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승 변호사에게, 고령화는 저주가 아니다

오세라비
2021년 9월 6일
업데이트: 2021년 9월 6일

남혐, 여혐 세태, 노인혐오로 번지나

필자는 극단적으로 치닫는 남성 혐오적 페미니즘 운동이 장차 ‘노인혐오’로 퍼져나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자주 한다. 왜냐하면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혐오, 여성혐오라는 성별 간의 혐오를 유행병처럼 일으켰다. 이것은 세대 간에 혐오라는 다른 형태의 혐오로 변이되어 진행될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일으킨 극심한 남녀갈등은 우리 사회 전체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젊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성 갈등은 언제든 무슨 계기로 폭발할지 모른다. 성별 간 혐오의 소용돌이는 돌고 돌아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혐오의 방향은 사회의 진정한 약자인 노인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사건 하나! 지난달 25일 SNS를 달군 문제의 영상이 바로 전형적인 노인혐오 사건이다. 10대 고등학생인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은 60대 여성노인에게 “담배를 사 오라”며 협박과 폭행을 했다. 여성노인이 자리를 피하자 10대들은 쫓아가 발로 차며 괴롭혔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같은 무리의 학생은 웃음을 터트리며 재미있어했다. 지난달 4월에도 20대 청년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70대 남성노인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이 보여주는 시사점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약 3~4년 후면 65세 이상의 노인이 총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구 고령화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령화라 해서 예전의 고령 나이와는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이제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 나이대와 비교해 10~15년은 젊다. 현대인은 어느 시기보다 수명이 길어졌다. 의학의 발달은 노화를 늦추고, 향후 미래 세대는 더욱 오래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100세가 넘은 철학자 김형석

인구 고령화가 필연적이라면 오래 산다는 것은 끔찍한 부담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젊음이라는 시절은 날아가는 화살처럼 빨라서 우리 모두는 늙음을 향해 간다. 그러니 늙음에 대한 강박증을 가질 필요도 없다. 노년에 다다른 한 인간의 축적된 문화적 자산, 경험과 지혜를 사회가 어떻게 신, 구세대간에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다. 장수는 재앙이지 축복이 아니라며 고령화를 저주한다면 무엇보다 개개인에게도 좋지 않다.

사람이 100세를 넘겨 한 세기를 산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깝다. 더구나 100세가 넘어도 방송과 강연, 집필을 한다는 것은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축복이다. 올해로 101세가 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가 알기로 김 교수는 100세가 지난 후에도 5권 가량 신간을 출간한 것으로 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철학이 융성한 시대였다. 그때는 누구나 철학 책 한 권쯤은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 소위 문화인이요 교양인이었다. 또 그렇게 되고자 다들 노력했다.

그때 그 시절 철학자로서 김 교수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당시 출간된 철학 에세이 ‘고독이라는 병’은 당대 젊은이들을 사색과 철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우리나라 1세대 철학자로서 김 교수는 평생을 학문을 탐구하고 이성의 힘을 믿으며 윤리적 가치에 대해 천착했다. 필자는 김 교수가 100세 기념으로 2019년에 출간한 ‘백년을 살아보니’와 또 다른 책 한 권은 순전히 존중의 마음을 담아 구매해서 읽었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 온 노학자의 경륜과 경험과 지성을 느껴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김 교수의 책에서 대단한 삶의 에스프리를 기대했다 읽고는 다소 실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교수가 펴낸 저서는 100세가 가까워질수록 매우 맑고 담담하게 인간의 삶과 정신, 이성에 대해 말한다. 굳이 음식에 비유하자면 평양냉면의 슴슴한 국물 맛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김 교수는 1920년생으로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자극적인 언어는 배제하고 김 교수가 평생을 추구한 인간정신과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인생관에 담아 순하고 조용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래서 김 교수의 저서는 천천히 읽으며 음미할수록 깊이가 있다.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인간이 가장 성숙한 시기는 60세~75세까지라고 한다. 100세 즈음에 삶을 되돌아보니 60세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사실 이 대목은 필자와 일치하는 터라 크게 공감했다. 김 교수는 75세까지도 정신적 성장은 노력에 따라 계속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들려주는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한다는 생각에도 일리가 있고, 성격과 사람됨이 일찍 결정된다는 생각에도 잘못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도 공정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래적 존재성은 일찍 형성되나 인생의 가치는 계속 개선되며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정 변호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

이 얘기를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런 김 교수를 향해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여러 차례 퍼부은 정철승 변호사다. 정 변호사는 전형적인 진보좌파 정치성향으로 SNS상에서 메가 인플루언서로 유명하며, 최근에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논쟁적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과격할 정도로 반보수적이며, 보수언론, 보수 정치에 대한 증오감으로 똘똘 뭉친 인사다. 이제 막 50대 진입한 그는 지난 4월에 있었던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열린민주당 김진애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정 변호사가 김 교수를 비난한 직접적인 이유는 일본 우익 언론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 변호사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도 지난 8월 13일자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했었다.

정 변호사가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썼던 문제의 발언이다.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일 게다. 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하던 짓을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현상이라면 딱한 일이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제는 저 어르신 좀 누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 자녀들이나 손자들 신경 좀 쓰시길”이란 조롱 섞인 당부까지 곁들였다.

정철승 변호사와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 | 페이스북 캡처

정 변호사의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입장을 떠나 나쁜 노인혐오요 모욕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일 페이스북에서 노인 수명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은 적정한 수명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고대 로마 귀족 남성들은 더 이상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다는 식으로 쓰고 있다. 이 말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나쳤는지 현재 이 포스팅은 삭제된 상태다. 정 변호사의 말에 담긴 의미를 굳이 깊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해 오래 산다는 것은 민폐라는 뜻이다.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다를 때는 더욱 그러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고 해서 100세를 살아 온 노 교수의 삶을 간단히 폄훼해서 될 일인가. 정 변호사처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선과 악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는 것도 부족해 장수 자체를 무슨 저주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 오히려 100세가 지나도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비결, 즉 건강관리와 삶의 자세, 멈추지 않는 학문연구와 집필 능력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는 것이 옳다.

정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말도 했다. “평생 안심입명만을 좇은 안온한 삶을 자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김형석 교수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60여 년 동안 정권의 반민주, 반인권을 비판한 적이 없었는데, 100세를 넘긴 근래부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작심하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발언에 대한 반박은 김 교수의 말을 빌리는 게 좋겠다. “오래 전 나 자신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야당 지도자들의 주장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내 판단이 옳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있다. 진실을 모르면서 가치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면서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못 된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김형석 지음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중에서)

그렇다. 지금 정 변호사에게 필요한 일은 침묵과 노인에 대한 존중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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