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오리, 톈진서 파룬궁 수련자 체포 통해 정국 교란 (상)

2015년 12월 15일
업데이트: 2020년 4월 24일

올해 8월 톈진에서 일어난 초대형 폭발사건이 중국 지도부 권력투쟁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올해 톈진에서는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대규모 체포 사건이 발생,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장쩌민의 심복인 장가오리가 톈진에서의 세력기반을 이용해 일부러 파룬궁 문제를 기회 삼아 일을 벌임으로써 시진핑을 묶어 두고 반부패운동을 중지하도록 하려는 의도다.

정국 중요 시기마다 파룬궁 이용해 시진핑 방해

2012년 왕리쥔(王立军)의 미국 영사관 도피 사건 이후, 시진핑을 노린 중공 내 장쩌민파의 정변 음모가 폭로됐다. 장쩌민이 퇴임 이후에도 ‘수렴청정’하며 후진타오를 허수아비꼴로 만들고 여러 차례에 걸쳐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암살하고자 한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후진타오와 시진핑이 파룬궁 박해 정책을 중지할까봐 두려워서다.

장쩌민 일가 삼대는 2015년 1월 3일 하이난다오의 유명 관광지인 완닝둥산링(万宁东山岭)에서 모습을 드러내  ‘동산에서 재기하다(东山再起)’라는 사자성어처럼 다시 세력을 회복했음을 암시했지만, 바로 직후 대륙 미디어에서 전면 삭제됐다. 이후 장쩌민의 장남인 장몐헝이 중국 과학원 상하이지부 원장직에서 해임된 것을 필두로 측근 가운데 다수가 실각했다.

이후 2월 13일, 톈진의 ‘보스급 첫 호랑이’였던 톈진시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자 톈진시 공안국 국장인 우창순(武长顺)은 당적을 박탈당하는 동시에 직위해제됐다. 우창순은 저우융캉이 한때 뒤를 봐 주던 심복으로서 작년 저우융캉 사건이 공개되기 이전에 이미 조사를 받았던 바 있다. 1999년 우창순이 톈진시 공안국 부국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톈진에서 일어났던 ‘톈진 사건’은 중국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한 ‘4.25 중난하이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일주일 뒤인 2월 25일, 중공 기율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장쩌민의 참모 쩡칭훙을 겨냥하는 내용의 <청나라 ‘뤄관(裸官)’ 경친왕의 품행 문제>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시진핑의 반부패운동이 장쩌민, 쩡칭훙 두 ‘호랑이’를 타겟으로 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가오리가 한때 재임했었던 톈진에서는 중공 ‘양회’가 열리기 전인 3월 2일부터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 사건이 발생, 밍후이넷(明慧网)에 따르면 최소 37명 이상의 수련자들이 납치되었으며 공안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약 60~70명 가량이 체포됐다. 화북 지역에서 민중 수천 명의 서명과 지장 날인을 바탕으로 석방된 바 있는 파룬궁 수련자 저우샹양(周向阳)과 리산산(李珊珊) 부부 역시 체포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에 일어난 대규모 체포는 현 톈진시 공안국 국장 자오페이(赵飞)의 주도로 일어난 것이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이미 톈진시 전역을 대상으로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미행 조사를 진행해왔다. 원래 후베이성 우한시 공안국 국장, 우한시 정법위원회 서기이자 우한시 ‘610 판공실’ 주임이었던 자오페이는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한 죄과로 인해 현재 파룬궁박해 추적조사 국제조직(WOIPFG)이 발표한 조사 공고문에 올라 있다.

중국 전문가인 콜롬비아대학 정치학 박사 리톈샤오(李天笑) 의 분석에 따르면 현 공안부 부장 궈성쿤(郭声琨)은 쩡칭훙의 이종생질인 만큼, 자오페이를 톈진시 공안국 국장직에 발령한 인사이동은 궈성쿤의 의도였을 가능성도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공안부는 시진핑 방미 전인 7월 10일 급작스럽게 인권변호사를 대거 체포, 그 중 적지 않은 인원이 톈진에 구금됐다.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중공 내 장쩌민파의 대규모 체포 사건으로 인해 중공에 대한 외부의 비난이 거세진 동시에, 장쩌민파는 한편으로 3월 23일 시진핑의 파키스탄 방문 일정을 틈타 시진핑을 탄핵시키고자 기도했으나 후진타오, 리뤼환(李瑞环) 등 전임 중공 지도자들의 협조를 얻지 못해 무산됐다.

