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에도 없는 ‘띄어쓰기’ 한글에 최초로 도입한 사람의 진짜 정체

윤승화
2019년 12월 28일 업데이트: 2020년 1월 2일

만약띄어쓰기가없었다면어땠을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문장에한참고민하지않았을까.

당장옆나라일본과중국만해도띄어쓰기가없어처음글을접하는사람들은읽고쓰기어려워한다.

그렇다면우리나라한글에는처음부터띄어쓰기가존재했을까? 아니,훈민정음만봐도띄어쓰기가없었다.

이런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박사가 띄어쓰기를 도입한 주인공이다.

연합뉴스

미국 버몬트주의 명문가 자제였던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조선에 영어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 땅에 왔다.

이후 헐버트 박사는 미국인이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한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상에서 조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3년 만에 한국어를 익힌 헐버트 박사는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 같은 점찍기를 최초로 제안, 도입했다.

“‘장비가 말을 타고’와 ‘장비 가말을 타고’의 의미는 천지 차이다”

한글로 쓰인 최초의 교과서도 헐버트 박사가 만들었다. 고종에게 건의해 국문연구소를 만들도록 했다.

SBS 뉴스

고향인 미국에는 “한글이 영어보다 더욱 훌륭하다”며 우리 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우리 말을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

그밖에 민중들 사이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을 최초로 문서에 기록해놓았고, 고종의 밀사로 파견돼 서양 열강들에 일제의 침략 야욕을 폭로했다.

헐버트 박사는 이런 족적을 남긴 끝에 결국 일제에 의해 한반도에서 쫓겨나 광복 후에야 올 수 있었다.

1949년 7월 29일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 박사는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인 8월 5일 이땅에서 숨을 거뒀다.

헐버트 박사는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현재 헐버트 박사는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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