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韓, 원칙에 입각한 당당한 외교 해야”

2021년 10월 14일
업데이트: 2021년 10월 14일

“美·中 사이 모호한 입장, 양국에 잘못된 시그널 보내는 것”
“韓, 한중수교 전후 20년 중국으로부터 대접받아”
“일본과 관계,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고, 일본은 지난 4일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 총서기는 내년 연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쿼드·오커스와 같이 동맹국과 협력하여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를 잡아야할까? 경색된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한국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외교 방향을 모색하고자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을 찾았다.

이준규 한국외교협회 회장은 에포크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늘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가 상충하고 있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라고 운을 뗐다.

 

중국의 미국 맞서기, 시기상조의 성급한 판단이었다

이준규 외교협회장은 “중국은 내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될 때까지 대미 강경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중국 국내 문제들로 미국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대국으로 올라서려 한 것은 시기상조의 성급한 판단이었다”고 지적했다. 국력은 경제, 군사, 안보, 정치 및 소프트 파워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국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90년대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말했다. 이 회장은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이같은 기조가 변했다며 “중국이 미국에 대항할 만큼 국력이 커진 것처럼 국민에게 말하고, 애국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중국 굴기의 위험성을 인지한 미국은 중국의 반발에 개의치 않고 쿼드, 오커스와 기존 동맹 강화를 통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은 오래전한미 동맹선택했다

일각에서는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국이 양국 간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이준규 외교협회장은 “우리가 중국을 선택하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이준규 회장은 “개별 사안에 따라서 미중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많을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오래전 ‘한미 동맹’이라는 확실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국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한 인상은 미중 모두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며 “이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여 중국에 쓸데없는 희망을 가져 외교정책 방향을 그르치는 우를 피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이라는 외교 자산을 충분히 활용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북한이나 중국에도 한국은 미국의 ‘깐부’(친한 친구를 뜻하는 은어)라는 점을 강조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안미경중’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외교 정책 기조로 잡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외교의 목표는 국가 존립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안보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보가 불안정하면 경제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한국 대접하던 중국, 지금은 조공국 대하듯 과거로 돌아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제1야당의 유력 대권주자 공약을 전면 비판하며 ‘내정 간섭’ 논란이 일었다. 지난 7월 윤석열 후보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라고 발언하자 싱하이밍 대사는 같은 신문에 윤 후보의 인터뷰를 반박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 회장은 “주한 중국대사가 국내 정치에 간섭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는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한국을 무시하는 중국 정부 내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한중수교 전후 20년 동안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대접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는 역사상 최초로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극상의 대접을 받던 시기였다”라며 “중국이 자국 경제 개발을 위해 한국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중소기업이 중국 지방에 가면 성(지방) 정부의 고위 관리가 투자 유치를 위해 거창한 만찬을 대접할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하는 등 중국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회장은 “현재 중국은 우리를 조공국 대하듯이 하는 과거의 태도로 돌아갔는데, 이는 우리가 저자세와 줏대 없는 외교로 일관해 온데도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6,7위권의 국방력과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중견 국가로서 중국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분명히 있다”라며 “우리가 원칙에 입각한 당당한 외교를 해 나간다면 중국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 | 이유정 기자/에포크타임스

 

한일 관계, 신뢰 회복이 관건

현정부 들어 일본과의 관계는 계속 냉랭해졌다.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묻자 이 회장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새로 들어오는 정권들은 초기에 대일관계 개선에 노력하다가, 국내정치적인 요소가 생기면 가차 없이 한일관계를 희생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용공 판결 집행문제,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해법 모색도 필요하지만, 양국간의 신뢰가 바닥나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 최악의 상태에 와있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양국은 1998년 한일간의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협력하자고 약속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3월 선출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일본 기시다 총리와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한국이 독자적으로라도 한일간의 과거사는 정리됐고, 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40 외교 생활 통해 체감한 한국의 성장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40여년간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한 이준규 회장은 현장에서 이같은 변화를 몸소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84년 첫번째 해외근무를 주유엔대표부에서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회의장에 가도 발언권이 없어 맨뒷자리에서 구경만 하는 게 전부였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2021년 한국은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외교부의 위상이 너무 추락했다”라며 아쉬운 점을 꼽았다. 그는 이번 정권과 차기 정권에 “70년 사이 전문 외교관들의 역량이 상당히 축적됐다. 외교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충분히 외교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준규 한국외교협회장은 1978년 외교관이 된 후 2017년 주일대사로 퇴직할 때까지 39년 6개월 간 외교관으로 지냈다. 그는 주뉴질랜드대사, 주인도대사, 재외동포영사 국장, 외교안보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대담=차광명 취재본부장
취재본부 이가섭 기자 khasub.lee@epochtimes.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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