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사악한 박해: 2장 언론 독점

중국공산당에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반대자라 할지라도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조종하는 방법
클라이브 앤슬리(Clive Ansley)
2019년 11월 28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28일

중국에서 14년간 일했던 나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쩌민의 지휘 하에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비방하고 사교로 몰아세우는 잔인한 조직적 캠페인을 벌이는 과정을 1999년 시작부터 2003년까지 지켜 보았다. 국가가 악의적으로 파룬궁 단체를 비방하고 사교화(邪敎化)하는 선동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누구도 장쩌민과 그의 추종자들이 평화로운 파룬궁 수련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른바 ‘최종해결방안(a final solution)’이라는 악몽 같고 끔찍한 집단학살을 사회적으로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살인과 생체장기적출(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행위)을 감행해 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출처가 뚜렷한 수많은 증거가 우리에게 이 한 차례 학살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히틀러 나치 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능가하는 이 참혹한 박해가 1999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중국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정치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해는 대체 어떻게 발생했고 가능할 수 있었는가. 장쩌민이 주도한 조직적 선전 활동은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국민을 부추겼다. 증오를 분출시키고 사교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부여해 동포에 대한 가장 잔혹한 고문과 폭행을 가한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켰다. 이러한 의도의 이면에 감춰진 이해관계를 알면 이유 또한 명확해진다.

나치와 오늘날 중국은 공통의 뚜렷한 특징이 있다. “냉혹한 정당이 대중의 눈을 속이고 그것의 범죄행위를 용의주도하게 은폐하기 위해 일으킨 행위로 문명화되고 이성적인 하나의 사회가 침략받았다”라고 판결한 이스라엘 종교재판소는 세계가 감당한 이 두 차례 박해가 아이러니하게도 닮은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는 이른바 빅라이(Big Lie) 이론은 너무나 잘 알려져 여기서 상세히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큰 사안에 관한 반복적인 거짓말에 곧잘 속는다. 나치 독일은 이 이론을 활용하여 유대인을 사악한 인종으로 몰았다. 그들은 유대인을 질이 낮은 인종, 사실상 인간이 아닌, 독일사회에 대해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내가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해 저지른 행위에서 목격했던 것과 같다. 중국공산당의 허다한 정책과 조직적 활동을 나치 독일의 행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른바 중국의 ‘공산당’은 명칭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파시즘에 대한 일반적 개념에 더욱 부합한다.

나는 박해 초기 몇 년간, 파룬궁을 겨냥한 중국공산당의 허위 선동을 목격하면서 나치가 유대인을 사악한 인종으로 몰던 행위가 매일같이 떠올랐다. 하지만 뒤이어 발생하게 될 소름끼치는 실상에 대해서는 나 역시 예견할 수 없었다.

