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장기집권 기록 갱신…부정부패·스캔들에도 日 여당은 왜 바뀌지 않나

최창근
2021년 11월 2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2일

지난 10월 31일, 일본 중의원(衆議院·하원 해당) 총선거가 실시됐다. 10월 1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임시 각료회의에서 중의원 해산을 결정 한지 2주일 만이다. 4년 만에 실시된 일본 총선의 의미는 무엇일까.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이하 자민당)은 안도했다. 지역구 289석, 비례구 176석 등 총 465석을 두고 치러진 선거에서 자민당은 465석의 단독 과반의석을 넘기는 261석을 획득했다. 연정(聯政) 파트너인 공명당이 획득한 32석을 더하면 전체 의석의 63%를 차지한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立憲民主黨)은 96석을 얻어 지난 총선보다 13석 줄었다. 일본유신회(日本維新の會)는 종전 10석을 41석으로 늘리며 일약 제3당으로 도약했다. 마쓰이 이치로(松井一郞) 전 오사카부(大阪府) 지사·가타야마 도라노스케(片山虎之助) 참의원(參議院·상원 해당)이 공동 대표로 있는 일본 유신회는 오사카 등 간사이(關西) 지역 정당으로 자민당 보다 선명한 보수·우익 색채 정당이다.

자민당 총선 승리… 보수성향 유신회도 약진

선거로 표출된 일본의 민심은 변화 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17선을 노리던 자민당 2인자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40대 정치 신인에게 석패(惜敗)하는 등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다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부패 스캔들, 코로나 19 대처 미흡으로 인한 민심 이반 등 연이은 악재 속에서도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는 점은 외부인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1945년 패망 후 1946년 제정, 1947년 공포된 이른바 ‘평화헌법’에 의거하여 천황(天皇·일왕)은 명목상 국가원수로만 존치하고, 입헌군주제 하 의원내각제 국가로 변모했다. 임기 6년의 참의원과 임기 4년의 중의원을 선출하고 총리대신·내각 대신(大臣·장관 해당)은 기본적으로 중의원에서 선출된다.

일본은 1946년 이후 단 한번도 헌법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헌정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쿠데타 등에 의한 헌정 중단 사태도 없었다. 매 선거마다 의원 1/2씩을 개선(改選)하는 ‘참의원의원통상선거(参議院議員 通常選擧)’는 1947년 제1회 선거 이후 2019년 제5회 선거까지 3년 마다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일본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임에 분명하다. 2020년 ‘이코노미스트’의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 비표 평가에서도 일본은 ‘완전한 민주국가’로 분류됐다.

‘일본식 민주주의’에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은 현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1955년 창당 후, 1993년 8월~1996년 1월(2년 5개월), 2009년 9월~2012년(3년 3개월) 등 5년 8개월을 제외하고 62년간 ‘여당’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위주의적인 체제가 아닌 절차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는 정치체제에서 선거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자민당을 두고 ‘세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성공한 정당 모델’로 평가하기도 한다. 자민당의 집권 기록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에 기반하여 정권이 연장·교체되는 민주주의 국가 정당에게는 ‘꿈의 기록’이기도 하다.

자민당은 장기 집권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세습 면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다. 2021년 ‘일본경제신문’과 주간 ‘다이아몬드’ 보도에 따르면 일본 세습의원 비율은 중의원의 경우 26%, 자민당 40%에 달한다. 이는 아베 신조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의 커리어 패스에서도 알 수 있다. 1954년 생으로 전후(戰後·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 세대로 첫 총리가 된 아베 신조는 3대에 걸친 정치 가문의 후예다. 조부는 아베 간(安倍寛) 중의원, 외조부는 제56·57대 내각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외종조부(작은 외할아버지)는 제61·62·63대 내각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나 양자로 입적하여 성이 달라짐), 아버지는 농림·통상산업(경제산업)·외무대신, 내각 관방장관, 자민당 간사장 등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이다.

아베 신타로의 차남 아베 신조는 일관제학교(一貫制學校·유치원, 초중고 대학 과정을 한 학교에서 운영, 별도 시험 없이 상급학교 진학 가능) 중 하나인 세이케이대학(成蹊大學)에서 초등-대학 과정을 마친 후 고베제강소 사원으로 근무하다 1982년 당시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했다. 1991년 아버지 사망 후, 1993년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진출했다. 이후 내리 8선에 성공하여 9선 의원이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집권기 자민당 간사장, 내각 관방장관(内閣官房長官·총리 비서실장 겸 정부 대변인) 등 요직을 역임했고,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됐다. 이후 건강상 문제로 2007년 총리·자민당 총재를 사임했다, 2012년 재취임, 2020년까지 집권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썼다.

