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부 비판했다 파면된 한민호 전 국장, 2심 승소

“공무원은 자유롭게 국가 정책 토론할 수 있어야”
이윤정
2022년 04월 4일 오후 8:48 업데이트: 2022년 04월 4일 오후 10:58

페이스북서 文 정부 공개 비판했다 파면
“공무원도 불법·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어야”
“정책 발언 위한 공직사회 기풍 만들어주기를”
“나라 망하는 건 순식간…애국은 나를 위한 것”

“공무원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페이스북 등에서 문재인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파면됐던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정부를 상대로 낸 파면 취소 소송 2심(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4-3부(김재호 권기훈 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3월 30일, 한 전 국장이 문체부를 상대로 낸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에서와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정부 비판했다 파면

서울대 역사교육과 80학번인 한민호 전 국장은 8년간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5년간 근무하며 문체부의 꽃이라 불리는 문화정책과장을 비롯해 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8월,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사무처장으로 좌천됐다가 2019년 10월, 파면됐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제56조)와 품위유지 의무(제63조)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한 전 국장은 징계에 불복해 2020년 3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문체부가 항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잘나가던 고위 공무원이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파면 처분을 받더니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두 번 다 이긴 것이다. 이래저래 유례없는 이력을 지니게 된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을 4월 1일 만났다.

-‘파면’ 처분은 공무원으로서 최고 수위의 징계다. 파면될 정도로 잘못한 게 뭔가.

“문체부가 징계를 요청하면서 3가지 죄목을 들었다. 그중 ‘정치 운동 금지’ 위반은 정당이나 정치 단체에 가입하거나 지지 또는 반대를 한 경우가 해당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다행히 정치 운동 금지 위반은 징계 사유에서 제외됐다.”

‘품위 유지 위반’은 인정한다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전체 공개로 해놓고 소속, 신분까지 밝힌 상태에서 정부를 향해 공공연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나 중국 공산당에 굴종하는 작태를 보일 때마다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지칭해 ‘외교 천재’라는 풍자적 표현을 사용했다. 비록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지만, 대통령을 ‘아메바·지렁이’로 표현한 건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했다고 인정했다.”

‘성실의무 위반’ 관련해서는 “근무시간에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자주 글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내 할 일 열심히 다 하고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성과를 냈다”며 억울함을 내비쳤다.

“개인 신변잡기나 올리면서 업무에 소홀했던 게 아니라 정말 나라가 걱정돼서 쓴 글이었다.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문체부 노조가 처음으로 4급 서기관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리자’로 선정됐다. 앞서 2015년 문화정책과장으로 재직 당시 연말 근무 평정에서 최고등급인 SS등급을 받았다. 소위 한직(閑職)이라는 사감위 사무처장으로 밀려나서도 불법 온라인 도박 근절을 위한 특별법안을 만드는 등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사감위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한 시민단체로부터 상도 받았다.

본보기로 징계

본인 제공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올린 영상을 두고 SNS에 올렸던 ‘나는 친일파다’ ‘친일이 애국이다’ 등의 글은 공직자로서 과한 언행 아닌가.

“우리가 지금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군사적, 경제적으로 일본과의 외교가 중요한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SNS에 죽창가를 올리고 대통령이 반일 선동에 앞장서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019년 7월 ‘죽창가’ 유튜브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죽창가는 조선 말기 민중들이 일본과 싸웠던 때를 모티브로 한 노래다. 한 전 국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를 공유하며 “나는 친일파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고 썼다.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고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을 규제한 것을 빌미로 청와대와 정부가 ‘반일(反日)’ 몰이에 앞장서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2019년 1년 내내 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반일 선동을 해대고 있는데 명색이 고위 공무원이라는 자가 ‘친일이 애국’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공직기강감찰반에 소환돼 4시간 정도 조사받고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뒤 파면됐다.”

그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공직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이례적이다. 장·차관급 이하 공무원은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로부터 조사를 받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내부 직원에 대한 직무 감찰과 사정 업무, 인사 검증을 맡는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을까.

“아마 나 같은 공무원은 전무후무할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이 고위 공무원을 본보기 삼아 징계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방치했다 다른 부처에서 제2, 제3의 한민호가 나오면 치명적이니까.”

파면은 강제 퇴직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무원 연금도 절반 정도밖에 받을 수 없다. 공무원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최고 수위의 징계다.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당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개전의 정(改悛의 情·잘못을 뉘우치는 마음가짐)이 없다”는 표현도 적시했다.

나라에 직언하는 게 고위 공무원 소명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관료들을 억눌러 국가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힘들게 한다는 지적이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상당히 우수하고 유능한 집단이다. 7급·9급 시험 경쟁률이 엄청 높은 것만 봐도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단일 집단으로는 가장 막강한 인재 풀이다. 시험을 통해 뽑은 우수한 공무원들 입을 다 막고 로봇처럼 시키는 것만 하게 만드는 건 국가적으로도 해로운 일이다. 공무원들을 말 못 하게 하면 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그런 공무원들을 부릴 능력이 있거나 그들 스스로 국정을 잘 이끌어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게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존 1급(관리관), 2급(이사관), 3급(부이사관) 등을 통합해 국가 고위공무원 전체를 하나의 풀(pool)로 만든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취지는 소속 부처와 상관없이 국정 전반에 자기 식견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본다. 나라가 위중한 상황에서 직언하는 게 고위 공무원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에 대해 담당 산업부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에 대해 외교부나 국방부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 발언을 했으면 내가 안 나섰을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는 ‘나를 따르라’는 기조는 있었지만, 특히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고 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관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하다 들킨 사례를 들었다.