이에 대해 리톈샤오는‘최근 몇 년간 중난하이의 권력 투쟁이 중요한 시점에 이를 때마다 장쩌민파는 항상 정치법률 시스템에서의 세력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강화, 외부로 하여금 이를 시진핑의 뜻으로 오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파룬궁을 이용해 정국을 뒤흔들었다. 사실 이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는데, 만일 시진핑이 정말로 장쩌민 일파처럼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면 장쩌민은 애초에 시진핑을 적으로 돌리고 정변을 계획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원시보 추적에 따르면, 2012년 왕리쥔 사건 이후 줄곧 홍콩 가두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의 진상규명 시위를 방해해온 청관회(青关会)는 6월 10일 창설됐다. 중공 국신판(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공 내 장쩌민파의 물밑 작업을 바탕으로 2014년 6월 10일 급작스럽게 백서를 발표, 이에 자극받은 홍콩인들은 급기야 ‘우산 운동’을 일으켰다. 6월 10일이라는 날짜는 장쩌민이 파룬궁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한 법외특무기관인 ‘610판공실’의 창설 일자인 1999년 6월 10일과 같다. 즉 장쩌민파는 마치 ‘보면 알지?’라고 얘기라도 하듯이 일부러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현 정국과 파룬궁 문제와의 연관성을 외부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장가오리,  톈진 대규모 박해 지시해 장쩌민 고소 저지

베이징 최고법원이 올해 5월 1일 ‘사안이 있으면 무조건 입안하고, 고소가 들어오면 무조건 살펴본다’는 방침을 공표한 후, 중국 국내외에서는 장쩌민 고소 운동이 일어나 지금까지 약 2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여했다. 밍후이넷 보도에 따르면 톈진에서는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최고검찰 및 최고법원에 고소장을 우편으로 접수했다.

2015년 6월 24일 파룬궁 박해 추적조사 국제조직(WOIPFG) 조사원이 장쩌민 사무실 비서를 사칭해 당시 카자흐스탄을 방문 중이던 장가오리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장가오리는 장쩌민이 파룬궁 수련자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치국 회의에서 장쩌민에 대한 조사를 저지하겠다’고 승낙했다.

대기원시보가 입수한 내부 소식에 따르면, 장가오리는 장쩌민을 고소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보복 및 방해를 톈진시 공안에 지시했다. 밍후이넷 보도에 따르면 6~10월 기간 중 파룬궁 수련자 139명이 구금 및 가택수색 피해를 당했고 이들 가운데 4명은 불법으로 체포되었으며 29명은 불법 구류를 당했다.

한편 6~8월에 걸쳐 중국 정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저우융캉이 6월 11일 1심 판결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주식 시장이 폭락했고, 7월 10일에는 인권변호사에 대한 대규모 체포가 있었으며 7월 24일에는 저우융캉의 심복인 허베이성위원회 서기 저우번순(周本顺)이 체포됐다. 8월 12일에는 톈진에서 초대형 폭발이 일어났다.

리톈샤오의 분석에 따르면 시진핑이 취임 이후 장쩌민파를 하나하나씩 숙청하고 있는 가운데,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파 내 ‘학살자 일파’ 역시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후의 발악을 할 수밖에 없다. 중공 제18차 전국대표회의 이전 보시라이를 이용해 정변을 꾀했던 장쩌민파의 음모는 발각되었고, 올해 3월 또 한 차례의 정변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났으며, 7월 ‘경제정변’은 금융계에 대한 시진핑의 대청산을 유도했을 따름이고, 톈진 대폭발 등의 사회 혼란 유발 역시 의도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손실만 입었다. 현재 ‘학살자 일파’에게 남은 유일한 가용 수단은 중공의 원래 체제 및 박해정책을 이용, 정치∙법률 시스템 각층에 포진한 세력에게 지시를 내려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강화함으로써 시진핑을 압박하는 방법뿐이다.

리톈샤오는 이어서 “현재 시진핑의 주요 관심사는 군사 개혁과 동시에 금융계를 통해 세력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상하이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으로서, 공안, 검찰, 법원 고위층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시진핑의 세력 공고화에 있어 방점은 군대의 안정에 있으며, 군사 개혁을 통해 장쩌민파 세력을 축출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리톈샤오는 “군대는 군령에 절대복종하는 비교적 폐쇄적인 시스템으로서 상명하복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군사 개혁 방안이 일단 실시되고 나면 장쩌민파 세력은 신속하게 청산될 것으로 생각되며, 그 후에는 정치∙법률 시스템 내 공고한 장쩌민파 세력을 중심적으로 청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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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옌(谢东延)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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