기시다 후미오 자유민주당 신임 총재가 지난 9월 29일 도쿄 지요다구에서 열린 총재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후 마스크를 끼며 연단을 떠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자민당 55년 체제 성립 후 장기 집권…세습의원 비중 높아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의 경력도 대동소이하다. 조부는 기시다 미사키(岸田正記) 중의원, 아버지는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 전 중소기업청 장관(청장)이다. 와세다대학 법학부 졸업 후 1987년 기시다 후미타케 중의원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 아버지 사망 다음 해인 1993년 지역구 히로시마현 제1구를 물려받아 정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후 방위·외무대신, 자민당 정무조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다, 지난 10월 자민당 총재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제100대 총리가 됐다.

‘포스트 아베’로 꼽히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성 대신도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계 은퇴 후, 지역구를 세습하여 불혹(1981년 생)의 나이에 5선 의원 중의원이 된 경우다. 이른바 ‘금수저’ 정치인들은 지지 기반·지명도·자금력 3대 요소 뒷받침 하에 정계 입문 후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식 민주주의에 드는 또 하나의 의문점은 행정 수반인 내각 총리 선출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 대표가 맡는다. 같은 군주제 국가인 영국의 경우, 집권 여당 대표(당수)가 여왕을 알현하고, 여왕이 공식 명칭이 ‘여왕 폐하의 정부(Her Majesty’s Government·HMG)’인 영국 정부 구성을 명령하는 형식을 취한다. 반면 1955년 이래 자민당 장기 집권 하에서 ‘자민당 총재=내각 총리’ 등식이 성립한다. 지난 9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자민당 총재 사임 후 치러진 총재 보궐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가 선출됐고, 차기 총리로 지명됐다. 총리 취임 후 중의원 해산을 결의하고 총선을 치른, 보기에 따라서는 앞뒤가 뒤바뀐 절차를 밟았다. 모두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빚은 일이다.

‘자민당 총재=일본 총리’ 등식 속에서 총리는 평균적으로 단명하고 있다. 평균 임기는 1.36년에 불과하다. 전후 평화 헌법 체제 하에서 하타 쓰토무(羽田孜)는 재임 64일로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고, 아베 신조는 2824일 연속 재임(1차 내각까지 합치면 3188일)하여 전전·전후 최장수 총리가 됐다. 짧은 총리 임기는 정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익유도형 정치, 야권 대안 부재…자민당 장기 집권 불러

자민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이른바 ‘1955년 체제’ 성립이다. 1950년대 일본에 몰아친 사회주의 열풍에 맞서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당하여 거대 보수 정당이 출범했다. 이후 1960년대 사회당·공산당 몰락 속에서 자민당 장기 집권체제는 고착화됐다. 자민당은 지지 기반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키고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고 이익유도 수단으로 종속시킴으로써 표를 얻어 왔다. ‘일본형 이익 유도 정치’다. 자민당이 본격 집권했던 1960~1970년대 일본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국민들의 지지가 굳어졌다. 특히 중·장년층에겐 ‘자민당이 하면 잘 먹고, 잘 산다’는 뿌리 깊은 신념이 박혀 있다.

둘째 야권 분열과 대안 정당 부재이다. 지난 8월, 스가 내각 지지율이 20%대로 붕괴했던 8월 기준, 입헌민주당(6.4%), 공산당(3.3%), 국민민주당(0.8%), 사민당(0.5%), 레이와(0.2%) 등 5개 야당을 다 합쳐도 지지율이 11.2%에 불과했다. 일본 민심이 야당을 자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집권 세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베·스가 정권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아도 “대안이 없다”며 자민당을 찍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단일화를 이뤘지만, ‘공산당’이 낀 야권에 일본 국민들은 불안감을 보였고 이는 지지층 이탈로 이어졌다.

셋째 다양한 성향의 소속 의원들이 모인 자민당의 경쟁력이다. 극우부터 중도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선거에서 유리하다. 유권자들이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분위기면 다른 성향의 후보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정치 무관심도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한몫했다. 자민당에 대한 불만이 많지만 정작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좀처럼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총선 투표율이 69%였던 2009년 자민당은 민주당에 집권당 자리를 내줘야 했다. 자민당이 다시 내각을 차지한 2012년에는 투표율이 60%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55.98%였다. 이 속에서 자민당의 장기 집권 기록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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