄하기도 하고요. 이 속에서 개화파들이 ‘군주제로는 더 이상 안된다’고 자각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공화정(共和政)을 비전으로 제시하고요. 여기에 미국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서구 문명을 이해하고 한국에 적용시키려 노력한 것이죠.” 김주성 부원장은 이승만, 안창호, 김성수 등의 깨우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이 지니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신생 대한민국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 문명을 가르쳤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교육이 시작된 것이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위정자나 식자층부터 자유민주주의의 개념과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이승만 대통령 몰락을 부른 4·19혁명을 촉발합니다.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죠. 이승만 대통령은 ‘교육대통령’이었습니다. 6년 초등교육 의무교육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국민의 95%가 교육 혜택을 받았고요. 당시 대학생 수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토지개혁을 하고 6·25선거 중에도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무엇보다 ‘보통선거권’을 확립한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미국도 1920년에 확립되고 스위스도 1971년에 확립된 것을 대한민국에서는 실시한 것이죠. 달리 말해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때부터 ‘완성된 포맷’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에 문제기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왜 처음부터 완벽하게 민주주의를 구현하지 못했나?’라고 평가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조금 너그럽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주의가 완성됐습니다. 그 성과를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으로 세계 만방에 보여 주었고요.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가 무너지는 것에도 대한민국은 기여했습니다. 다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죠.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은 기적입니다. 결과적으로 194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귀중한 경험입니다. 성공한 역사이기도 하고요. 일찍이 우리를 식민지배 했던 일본보다도 정치·경제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평가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한국에서는 민주주주의가 잘못 해석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입니다. 이를 두고 자의적으로 과잉 해석하죠.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고요. 더하여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니 선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선하다는 것은 인치론자들의 사고입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고대 그리스 사례만 드는데, 로마 공화정도 보아야 합니다. 공화정은 권력의 부정적인 속성을 간파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죠. 미국을 비롯한 현대 민주공화국은 로마를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미국은 ‘리퍼블릭(republic)’을 우선시했습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1917년 이후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에 의한 지배 혹은 다수의 뜻에 의한 지배입니다. 다만 이럴 경우 포퓰리즘 혹은 중우(衆愚) 정치로 나아갈 위험이 존재합니다.

“결국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 문제입니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요구와 정치권이 이익이 겹칠 때 확산됩니다. 포퓰리스트들은 귀신같이 대중의 요구를 알아채죠. 결국 ‘다수가 원하는 대로 가자’는 것인데, 이들은 법을 넘어서려 하고 헌법도 부정합니다. 포퓰리즘의 무서운 점이죠.”

역대 대한민국 헌법 중 가장 이상적인 헌정 체제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제3공화국 헌법이 대통령 중심제에 가장 근접했다고 봅니다.”라고 평가한 김주성 부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3번의 ‘쿠데타’를 했으나 이는 ‘혁명’으로 연결됐다고 했다. “첫 번째 쿠데타는 1961년 5·16입니다. 이후 군정을 거쳐 민정으로 이행했죠. 1963년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즉 6·3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내렸죠. 그러다 1972년 유신을 단행하였습니다.”

김주성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부원장 | 이유정 / 에포크타임스.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를 혁명이라 평가하는 이유는요?

“현대사에서 성공한 쿠데타의 사례 3가지가 있습니다. 튀르키예(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의 튀르키에 공화정 혁명, 나세르(Gamal Abdel Nasser)의 이집트 혁명 그리고 박정희의 5·16이죠. 아타튀르크는 국부(國父)로 존경받지만 100% 성공한 혁명이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나세르도 이후 사회주의로 경도됐고요.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과오도 있지만 건국-산업화-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선포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리더십이 아니면 한국이 산업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판단해서 ‘독재’를 한 것이죠. 만약 3선 연임 개헌도 안 하고 유신도 안했으면 국부로 존경받았겠죠.”