초기에 주요매체는 늘 파룬궁 수련인이 갖가지 잔인무도하고 음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허위 보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오늘날 파룬궁 수련인, 인권변호사, 반체제 인사, 기독교 신자, 위구르인, 티베트인에게 지속적인 박해를 가하는 중국공산당의 범죄 행위들을 연상시킨다.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파룬궁을 사교로 규정한 것은 다름 아닌 장쩌민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희생자 집단이 된 이 단체를 향한 증오의 불길을 부추기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인은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공산당은 박해 초기에 이런 선동적인 괴담과 거짓말을 매일 출판물과 TV 매체에 등장시켜 ‘사교’의 개념을 사람들 마음속 깊이 각인시켰다. 예컨대 난징의 한 유명 식당에서 쥐약이 든 국수를 먹고 42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중국 전역에 이 사건이 보도됐다. 이런 살인 사건은 결국 파룬궁의 가르침으로 인한 것이라고 날조되었다. 당시 나는 파룬궁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이러한 대량 살인 사건의 책임을 파룬궁에 전가하려는 의도를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당국이 분명히 다른 목적을 갖고 이렇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살인 혐의자에 대한 ‘재판’은 나중에 광범위하게 보도되었는데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보도 내용에 파룬궁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흉악범을 사형 집행한 후 언론은 “그런데 그 흉악범은 파룬궁 수련인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 사건의 대부분은 파룬궁과 관련되는 어떤 혐의도 없었지만, 언론이 노련한 솜씨로 연루시켰다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박해 초기 모든 매체가 파룬궁에 대해 무자비하고 증오를 불러 일으키는 역사상 유례없는 보도를 계속했는데, 보도 내용은 대부분 극악무도하고 반인륜적인 사건에 관한 것들이었으며 그런 범죄가 모두 파룬궁의 가르침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설명하지만 설사 박해 초기 나는 파룬궁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음에도, 공산당의 이 비난들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됐다. 중국공산당에게 비방을 당한 파룬궁 피해자들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된 것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공개 토론회조차도 거부됐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장기간의 경험을 통해,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이 조직적인 거짓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과 정당과 정부기관 및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진실성은 설사 진실을 말해서 자신에게 해가 없다 할지라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공산당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이 습관화됐다. 비록 실상을 숨길 이유가 없다 해도 거짓말을 한다. 중국공산당은 진실을 숨길 이유가 없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인민일보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것은 날짜이다”라는 말은 중국에서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다. 그러므로 나도 중국공산당이 하는 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중국 민중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는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설명하기에 곤혹스러운 부분은 중국공산당은 분명히 대다수 자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괴로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허다한 이유로 중국 내에서 광범위하게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있는 대상이다. 증오를 받는 것 외에도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중국공산당은 표면적인 신용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 공산당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한 단체를 고립시키고 지속적으로 박해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수많은 중국인을 공산당의 편에 세울 수 있었을까?

‘중국이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을 가진 사회’라는 고찰은 진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진부한 고찰은 한편으로는 중국공산당을 경멸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공산당의 반복적인 허위 선동을 곧이곧대로 믿는, 설명하기 어려워 보이는 모순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관건인 부분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난해한 모순을 만든 몇 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른 모든 독재 국가들처럼 중국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기교적으로 불어넣어 거대한 이익을 얻었다.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제나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서양의 강대한 제국주의 침략 과 포식의 역사는 중국인에게 서양 세력에 대해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반감을 품도록 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에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자로서 크나큰 좌절감을 느꼈던 중국인의 자존심을 이용하는데 중국공산당은 크게 성공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에게 적대감을 가진 중국인이지만 오히려 그 지도자의 뒤를 따라 집결하여 반미시위 혹은 티베트, 대만 및 중국 동해, 남해 도서 분쟁지역에서의 주장을 지지한다.

마찬가지로 중국 문제를 보는 관점에서 공산당의 습관적인 거짓말에 대해 항상 비웃던 수많은 사람이 특정 문제에서는 오히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중국공산당의 편에 서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거의 100%에 가까운 중국 국민은 사형을 지지한다. 내가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기초적인 논리로 사형을 반대하면, 나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전형적인 예로, 중국에서 사형 판결받은 사람 중 무고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중국 경찰은 절대로 죄 없는 사람을 기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펼치는 사람은 통상적으로 중국공산당과 중국의 체제에 대해 가장 공격적으로 비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늘 중국공산당을 신뢰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도 중국공산당이 경찰과 법원을 뒤에서 세세하게 통제한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일한 변호사들은 거의 모두가 ‘인민일보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것은 날짜’라는 이 우스갯소리를 인용해 말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두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가 있는 파룬궁 수련인의 이야기를 화제로 토론하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나는 파룬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이 이야기가 필연코 허위임을 논쟁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단순하게 건네주는 소식만 가지고 왜 우리가 이 일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논쟁의 시작은 이 변호사가 파룬궁 수련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데서 시작됐다. 나는 그에게 왜 그렇게 지나치게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어머니가 두 아이를 살해한 사건을 예로 들며 반박했다. 나는 그에게 “그러나 그것이 진실인지 어떻게 아는가, 정말로 발생한 일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전날 밤 뉴스를 본 것이 전부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누가 중국중앙방송 CCTV를 통제하고 있는지 일깨워주었다. 그는 늘 여러 사람에게 중국공산당 매체를 믿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당시 나에게 중국공 산당 중앙선전부에서 심의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근거해 파룬궁이 사악한 것이라는 주장을 확고히 펼치고 있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인민의 공적’이라 치부되는 대상, 즉 파룬궁에 대해 대규모 허위 선전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난징 식당 독약 사건에 대해 중국공산당을 비평하고 의심하는 사람과 비슷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여성도 신문과 텔레비전을 보고 나서 이 사형수는 전에 파룬궁 수련인이었고 그 범죄는 수련한 결과라고 분노하며 말했다.