“좌파 진영은 공무원 집단을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한다.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와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명령에 잘 따르지 않고 버틴다는 피해 의식이 있다. 탈원전 정책만 보더라도 일사천리로 쉽게 진행된 건 아니지 않나.”

한민호 전 국장은 한국 좌파 비판을 지속했다. 그 이유는 그도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이른바 586세대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이 대학가를 휩쓸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며 운동권에 몸담았던 그는 같은 대학 선배의 권유로 전향했다. 서울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유명했던 그 선배는 ‘대한민국은 너무 발전한 나라여서 공산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전향을 권유했다.

-후배 공무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나 같은 케이스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공무원이 파면당할 각오로 정권에 정면 도전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렇지만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불법적 명령은 당연히 거부해야 하지만 부당한 명령은 판단 주체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신분 보장이 되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에 적어도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을 수는 있지만 징계받을 일은 아니다.”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만으로 불이익을 감내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부당한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받게 되는 잠재적 불이익과 거부함으로써 받는 당장의 불이익을 놓고 따져봐야 한다. 나라가 망가지는데 나중에 노후 연금이나 제대로 나올지, 내 자식과 손자 세대의 안녕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나라가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애국이 거창한 게 아니다. 무슨 남을 위한 이타적 희생이 아니라 바로 내 문제다.”

“공무원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기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게 국가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일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정책 발전이 있다. 공직 사회에 그런 기풍(氣風)과 분위기를 조성해달라고 윤석열 정부에 부탁하고 싶다.”

나라 망가지는데 입 다물 수 없다

임호/에포크타임스

-임기 만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를 다시 평가한다면.

“어느 정권이나 오판하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시종일관 나라를 망가뜨리는 일만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실책으로 탈원전 정책을 꼽았다.

“이렇게 성장한 나라의 대통령이 영화 한 편 보고 원전 폐기를 밀어붙인 건 반역이다. 원전의 중요성, 안정성 같은 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고민도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와 관련해 허위 주장을 하는 바람에 일본 정부가 항의한 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원자력발전소 영구 정지 선포식 기념사를 통해 ‘탈핵 선언’을 했다. 이 과정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5년간 1368명이 사망했다”고 발언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27일 주일 한국 대사관에 ‘정확한 이해 없이 발언한 내용이라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공식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사고 관련 사망자’를 ‘원전 사고 사망자’라고 잘못 보고한 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20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 지역으로 꼽히는 체르노빌 일대가 동물의 왕국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2015년 10월, 짐 스미스 영국 포츠머스대 교수팀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에 사슴과 노루, 멧돼지, 늑대 등 야생 동물이 돌아와 서식지를 이루고 있다”고 세계적 학술지 ‘셀’의 자매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20여 년 동안 헬리콥터를 이용해 4200㎢에 이르는 인근 지역의 동물 수를 조사한 결과였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에 엎드려 빌다시피 하면서도 욕만 먹었지 얻은 게 뭐가 있나. 문재인 정권하에서 북한은 오히려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시켰다”며 정부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이어갔다.

“경제가 다 망가졌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휴대전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는 등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대만 TSMC에 밀려 시장점유율에서도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정부에서 5년 동안 삼성전자를 흔들어 댄 결과다. 대한민국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 중소 상공인들이 문을 닫거나 고용을 줄이는 바람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월급이라도 받고 일하고자 하는 사람의 일자리마저 없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서민들을 사지로 내몬 정권이다.”

-공무원으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는 없나.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김구 선생은 국가흥망에 필부마저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 한 사람이자 명색이 고위 공무원인데 나라가 망가지는 걸 보고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민운동 매진할 것

본인 제공

-향후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3가지 시민운동을 계속 열심히 할 생각이다. ‘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CUCI·Citizens for Unveiling Confucius Institute) 대표로 공자학원 실체를 연구·조사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선전공작기관인 공자학원 추방을 위해 50일간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차이나 아웃(China Out)’ 부대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한국 침투가 광범위하고 깊다. 이 침투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 조사, 시위, 집회 등의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한민호 전 국장은 “만일 복직해서 정부에서 일할 수 있으면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해보고 싶다”며 “교육부는 역사 콘텐츠를 만들고 문체부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면서 긴밀하게 협력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어 “한국 현대사를 보는 관점, 특히 일제 강점기를 보는 관점에서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반반으로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이 대립하고 있는 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극복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 사도 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문제와 관련, 사도 광산에서 실제로 강제노동이 있었는지 여부 등 진실을 캐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끝으로 한민호 전 국장은 “근현대사를 보는 국민들의 역사관을 합의·공유하는 것이 국민화합의 핵심이자 절실한 과제”라며 “공무원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