법치 측면에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정의의 여신’은 양손에 칼과 저울을 가지고 있죠. 칼은 권력을, 저울은 형평을 상징합니다. 한자어로 ‘법(法)’ 물 수(水)와 갈 거(去)가 결합돼 있습니다. 법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이치를 내포했습니다. 전서체(篆書體)에서 ‘법(灋)’에는 ‘해치 (獬豸)’가 들어가 있죠. 해치는 죄인을 물에 빠트려 죽였다던 전설상의 동물입니다. 즉 동양에서 법은 형벌 혹은 형법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서양에서 법은 라틴어 ‘렉스(Lex)’인데 계약의 의미를 지닙니다. 계약이란 당사자 간 합의가 전제가 된 것이죠. 헌법이 생기고 난 후부터 대한민국에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시민사회를 국가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 근대 헌법인데 대한민국에서도 실현된 것이죠. 이를 통하여 법 관념도 바뀌고요.”

현행 제6공화국 헌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87년 체제’라고 하는데 2004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 되면서 완성됐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타락상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고요. 민주주의를 하자고 하면서 부정부패하고 북한 인권 문제 무시하고 했었죠.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불과 0.73%포인트 차이기는 해도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이들을 폐족(廢族)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87년 체제 즉 제6공화국 헌정체제에 대해서 피로감이 누적된 것은 사실입니다. 전임 대통령을 끊임없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고 연이서 수인(囚人) 신세로 만드는 87년 체제는 손을 봐야 합니다.”

3권 분립 헌정체제를 가진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혹은 입법 독재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나 일반 국민의 ‘의식’ 문제라고 봅니다. 법을 제정하고 시행함에 있어서 상호존중, 제도적 자제 등이 필요한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성문(成文)화되지는 않은 불문(不文) 관습이나 관례를 존중하는 전통이 확립되어야 헌정 체제가 지켜지는데 한국은 이 부분에서 취약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김주성 부원장은 구체적으로 다음 예를 들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말에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절차를 피해 가기 위해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탈당시키는 등의 ‘꼼수’를 썼습니다. 법안 표결 과정에서는 원내 다수 정당의 힘을 악용하고요. 상식을 존중하고 제도적 자제를 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헌을 한다면 어떤 요소를 중요시해야 하나요?

“일단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손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국회의원의 국무위원(각료) 겸직도 막아야 하고요. 국회도 상·하 양원제로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국무총리제도 폐지하고 부통령제를 신설해야 하고요. 상원을 신설해서 임기를 6년으로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자연 정치적인 연륜이 있는 사람이 상원의원이 될 것이고 그중에서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겠죠. 미국 ‘상원(Senate)’은 원로원(元老院)의 라틴어 ‘세나투스(Senatus)’에서 유례했잖아요. 상원이 보다 원숙하게 국가 차원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라며 개헌 방향성을 제시한 김주성 부원장은 권력이 침전(沈澱)하고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마 공화정에서 집정관(執政官)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의 임기는 1년 단위였습니다. 복수로 임명했고요.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런한 전통을 지켜져 공직 임기가 1년이 기본이었습니다. 임기가 짧고 권력 순환이 빨라야 국민의 뜻을 반영하기가 쉬워집니다. 그 점에서 미국 연방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죠.” 그는 사법부 독립도 중요하다고 했다. “사법부 우위 원칙이 확립된 미국은 연방대법관 종신제로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사법부 독립성 보장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법원, 검찰, 기획재정부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반항하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갈등이 지속됐는데 공화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추후 개정 헌법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요?

“헌법과 법령은 투명해야 합니다. 누구나 내용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헌법(憲法)의 경우 ‘헌(憲)’자는 ‘내걸다’ ‘공포하다’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헌법은 본디 그러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기본법전이 경국대전(經國大典)이잖아요. 문제는 한자로 쓰여진 법률 내용을 일반 국민 다수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법령 내용을 백성에게 공개하지 않고 벌을 줄 때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법을 알지 못하게 한 것이죠. 반면 로마의 기본법인 12표법(Leges Duodecim Tabularum)은 동판에 새겨서 공포하는 등 누구나 알 수 있게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암기하도록 했다고도 하잖아요. 무엇보다 ‘채무를 인정한 자 또는 상환하라는 판결을 받은 자는 3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도 상환하지 않을 경우 채권자는 그 사람을 재판에 데려 올 수 있다.’라고 규정하는 등 법이 구체적입니다. 절차를 규정해 두었죠. 즉 헌법이나 법령은 모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제헌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3년 후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광복절(해방절)과 건국절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죠. 개인적으로 7월 17일 헌법이 제정됐으니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 의미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 7월 17일을 제헌절보다는 ‘건국절’로 바꿔 부르거나 제헌의 의미를 건국에서 찾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