파룬궁 수련인이라고 자칭한 다섯 사람이 천안문광장에서 집단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건은 천지를 뒤엎을 듯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됐으며 그 효과는 그야말로 확실했다. 나는 당시 이 뉴스를 본 중국인 대부분이 이 사건으로 인해 파룬궁에반감이 생긴 것을 보았다.

심지어 나도 분신자살이 발생했고 뉴스가 타당하다는 것을 ‘사실’ 로 받아들였다. 내가 보아왔던 다른 뉴스들, 즉 파룬궁에 적대적인 보도와 달리 이 경우는 사건 현장을 찍은 생중계 영상을 보여줬기에 나도 무서운 장면을 ‘내 눈’으로 보았다. 몇 가지 이유로 그 뉴스가 나를 파룬궁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당시 나도 이 사건의 진실과 매체 보도의 진위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후 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접할 기회가 있었고, 아울러 이 사건 자체가 베이징 경찰의 자작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파룬궁 박해 사실을 잘 아는 모든 사람은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잘 안다. 영상 기록은 진실했으나 보도한 내용은 도리어 그렇지 못했다.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을 시도한 이들은 파룬궁 수련인이 아님이 분명했다. 5명의 ‘시위자’ 뒤에는 모두 몇 초 내에 사용할 소화기를 준비한 경찰들이 대기하고 서 있었다. 이 5명은 몸에 방화 재질의 옷을 눈에 띄게 두껍게 입고 있었다. 평소 톈안먼 광장에는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소화기조차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10명의 경찰이 소화기를 들고 제때에 시위 현장으로 달려와 불을 끄기란 이 사건이 어떤 사람에 의해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이러한 것을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사건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것임을 돌이켜 논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 변호사 및 기타 인사들과의 나의 논쟁은 아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조직과 운동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다. 우리는 미국에서 한 극단적인 어머니가 5명의 자녀를 목욕통에 넣어 익사시켰을 때, “예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대로 했다”고 말했다 해서 기독교를 질책하지 않는다. 둘째, 이런 행동은 박해를 당해 궁지에 몰린 극단적 좌절의 반사일 수 있다. 셋째, 이와 유사하게 1960년대 초 베트남 및 최근 티베트에서 있었던 불교 승려의 분신자살은 위대한 영웅 행위와 자기희생으로 받아들어졌다.

우리가 중국의 이번 박해 및 이 박해를 가속화시킨 매체들의 선전으로부터 배운 첫 번째 교훈은, 이미 국가가 언론을 전부 독점해서 사람들이 어떠한 언론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자신하더라도, 특정한 상황에서 여전히 반복적으로 같은 언론에 의해 우롱과 조종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빅라이(Big Lie) 이론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또 만약 당국이 매체를 절대적으로 독점할 수 있다면 피의자가 매체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맹목적 애국주의로 끊임없이 민족의 자존심을 부추기고 혹은 외부 또는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를 충분히 이용하는 환경이라면, 설사 스스로 세상사에 정통해 국가 선전기구에 속지 않고 있다고 여길지라도 사실상 여전히 그것에게 반복적으로 기만당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서양 독자들은 출판물과 언론으로부터의 정보가 전부 독점되었을 때 국민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상상해 보아야 한다. 비록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비판 능력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특정한 사안이나 사건의 정 보가 단일한 관점으로만 발표될 때 그들은 여전히 쉽게 반복적으로 기만당하게 된다. 15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는 파룬궁에 대한 이 한 차례 박해는 이 점에서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우리 서양 매체도 많은 면에서 매우 부패해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개인 매체는 특정한 이해관계에 치우쳐 있어 보도 역시 특정 이익을 두둔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절대적인 매체 독점은 없으며 특히 국가의 독점이란 없다. 명예에 대한 그 어떠한 비방에도 대응하고 반론할 수 있다.

