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용기 위니아트 대표 “지자체 문화재단 독립성 보장해야”

이윤정
2022년 08월 15일 오전 8:30 업데이트: 2022년 08월 15일 오후 12:06

공연장 경영에 문화·예술 전공자 참여 확대
공연 메카 대학로 살리자…제2의 BTS 기대
문화강국이 선진국…정부 관심·지원 절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은 독주에서 오케스트라까지 클래식은 물론 대중음악·연극·무용·뮤지컬 등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이다. 계단형 단층 구조의 공연장 뒤편, 객석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곳에 김용기 위니아트 대표의 사무실이 있다. 805석 규모의 공연장에 들어서자 피아노계의 명품인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중앙에서 위용을 과시한다.

“사석(死席·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좌석)이 없어 웬만한 1000석 규모 공연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김 대표의 말과 표정에 공연장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1997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공간 전문운영회사 ‘위니아트(We need Art)’를 설립해 이끌고 있는 김용기 대표는 문화예술공연 분야 전문가이다. 현재 건국대 예술디자인 대학원 초빙교수로도 활동 중인 김용기 대표는 2015년부터 3년간 서울 광진문화재단 초대 사장을 지냈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 한국예술행정협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문화예술 저변 확대를 위한 각종 기부 활동을 비롯해 저소득 아동과 다문화 가족을 초청해 무료 공연 개최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나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8월 12일, 문화예술계 권익과 문화소외계층 보호에 앞장서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 대표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돈텔파파의 청년 시절

-어릴 적 꿈이 예술가였다면서요?

“제 별명이 ‘돈텔파파(Don’t tell papa·제발 아빠한테 말하지 마세요)’였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김 대표는 부모님 몰래 예술가의 꿈을 키우던 지난날을 고백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어요. 아버지가 96세이신데 지금도 노래를 정말 잘하세요. 그 피를 이어받은 거죠. 중앙고등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음대 지망 선배들로 구성된 남성 4중창 아카펠라 팀의 노래를 듣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전율을 느꼈습니다. 나 저거 해야 돼… 그 후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그렇게 음악에 꽂혀버린 아이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노래만 불렀다. 물론 집에는 비밀로 한 채.

“시험공부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성악가였던 음악 선생님은 음대 진학을 권유했지만, 저명한 학자 집안 아들인 걸 학교에서도 다 아니까 담임 선생님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부모님 몰래 레슨도 받으러 다니고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학교 음악실에서 발성 연습에 몰두했어요.”

-3년 동안 비밀을 유지했다는 게 놀랍군요.

“아버지는 평생 공부만 하신 학자셨고 자식들한데 공부하라는 말씀도 안 하셨어요. 어머니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아들이 공부하러 도서관 가는 줄 알고 용돈을 듬뿍 쥐어 주셨죠.”

문학박사이자 한글학회 회장까지 지낸 원로 국문학자 김승곤 교수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대표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재수를 통해 건국대 법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3년간 노래만 했어도 1년 만에 입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울 정도의 암기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다. “대학 시절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입선했었다”는 김 대표는 부친의 뜻에 따라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마침내 꿈을 이루다

“아이들을 데리고 문화 공연을 보러 다니면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랍니다”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문화예술계 권익과 문화소외계층 보호에 앞장서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임호/에포크타임스

-은행원과 예술가?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가풍을 거스를 순 없었지만, 마음 한 켠에 늘 음악이 자리하고 있던 김 대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91년에 은행장을 설득해 고객 서비스의 일환으로 클래식 음악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1870석 규모의 KBS홀에서 개최한 ‘VIP 고객 초청 클래식 음악회’가 요즘 말로 대박이 났어요. 당시 은행장이 4000만 원 들여서 400억 원 효과를 봤다고 칭찬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하고 싶었던 예술의 끈을 다시 잡게 된 도화선이 된 거죠.”

