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위 숙청 8년, 시진핑은 중국경찰에 왜 새 깃발 새 명칭을 수여했나

한동훈
2020년 9월 14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14일

지난달 26일 중국은 경찰의 명칭을 기존 ‘중국경찰’에서 ‘중국인민경찰’(中國人民警察)로 변경했다.

경찰 깃발도 새로 제정했다. 새 경찰기 수여식에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직접 참석해 새 경찰기를 국가안전부장에게 수여했다.

시진핑은 수여식 후 연설에서 경찰을 향해 “당과 인민에 절대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 이름에 ‘인민’을 넣은 것도 같은 목적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과 경제 침체로 어려운 시기에, 시진핑이 경찰조직의 명칭을 변경하고 직접 깃발 수여식을 챙겼다. 이유가 뭘까.

중국 관영 CCTV가 중계한 새 경찰기 수여식 | CCTV 유튜브 캡처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시진핑이 지난 8년간 ‘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조직을 숙청하며 약화시켜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사평론가 천스민은 “이번 경찰 명칭 변경도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진핑은 경찰에 새로운 깃발과 이름을 줌으로써 기존 권력 시스템(정법위)이 아니라 당과 인민, 즉 자기 자신(시진핑)에 충성하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법위 명령에만 따르던 낡은 관성에서 벗어날 것을 경찰 조직에 주문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중국 전문가 탕징위안도 “인사이동이나 처분 같은 조치는 없었지만, 이 시기에 경찰 조직 다지기를 했다는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라고 했다.

탕징위안은 “어떠한 내부적인 변동을 감지하고, 이를 대처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정법위는 중국의 사법·공안 최고권력기구다. 막강한 권력의 원천은 준군사조직인 무장경찰 부대 동원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장경찰 부대는 사실상 인민해방군이다. 그 대상이 자국민이라는 게 특징이다. 한 마디로 내란 진압용 군대다. 경찰인만큼 그 지휘권을 중앙군사위와 정법위가 공유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12월, 시진핑 정권은 무장경찰 부대를 군으로 규정하고 지휘체계를 중앙군사위로 단일화했다. 정법위로부터 무장경찰 부대 지휘권을 박탈한 조치다.

시진핑은 집권 초부터 정법위와 공안(경찰)조직을 숙청해왔다.

최근에도 숙청은 계속됐다. 지난 5월에는 멍젠주 정법위 서기가 체포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4월에는 쑨리쥔 공안부 부부장(차관), 푸정화 사법부 부장(장관)이 낙마했다.

시진핑 집권 전, 정법위 서기였던 저우융캉은 시진핑의 당내 최대 라이벌 세력인 장쩌민 파벌의 핵심인물이다. 최근 낙마한 쑨리쥔, 푸정화, 멍젠주도 모두 장쩌민 파벌이다.

10년 이상 정법위와 공안조직을 틀어줬던 저우융캉과 장쩌민 파벌이 남긴 숱한 ‘흔적’들은 그동안 시진핑에게 청산의 대상이었다.

정법위 조직의 비대한 권력과 위험성을 고려할 때, 청산은 시진핑 진영의 존속과도 관련된 문제였다.

여기에는 인적 청산뿐만 아니라 정법위 조직을 동원해 저지른 대형 범죄들도 포함됐다.

저우융캉은 2014년 부패혐의 등으로 체포됐고, 2015년 6월 뇌물수수, 권력남용, 기밀누설 등 혐의가 입증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은 최대 범죄가 있었다. 바로 장기밀매다.

장기밀매에 대해서는 다른 식으로 잠시 공론화가 됐다. 중국 위생부 전 부부장(차관)이자 중국장기기능이식위원회 주석인 황제푸(黃潔夫)는 저우융캉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리기 두 달 전 장기밀매에 대해 폭로했다.

황제푸는 2015년 3월 홍콩 봉황위성TV와 인터뷰에서 “장쩌민의 오랜 심복 저우융캉 전 공안부 부장이 수감자들을 생체 장기은행으로 이용했으며 이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황제푸(黃潔夫) 중국 장기기증이식위원회 주석. 그는 중국의 장기이식 수술이 전부 사형수 장기만 사용한다고 주장해왔으나, 다양한 집계자료를 통해 발언의 신빙성이 지적받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

그는 자신이 중국의 장기 남용 실태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해명하면서 “이 모든 게 저우융캉 공안부 부장의 나쁜 영향 때문이다. 하지만 새 지도부(시진핑 진영)는 엄격한 반부패 운동으로 우리를 지지해줬기에, 우리는 개혁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우융캉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여죄가 또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2017년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이뤄졌다. 시진핑 집권 2기를 알리는 대회다.

이 자리에서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감찰기구) 서기는 시진핑 집권 1기 때 활동을 정리한 마지막 보고서에서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의 이름을 나열하고 “야심가, 음모가”라고 부른 뒤 “정치야욕 팽창” “음모” “중대한 정치적 우환” 같은 표현을 썼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베이징 시내에 무장경찰 부대를 동원할 수 있는 정법위 서기직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쿠데타를 모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저우융캉 등이 대규모 부정부패와 뇌물수수를 한 것에 대해 왕치산 서기가 ‘야심’ ‘음모’ 등의 표현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사평론가 천스민은 “저우융캉은 수감자들을 살아있는 장기공급처로 만들어, 피비린내 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시진핑 정권에 의해 공개될 경우, 뒤따를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두려워 쿠데타를 기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스민은 “저우융캉이 국가적 차원의 생체 장기은행을 운영했으며 새 지도부가 저우융캉을 처벌했다는 황제푸의 폭로를 통해, 시진핑이 장기밀매 범죄를 저지른 장쩌민 파벌과 선 긋기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권력 시스템은 집단지도 체제다. 시진핑 한 사람에게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지만, 1개의 성이 곧 웬만한 국가와 맞먹는 규모인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중앙의 방침과 다르게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이 흔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정법위 지부와 지역 공안기관, 경찰이 합세해 파룬궁 수련자 수백 명을 납치하거나 거주지를 급습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 강제로 혈액을 뽑아갔다(채혈)는 공통점이 있다.

상하이의 한 소식통은 “경찰이 강제로 채혈하면서 ‘국가안전법’ ‘국가규정’이라고 했다. 작년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경찰은 ‘상급의 지시’라고 했다. 뭔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국 전문가 탕징위안은 “바이오 정보는 최근 중국 정권이 권력안정 차원에서 부지런히 수집하는 정보다. 혈액 검사는 그 일환일 수 있다”면서 “혈액샘플은 장기이식을 위한 사전 정보 수집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탕징위안은 “상하이 경찰이 채혈을 해가면서 ‘상급의 지시’가 아니라 ‘국가안전법’을 들먹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매우 기이한 일”이라며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천스민은 “시진핑은 수감자 장기적출에 책임이 있는 저우융캉과 관계를 끊었다. 강제적인 장기적출은 확실히 장쩌민 정권이 추진한 대규모 범죄”라며 “그러나 시진핑이 당 결집을 위해 이들에 대한 처벌을 미루면서 사태가 복잡해지고 있다. 책임이 없다고만 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장쩌민 파벌 주요 인물들은 정법위에서 축출됐지만, 정법위와 공안조직에는 아직 이들과 가까운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장쩌민 계파가 아직 과거 조직망을 이용해 소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시진핑이 공안조직을 다잡으려 하지만, 덮고 가려다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봉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