우리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선전기구의 위력에 대해 절대로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그것이 모든 정보와 견해의 유일한 루트가 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가 파룬궁 수련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웃이 반드시 있을 것이며 심지어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파룬궁 수련인은 파룬궁의 가르침은 그 어떠한 종류의 살생도 금지한다는 것을 기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또 분명히 난징에서도 독을 투입한 사람이 파룬궁을 한번도 수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파룬궁 수련인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자살자들이 취한 그런 가부좌 방식은 파룬궁 수련인이라면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방식임을 손쉽게 지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이런 사실을 지적할 수 있었을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다른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아무런 경로가 없었다. 편지를 써서 출판사에 보낼 수도 없고, 신문의 독자 평론에 의견을 쓸 수 없고,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 기회도 없으며, 심지어 공개적인 장소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를 열 수도 없다. 단지 하나의 소리 외에는 들을 수 없는데, 어떤 의제에 대한 단일한 관점이 지겹도록 날마다 반복된다. 아울러 그 어떤 반대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을 때, 그리고 어떠한 대답도 다시는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절대로 중국공산당의 매체를 믿지 말라고 권고하던 많은 사람들조차 자기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믿기 시작한다.

파룬궁 수련인은 모함을 당해도 그에 답변할 수 있는 공개 토론회도 없었다. 죄행을 뒤집어씌우던 악의적인 명예훼손의 희생자가 되든지 중국 민중들은 파룬궁 수련인들의 반응을 볼 수가 없었다. 더욱 심한 것은 박해 초기 대중들이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중국공산당의 허위 선동을 결코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많은 매체는 대중들이 단체로 파룬궁을 비난하고 공개적으로 파룬궁 수련인을 비난하는 것을 보도했는데 정말로 전에 발생했던 반지주운동, 반우파운동, 문화대혁명, 비림비공운동(批林批孔·중국에서 1973년 말부터 전 국방부장관이자 당 부주석이었던 린뱌오(林彪)와 그가 즐겨 인용한 공자를 아울러 비판한 운동)을 연상케 했다. 이런 운동은 모두 중국공산당이 소극적인 독자와 청중들을 원한에 찬 선동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모시키는 데 이용됐다.

실제 박해 참여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유효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참여자는 그들의 공모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헌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아내가 남편을 공개 비판하고 폭행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고, 그들이 이같은 행동을 감행한 것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순수성과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파룬궁이 박해를 당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박해에 참여한 자들의 목적은 더 넓게 보면 자신이 그 선동의 공격 목표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위와 같은 민중들의 질책과 더불어 파룬궁 수련인에 대한 경찰의 불법적인 구타, 재산과 은행계좌의 몰수, 자의적인 행정 구류와 감금이 빈번하게 자행됐다. 또한 파룬궁 수련인으로 밝혀지면 그들을 해고하도록 고용주를 압박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파룬궁 수련인을 ‘사실상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음’으로써 인류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상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중국 공안, 무장경찰, 의료인, 감옥 교도관들이 살인죄나 혹형죄,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엄중한 반인류범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도록 했다. 방금 내가 말한 반인류범죄란 바로 건강한 사람들을 장기 공급원으로 삼아 ‘수요에 따라’ 대규모로 장기를 적출해 학살한 후 국가가 그들의 장기를 팔아 방대한 이익을 챙긴 강제 생체장기적출을 의미한다.

마치 나치가 종래로 학살 수용소를 공개 승인하지 않았던 것처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인에 대해 범한 잔혹한 범죄를 인정한 적이 없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파룬궁 수련인과 유대인에 대한 반인류범죄는 그러한 범죄에 실제로 가담한 사람의 정상적인 도덕성과 판단 능력을 심각하게 마비시켰다. 가해자가 죽음에 직면한 피해자를 ‘유대인에 불과하다’거나 또는 ‘사교 신자에 불과하다’며 자신의 죄행을 합리화시킬 때 자연히 피해자의 처참한 비명에 대해 귀를 틀어막고 듣지 않을 것이다.