이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은행에서 돈 세는 일 대신 고객을 위한 문화행사를 기획·추진하는 일을 주로 맡게 되면서 공연 기획의 실무 경험과 문화예술 분야 경영을 체계적으로 익혀 나갔다. 마침 모교인 건국대에서 새천년 대공연장과 국제회의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은행장 비서직을 마지막으로 은행 생활 10년을 마무리한 김 대표는 1997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공간 전문운영회사인 위니아트를 설립하며 문화예술계에 정식 입문했다.

“개인이 대형 공연장을 운영하는 건 제가 우리나라 최초이면서 유일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공연장은 전부 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거나 대기업 후원을 받아 운영됩니다. 자생 공연장은 지금도 여기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23년째 제가 벌어서 직원들 월급 주고 운영합니다. 지자체에선 10원도 안 받습니다.”

-꿈을 이루신 건가요?

위니아트는 가톨릭 대학교 콘서트홀, 고려대 화정체육관, 호원대 호원아트홀 등을 운영하는 회사로 성장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김 대표는 지난 2000년부터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과 우곡국제회의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여 년 전 저를 벤치마킹해서 공연 사업을 벌인 곳이 있지만, 다 없어졌어요. 입출이 안 맞는 겁니다. 이 일로는 돈 벌기 힘들어요. 수입에 비해 지출이 너무 많고 관리비만 해도 어마어마하니까요. 사실 여기도 마이너스라 다른 데서 충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고 이 일이 너무 좋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 행복하죠. 평생 할 겁니다.”

그는 현재 컴퓨터용품을 수입해서 납품하는 기업 테라시스를 운영하고 있다. 가상(virtual)시스템 스튜디오와 마블 테마파크 사업도 준비 중이다.

문화 재단 독립성 보장해야

김 대표는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임호/에포크타임스

-광진 문화재단 초대 사장을 지내셨죠?

“광진구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좋은 곳입니다. 대학도 많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죠. 과거 문화·예술의 거리로 유명했던 홍대가 퇴폐의 거리로 바뀐 걸 보면서 이곳만큼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살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서울 광진구는 건국대 새천년관을 비롯해 어린이대공원 돔아트홀, 세종대 대양홀, 나루아트센터 등 대형 공연장이 운집해 있다. 김 대표는 광진구청과 함께 ‘광진구 문화벨트’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 먹자골목 맞은편 능동로 분수 광장에서 사비를 들여 매주 토요일 저녁 다양한 인디밴드와 예술가들의 거리 공연을 활성화했다. 청소년들의 탈선 공간으로 전락했던 곳은 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 대표는 ‘2014년 광진구 문화·예술분야 구민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문화 사업을 제대로 해보고자 치열한 공모 절차를 거쳐 광진문화재단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취임 후 여러 가지 고초를 겪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문화재단의 독립성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셨던데요?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산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산 권한을 가진 구의회가 공연이나 직원 채용까지 간섭하면서 압력을 넣더군요. 문화 관련 전문성이 결여된 구의회의 이러한 영향력은 재단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예산이 삭감되면 재단 운영이 위축되거나 차질을 빚게 되니 결국 문화재단이 구의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전국적으로 200개가 넘는 문화 재단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문화재단에 정치권력이 개입해선 안 됩니다. 문화재단이 지역마다 특색 있는 문화를 발전시키고 지역 주민들이 문화를 향유하게 도와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선 재단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사장은 투명하게 공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산 권한을 구의회가 아닌 기획재정부나 문화체육관광부에 주거나 문화 전문가로 구성된 TF팀을 꾸려서 문화 전문가들이 예산을 심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구의회는 ‘감사’ 기능만 있어도 감시와 견제를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문화 재단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독립적 권한을 인정해주면 예술 창작에 매우 많은 발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연장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대표는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 다른 공연장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예술의전당은 그 이름에 걸맞게 예술인들이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문턱이 자꾸 높아지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대관 절차와 적지 않은 대관료 지급 때문에 오히려 전문예술인들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훌륭한 작품, 공연을 많이 만들어서 기획공연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대관수입, 임대 수입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으로서 예술의전당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 전공자를 의무 고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100여 개의 문화공간(공연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직원 중 예술 전공자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예산 확보를 통해 기획공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인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사장, 직원 모두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뽑아야 하고 예술 감독도 초빙하고 해서 훌륭한 창작 공연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죠. 또 하나 중요한 건 예술 전공자를 의무 채용하자는 겁니다. 300석 이상, 1년에 30일 이상 공연하는 공연장은 성악가, 바이올리니스트, 화가 등 예술 전공자를 의무 고용해 기획·경영·행정 등 업무에 참여시켰으면 합니다. 운영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고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대학로 살리기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명품 스타인웨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용기 대표 | 임호/에포크타임스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대학로 연극 주연급 배우 출연료가 얼만지 아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알면 쓰러질 것”이라며 “주연은 6~7만 원, 조연은 5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마저 기회가 없어 배우들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공연의 메카인 대학로가 알고 보면 매우 허약한 구조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대학로에 100석 미만 소극장을 포함해 중·대형까지 합쳐 200여 개의 극장이 있습니다. 대부분 개인 소유인데 다들 운영이 어렵고 상당수가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50석 공연장에서 공연이 흥행에 성공해도 티켓은 1~2만 원인데 하루 대관료가 80만~100만 원입니다. 거기서부터 마이너스죠. 영세한 예술 제작자, 예술단체들에는 극장 대관 자체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분들 일류대학 나오고 외국 유학한 사람도 많은 데 정말 아까워 죽겠어요.”

