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왜?…中공산당 윤리위, 90년 전 변절자 언급하며 충성 강조

2021년 6월 23일
업데이트: 2021년 6월 23일

 

중기위, 국민당에 투항해 기밀정보 넘긴 고위인사 규탄
시진핑은 당 고위간부 이끌고 “비밀 엄수, 배반 금지” 맹세

중국 정보기관 고위급 인사가 미국에 망명, 기밀정보를 넘겼다는 루머가 중화권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 공산당이 90년 전 사건을 갑자기 거론하며 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해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고위급 인사의 망명설을 부인하려면 해당 인사가 현재 중국에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면 될 일을, 왜 수십 명의 처형으로 이어진 해묵은 사건까지 끄집어내며 모골이 송연한 기억을 들춰내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산당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해당하는 중앙기율위원회(중기위)는 19일 국가감사위원회 홈페이지에 당 초기 지도자인 구순장(顧順章)의 변절을 회고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게시물에는 ‘고전을 다시 읽으며 앞길을 다진다’라는 제목에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저 말뿐인 맹세가 아니다’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 게시물은 1931년 5월 21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반역자’ 구순장의 당적 박탈을 선언하고 제223호 통지문을 그대로 재탕한 것이었다. 당시 통지문의 제목이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저 말뿐인 맹세가 아니다’였다.

공직자 기강을 책임지는 중기위가 이날 이런 게시물을 낸 배경에 대해서는 최근 불거진 고위급 미국 망명설이 거론된다.

지난 17일 미국 보수매체 ‘레드 스테이트’는 중화권 인사들의 트위터 등을 소개하며 중국 국가안전부 2인자인 둥징웨이(董經緯) 부부장(차관)이 미국에 망명, 미 국방정보국에 테라바이트급(기가바이트의 약 1천배 분량) 정보를 넘기고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자체 소식통을 통해 해당 보도를 사실로 확인했다며 둥 부부장이 넘긴 정보에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벌인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비롯해 중국 기밀 무기 프로젝트, 중국의 미국 내 정보원과 자산 등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해당 보도에 대한 사실확인을 해주지 않았고, 중국 정부도 아무런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보도가 나가고 다음 날인 18일 중국 관영매체가 일제히 ‘국가안전부 둥징웨이 부부장’ 주최로 방첩 강화 회의를 열었다는 기사를 내며 우회적으로 반박했을 뿐이다.

매체 수십 곳에 실린 이 기사는 글만 실렸을 뿐 사진이나 영상이 없어 둥징웨이 부부장이 실제로 회의에 참석했는지에 대해 오히려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지난 18일 시진핑 총서기와 리커창 총리를 포함한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베이징의 공산당 역사 전시관을 방문해 당에 대해 충성하고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있다. | CCTV 화면 캡처

구순당, ‘기밀정보 쥔 고위급의 변절’ 둥징웨이 연상케 해

중기위가 19일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물에서 언급한 구순장은 중국 공산당 초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1924년 상하이시 노동조합 총연합회에 들어가면서 입당했으며 1926년 소련에 파견돼 정치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순장은 변절 전 중앙정치국 후보위원을 지냈고, 특별행동과(特別行動科) 책임자를 지내며 중앙의 전반적인 안보를 책임지던 인물이다. 미국 망명설에 휩싸인 둥징웨이 국가안전부 부부장과 겹쳐진다.

구순장은 1931년 국민당에 체포된 뒤 변절했다. 그는 우한의 공산당 지하 조직과 연락망에 대한 정보를 넘겼고, 이로 인해 공산당원 10여 명이 체포돼 처형됐다.

구순장은 더 나아가 국민당 지도자인 장제스(蔣介石)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대가로 상하이의 공산당 조직과 지도부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중기위는 게시물에서 구순장은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곧 체포돼 수감됐으며 1935년 수쩌우 감옥에서 31세의 나이로 처형됐다고 전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진실 중 하나’라는 책에서는 구순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구순장은 상하이에서 저우언라이와 함께 오랫동안 중국의 지하활동을 담당했으며 직접 특수행동과의 무장조직 지도자를 맡아 공산당을 배반한 이들을 여럿 살해했다. 그의 대외적인 신분은 유명 마술사 화광치(化廣奇)였다고 한다.

구순장은 당내 지위가 높고 가족들이 공산당의 지하공작에 많이 참여했기에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다. 그가 국민당에 투항한 뒤 상하이의 지하 조직은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신분을 감추고 있던 공산당 고위인사도 발각돼 처형됐다.

치명적인 배반을 당한 저우언라이 역시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했다. 국민당의 체포를 피한 저우언라이는 딸 구리쥔(顧利群·당시 8세)과 처남 장창칭(張長庚·당시 12세)을 제외한 구순장의 일가친척 39명을 전부 살해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책에서는 구순장의 최후에 대한 서술이 중기위 게시물과 좀 다르다. 구순장이 공산당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다가 처형된 것으로 나온다.

6월 18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리커창 총리 등 당 중앙 관리들과 함께 공산당 당사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당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단체 선서를 했다. | CCTV 화면 캡처

전날 시진핑 “절대 당을 배신하지 않는다” 선서 주도

국가안전부 둥징웨이 부부장의 미국 망명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변절자를 규탄한 중기위 19일 게시물뿐만이 아니다.

하루 전인 18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공산당 중앙 관료들을 이끌고 중국 당사(黨史) 전시관을 방문해 입당선서문 앞에서 “당의 비밀을 지키자”, “절대 당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집단 선서했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공교롭다.

같은 날 중국 관영매체에 실린 둥징웨이 부부장의 국가안전부 방첩회의 주최 기사에서도 주된 내용은 “몇몇 개인은 기꺼이 내부 첩자가 돼 외국의 정보기관이나 적대 세력과 은밀하게 결탁해 반중 활동을 하고, 일부는 배후 물주 노릇을 하며 적대 세력에 자금을 지원해 반중 활동을 지원한다”였다.

둥징웨이 부부장이 정말로 중국을 탈출해 미국에 망명했으며, 기밀 정보 다수를 넘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내부 인사의 탈출과 변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 전직 외교관이자 ‘중국의 첩보공작: 정보입문’의 저자 매튜 제임스 브라질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은 해외에서 떠도는 루머를 타파하려 했지만, 여전히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내가 이번 루머를 해소하는 역할을 맡은 중국 측 책임자였다면 둥징웨이의 사진이나 그의 딸의 성명을 기사에 첨부했을 것”이라고 “그들(중국 공산당)에게는 더 나은 담당자가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하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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