의료전문가를 박해에 가담시킨 것은 파룬궁 수련인에 대해 비인간적인 박해를 감행하는데 성공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중국과 나치 독일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의료전문가가 이런 무고한 사람들, 진정한 법정은 고사하고 이른바 중국의 ‘법정’ 심리마저 다 거치지 않은 건강한 사람을 살해하는데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1930년대의 독일과 오늘의 중국을 제외하고, ‘학살위원회’가 장기이식병원의 의사 및 중국 형사‘법원’의 ‘판사’와 결탁해 ‘장기 기증자’가 될 수 있는 대상을 살해한 후 신선한 장기를 취득해 돈 있는 고객에게 제공할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오늘날 중국 의료전문가 집단의 현실이다. 만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인을 비인간화하는 허위 선동을 펼치지 않았다면 이 일체가 성립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허위 선동은 계획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곳은 ‘법치국가’가 아님을 증언할 수 있다. 매일매일 집권자가 하는 말이 곧 법이다. 파룬궁이 ‘사교’로 정해지고 아울러 법률적으로 ‘기소’할 수 있게 되었음은 장쩌민 개인의 간단한 지령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 형사 법전 어느 조항에도 파룬궁에 적용할 만한 조항은 없다. 설령 정말로 처벌할 규정이 있다 해도 ‘법원’ 또한 종래로 법률을 적용한 적도 없고 증거를 들으려 한 적도 없다. 권력을 장악한 독재 통치자가 단지 모든 파룬궁 수련인은 죄가 있다고 간단히 선포하고 아울러 박해를 진행했을 뿐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강제 생체장기약탈에 의한 대학살 만행은 법치국가로 위장한 중국을 어이없고 가소롭게 만들었다. 중국공산당이 비록 1979년 이후에 표면적으로는 법률 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했으나, 중국공산당의 이런 행동은 마치 나치가 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독재국가의 압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는 명확한 법률 시스템으로 자신들의 행위가 법률적 근거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흔히 폭로되고 있는 중국 ‘법률 시스템’의 간악함은 법원이 파룬궁 수련인의 소송을 접수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국공산당은 법원이 파룬궁 수련인의 소송을 접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공산당은 중국의 변호사들이 그 어떠한 파룬궁 수련인의 소송도 대리할 수 없게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법치 국가이고 중국 법원은 독립적이다’라는 명백한 거짓말은 해외에서 중국에 대한 존중을 얻는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됐다. 이 도구는 중국공산당 자신에 의해 그리고 강력하게 친 공산주의를 유지하려는 서양 정부 내의 일부 인사들에 의해 광범위 하게 이용되고 있다.

두 명의 전 캐나다 총리는 중국의 인권 침해에 대해 가장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중국공산당 지도자의 친한 친구였다. 이들은 의례적으로 캐나다 국민에게 “중국은 이미 ‘법률 개혁’을 전개하고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박해가 시작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캐나다 제20대 총리 장 크레티앵(Jean Chretien)은 장쩌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장쩌민의 영도 하에 근 십년 사이에 인권 방면에서 큰 진보를 거두었다”고 치켜 세웠다. 후임 총리 폴 마틴(Paul Martin)은 비록 이렇게 황당한 발언은 하지 않았으나 “중국은 인권 문제에서 발전하고 있고 법치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자주 칭송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경찰, 검찰, 법원보다도 상위에 존재하며 심지어 법률보다도 상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동시에 법률 시스템의 모든 기구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즉, 이론과 실제를 막론하고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중국 내에서의 법률 시스템이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것이라면 진정한 법치와는 병존할 수 없다.

단지 중국공산당이 법률 시스템의 외적인 형식과 구조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크레티앵과 마틴 같은 서방 인사들까지도 중국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아울러 자국민에게 중국은 이미 법치가 온전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게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한, 박해와 강제 장기 적출이 빠른 시일 내에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이 목표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중국인과 세계인에게 이러한 죄행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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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사악한 박해 책 표지 | 박대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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