그에 따르면, 제작자가 작품 제작을 위해선 배우 출연료, 대관료, 의상·소품 비용, 홍보 등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창작 공연은 초연 흥행 성공률도 희박한 데다 공연이 실패하면 부채로 인해 제작자가 잠적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공연기획자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 창작 공연물이 탄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공연 실패로 그런 기회가 차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자영업자들한테 지원금 준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매물로 나온 공연장을 정부 예산으로 사들여서 제작자, 예술단체가 최소한의 대관료만 지불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문화 발전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겁니다. 소유권은 정부가 가지되 관리·운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민간 전문기업에 위탁하면 됩니다. 하루 전기료 1만 원씩만 받고 예술인들이 부담 없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많은 창작물이 나오겠어요. 기초공연예술 발전으로 제2, 제3의 BTS가 나올 겁니다.”

김 대표는 방송통신대학을 방송특화지역인 상암동으로 이전하자는 제언도 했다. 그는 대학로 주차 문제를 꼽으며 방통대가 굳이 대학로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방통대 자리에 대형 지하 주차장과 지상 복합문화공간을 설립해 공연장, 미술관, 메타버스 미디어 창작공간, 문학 공유공간 등으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문화강국이 선진국

-현대인에게 문화·예술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비타민이죠. 건전한 사회생활을 위한 재충전 기능을 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클래식 음악이나 연극 같은 문화 공연을 보러 다니면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랍니다. 어릴 적부터 문화공연을 접하게 해주는 게 훌륭한 교육 방법의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중국이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드라마, 음악, 애니메이션, 연예 기획 등 우리 문화·예술계와 콘텐츠를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문화가 강한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수입에 0이 하나 더 붙으니 예술인, 기획사들이 중국으로 갈 수 밖에요. 개인이나 기업에 맡기는 건 한계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문화면에서 대단한 강점을 가진 나라입니다. 정부가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면서 정책적으로 키우고 보호하지 않으면 다 뺏길 수도 있습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또 있나요?

“아까도 언급했듯이 정부의 관심과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이 필요합니다. 예술이 지원에만 너무 의존해도 제대로 된 창작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연 수익이 안 나오고 창작과 공연이 위축되는 어려운 상황에선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김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캠프에 13가지 문화정책을 제언했다. 여기에는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지자체 문화재단 자율권 부여, 문화·예술 전공자 의무 채용, 공연장 개선 방안, 대학로 공연장 무상 지원 방안 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 분리 △다문화가족청 설립 △재외국민 문화·체육행사 지원 △건축물 미술작품제도 개정 등이 포함됐다.

-앞으로 계획은요?

“제가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문화예술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환경 개선, 처우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