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시비 핵심은 中 공산당의 역사왜곡”

[인터뷰] 명지대 강규형 교수
이윤정
2020년 11월 8일
업데이트: 2020년 11월 15일

“공산당 주장한 ‘6·25 내전설’ 국내에도 만연…역사교육 재정립 절실”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출신 아이돌들이 SNS에 항미원조 70주년을 기념하는 게시물을 잇달아 올려 논란이 됐다.

국내에서는 이들의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중국의 한국전쟁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중국인 연예인들의 한국 활동 제재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등장해 현재 2만 7천 명 이상이 동참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는 중국 공산당이 한국 전쟁을 부르는 표현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도운’ 전쟁으로 가르치고 중국 교과서는 북한의 6·25남침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한반도 내전에 미군이 개입해 중국의 안전을 위협했다며 중공군 참전의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중국 국적 아이돌들이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중국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는 “중국 정부의 지령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무언의 압력 때문에 자국에서 배운 대로 여과 없이 표현한 것 같다”며 “유명 아이돌의 역사 왜곡 발언은 K팝 열풍을 타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소년, 소녀 팬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탄소년단(BTS) 밴 플리트 상 수상. 2020.10.07. | 홈페이지 화면 캡처

BTS 수상소감에 과민 반응…공산당은 선전선동의 귀재

앞서 지난달 7일 방탄소년단(BTS)의 밴 플리트 상 수상소감에 대해 중국 네티즌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언급한 발언이 ‘항미원조’에 관한 것으로 취급되며 웨이보에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이 쏟아지고 ‘아미(BTS 공식 팬덤) 탈퇴’ 등이 중국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강 교수는 “BTS가 엄연한 역사적 팩트를 가지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한 것인데 이런 일로 시비를 거는 건 참 치졸하다”며 “이런 반응은 중국에 득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와 국격을 실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밴 플리트 상은 큰 의미가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한국 전쟁에 미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활약했다. 그와 함께 공군 파일럿으로 참전한 외아들이 전쟁 중 격추됐지만, 사망 유해를 찾지 못했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 임무 수행을 위해 아들을 찾는 수색작업을 중단시켰다.

밴 플리트 상은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1995년부터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이번 사태는 해외에서도 이슈가 되며 아이돌의 수상소감까지 문제 삼는 것은 도를 넘은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기업들은 BTS를 내세운 광고를 내리기도 했다. 사드 보복으로 한한령(限韓令)을 경험한 기업들이 손실을 우려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강 교수는 “강아지 훈련하듯 순치하려는 의도”라며 “개인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기도 하고 역사적 팩트를 부정하는 이중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 분야 검열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고압적 행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공산당을 반대하거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내용도 금지되고 해당 연예인에게 보복을 가하는 등 거대한 시장을 이용해 폭압적인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周子瑜·21)가 지난 2015년 11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 국기를 흔드는 장면. 중국 측의 ‘대만독립 분자’ 비판 끝에 쯔위는 사과 방송을 해야 했다. | MBC ‘마리텔’

2016년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의 비난을 받고 소속사까지 나서서 사과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중국 자본이 미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와 있어 영향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BTS 수상소감에 집단으로 비난이 쏟아진 것에 대해 “우마오당(五毛黨·중국 인터넷 댓글부대)과의 관련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국과 별로 관계없는 일에도 이상한 댓글들이 많이 달렸는데 이런 일에 우마오당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며 “아직 이들 댓글부대의 조직적 활동을 명확히 밝혀내기는 어렵지만, 중국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켜 대중들이 현혹되기 쉽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환구시보 등 중국 공산당 기관지 계열신문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네티즌의 반감 여론을 부추기고 공론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후 논란이 일자 해당 기사는 슬그머니 내려졌다.

강 교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돈 안 들이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 선전전”이라며 중국 공산당의 ‘미군 생화학전(세균전)’ 주장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이는 미군이 한반도와 중국 일부 지역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내용이지만,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오류라는 게 구소련의 기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인 조지프 니덤조차 미군 세균전 주장을 믿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의 선전선동은 집요하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단둥 항미원조 기념관의 한국전쟁 배경 설명 | 항미원조기념관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항미원조’ 띄우기는 내부 결속 강화 시도

강 교수는 최근 중국 공산당이 항미원조 기념관을 재개관하고 항미원조 70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벌이는 등 애국주의 고취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초조함의 표현”이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70년이 되는 날을 앞두고 베이징에서 열린 항미원조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한국전쟁을 “미국 침략에 맞선 불가피한 대응”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에 대항하자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더불어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영화, 다큐멘터리가 중국에서 줄줄이 개봉됐다.

강 교수는 “중국은 자체적 위기상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붕괴 일보 직전”이라며 “14억 인구를 컨트롤하고 대내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선전선동과 세뇌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6·25 전쟁에 대한 왜곡 실태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부연했다.

그는 “구소련의 기밀문서와 중국의 문서가 해제되면서 6·25 전쟁이 소련·중공·북한이라는 공산 세계가 자유 세계 전체에 던진 심각한 도전이었다는 전모가 완전히 실증됐다”며 “요즘에는 중국 학자들이 이런 자료를 기초로 올바른 역사를 저술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여전히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학계와 사회에도 한국 전쟁에 대해 ‘자연발생적 내전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상당수 역사 교과서가 6·25 전쟁을 왜곡하고 있다”며 “올바른 역사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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