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고위 관리·학자들 “대통령 5년 단임제 한계 직면”

개헌이 아닌 대통령 리더십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진태영
2022년 04월 19일 오전 10:50 업데이트: 2022년 04월 19일 오후 12:04

1987년 5년 단임제 개헌은 여·야 지도자 간 타협의 산물
연임 불가능한 제도하에 대통령 독선·독단에 빠지기 쉬워
대통령 재선 가능한 4년 중임제로 헌법 개정해야
제도가 아닌 대통령 리더십이 문제라는 반론도 있어

제20대 대통령 취임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승자와 패자가 0.7%포인트 차이로 나누어진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한 각종 평가도 줄을 잇고 있다. 그중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5년 단임제의 제6공화국 헌법의 제도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에포크타임스’가 ‘대선 특집’ ‘신정부 출범특집’으로 진행한 연속 대담에서도 전·현직 고위 관리, 정치·행정학자들은 공통적으로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 청와대 정책비서관을 역임한 이홍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5년이라는 임기 제한 때문에 정부 운영은 스타트업(Start-up) 기업 운영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업무 파악에 6개월~1년을 소비하고 집권 4년 차 정도에 발생하는 ‘레임덕’ 기간을 제외하면 대통령이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3년 정도밖에 안 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홍규 교수는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에는 정부 비판 여론이 증대되고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하여 국정 운영 어려움이 증대된다.”며 5년 단임제가 지니는 한계를 지적했다. 다만 그는 4년 중임제 개헌만이 해답은 아니라고 했다.

이홍규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민주주의 이론 대가인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는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의 산물인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국민의 염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임혁백 교수는 에포크타임스 인터뷰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야(野) 3당 지도자 간 타협의 산물로서 5년 단임제하에서 각자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며 단임제가 국민의 뜻이 아닌 여·야 지도자 간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대안으로 그는 미국식 4년 중임(重任)제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책임 정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임이 불가능한 현행 제도가 대통령을 독선·독단에 빠지게 한다는 평가도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 제왕학·통치학을 연구하는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은 “단임제하에서는 국민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순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조선 3대 군주 태종(太宗) 리더십을 연구하는 그는 “현행 헌정 구조 속에서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대통령이 되어도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대통령 정책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도 “대통령 재선이 가능하도록 4년 중임제로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중임제가 도입될 경우 대통령 첫 임기 4년 동안은 재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라고 중임제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전성철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의 주장과도 대동소이하다. 대통령 정책비서관,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등을 역임한 전성철 회장은 지난 1월, 에포크타임스 대담에서 미국식 대통령제의 성공 요인을 중임제와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라고 강조했다. 전성철 회장은 “대통령이 취임해서 바로 2년 후 치르게 되는 첫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 나머지 2년간 대통령은 레임덕에 걸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업적을 제대로 내기 힘들어진다. 업적 없는 대통령이 2년 후 재선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단임으로 끝내야 하는데, 단임 대통령은 예외 없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낙인이 찍힌다.”고 말하며 미국 사례를 들어 한국도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4년 중임제 개헌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역대 최장수 대통령 비서관으로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을 9년여 보좌했던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5년 단임제의 제도적 한계도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성공적인 대통령 리더십으로 제도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명은 역사 계승·발전이다. 전임자의 업적과 과거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은 이어받아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이 없는 상태에서 단순 제도만을 바꾼다 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용하는 대통령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사단법인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소장인 임동욱 차의과학대학교 행정대외 부총장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임동욱 부총장은 4월 대담에서 “일단 현행 제도대로 운영해 보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일단 현재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 보아야 한다. 1987년을 기점으로 이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 혹은 제왕이었다면 제6공화국 헌법 시행 후에는 달라졌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여전히 대통령은 제왕인 줄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는 5년 단임제하에서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통령을 배출하고 ‘성공한 경험’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개헌은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유정/에포크타임스

개헌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4년 중임제만이 대안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제17대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 대통령 출범 후 두 차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정무·국정기획), 두 차례 장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을 역임한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선진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순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점과 기타 선진국 다수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상·하 양원(兩院)제’ ‘의원내각제’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박재완 이사장은 의원내각제가 실시되면 책임 정치가 강화되고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 영국 ‘주니어 미니스터(junior minister)’제도나 일본의 부대신, 대신 정무관 제도 등 미래 총리·각료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국정 운영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박재완 이사장은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면 초선이나 재선 의원 정도는 부처 ‘차관보’ 정도로 내각에 참여하고 선수가 쌓여야 차관, 부장관, 장관(대신)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각료가 되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는 것이다.”며 의원내각제의 장점을 설명했다. 조해경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는 4년 중임제 개헌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7년 단임제로 하고 ‘중간평가’를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조해경 교수가 제시한 대안대로 할 경우 대통령 임기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치러지는 중간 평가 투표에서 재신임받을 경우 7년 간 재임할 수 있지만 부정 평가가 높을 경우 3년 6개월 만에 퇴임해야 한다.

1987년 5년 단임, 연임 금지, 현 대통령의 임기 관련 헌법 개정 불가를 명시한 제6공화국 헌법 시행 후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단임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역대 대통령들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을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행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하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해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필요할 경우 자신의 임기 1년 단축도 감수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반대로 무산됐다.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도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2년 차인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4년 중임제를 제안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10월 “대통령직을 수행해 해보니 권력이 너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온갖 사안에 대해 다 결정하게 돼 있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1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비공개 만찬에서도 개헌을 논의했지만 당시 당내 주류인 친박(친 박근혜)계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도 대통령 취임 후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집권 4년 차인 2016년 10월,  차기연도 예산안 시정연설로 국회를 방문하여 “우리 정치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 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 구도가 일상이 돼 버렸고 민생보다는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당일 밤 이른바 ‘최순실(최서원) 태블릿PC’ 논란이 발생하면서 개헌 논의는 물거품이 됐다.”

법률가 출신의 현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 취지에는 공감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2017년 제19대 대선 후보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선 이후인 2018년 3월, 3개월 후인 6월 개헌을 제안하며 “지금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채택된다면 대통령과 지방정부의 임기가 거의 비슷해지므로 차기부터는 대통령과 지방정부 임기를 거의 비슷하게 갈 수 있다. …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헌을 앞당길 필요가 있고 지금이 적기다”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개헌의 전제조건인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가 되지 못해 결국 개헌은 불발됐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속에서 5월 취임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선거를 앞두고 급진적인 중임제 개헌 담론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다만 윤석열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총리, 대통령, 장관이 할 일을 구분 짓고 대통령이 할 일에 대해서만 분권형으로 일하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강조했다.

이 속에서 차기 윤석열 정부가 성공적인 대통령 리더십을 발휘해 전문가들이 지적한 현행 제도(단임제)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1988년 제6공화국 헌법 시행 후 꾸준하게 논의되어 온 중임제 개헌안이 힘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